▲경희궁 숭정전.경희궁은 옛 경덕궁이며 소현세자가 강빈과 혼례를 올렸던 곳이다.
이정근
또 하나, 청나라 황제의 정전이 숭정전이라는 것이 작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우연이라 하기에는 너무나 놀라운 현실이었다.
숭정전은 조선에도 있다. 임금의 정전이고 자신이 강빈과 혼례를 올렸던 곳이 아닌가.
조선은 명나라와 통호했고 청나라와는 교류가 없었다. 어떠한 색깔의 교류이건 조선과 통하기 위하여 청나라는 전쟁이라는 수단을 동원했고 조선은 교류라는 틀 속으로 끌려가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청나라의 수도 심양에 있는 황제의 정전이 우리와 같은 숭정전이라니 놀라운 일이었다.
소현, 정곡을 찌르다숭정전 옆길을 통하여 봉황루로 안내 되었다. 누각에는 조촐한 잔칫상이 준비되어 있었다. 도르곤을 비롯한 여러 왕들도 있었다. 황제에게 예를 올린 소현이 지정된 자리에 앉았다. 십왕 다음 자리였다.
"이국에 와서 고생이 많소."
"황공하옵니다."
삼전도에서 부왕이 항복할 때 배종한 이후 처음이다.
"불편한 것은 없소?"
"넓으신 배려에 편안합니다만 강화 이후에 잡혀왔다고 주장하는 자들이 관소에 찾아와 억울하다며 울고 있어 보기가 민망합니다."
정곡을 찔렀다. 강화조약 이후에 잡혀온 사람들은 청나라의 약속 위반이라는 것이다. 소현의 생각은 분명했다. 조선에서 잡혀온 사람들은 교전 중에 잡힌 전쟁포로가 아니며 더욱이 강화 이후에 잡혀온 사람들은 전쟁과 상관없는 약탈이라는 것이다. 황제의 눈꼬리가 치켜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