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하왕릉은 본래 화려한 궁전과 외성·능성·제단 등이 겹겹이 둘러싸인 배치구조였다. 서하를 멸망시킨 몽골은 서하왕릉을 철저히 파괴했다.
모종혁
폐허의 옛 성터를 최고의 영상제작단지로특이한 인문환경과 역사유적 외에도 인촨에는 중국 영화산업의 역사를 보여주는 현장이 있다. 인촨에서 서북쪽으로 38㎞ 떨어져 있는 서부영화드라마세트장이 그것. 명·청대 국경요충지였던 전베이바오에 자리잡은 서부영화드라마세트장은 중국의 유명 작가 장센량이 개조해 세웠다.
1957년 시 한 편 때문에 우파로 몰려 반혁명죄로 10여 년간 투옥됐던 장센량은 개혁개방 후 복권하여 활발한 작품 활동을 했다. 가장 영향력 있는 20세기 중국서적 100권으로 선정되고 29개국 언어로 번역된 소설 <남자의 반은 여자>는 장셴량의 대표작이다.
자신이 쓴 9편의 소설이 영화로 각색되자, 장센량은 영화산업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장센량은 1993년 인세를 담보로 은행 대부금 50만 위안을 포함해 총 78만 위안(약 1억900만원)의 자본금으로 전베이바오에 영화드라마세트장을 건설했다. 당시 전베이바오는 황량한 사막 위의 옛 성터로 식수와 전기는 물론 도로도 나질 않았었다. 1500년에 세워진 명대 성과 1740년에 건설된 청대 성은 허란산맥 이북에 있는 북방민족의 침입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20세기 들어 고성을 지키던 병사는 떠났고, 전베이바오는 세월의 풍파를 이겨내지 못한 채 잔해만이 남아 있었다. 성곽의 틀이 거의 없는 명대 성 옹성의 구조를 띠고 있다. 보전이 비교적 잘된 청대 성은 높이 10여m, 넓이 5m의 토성으로, 그 안에서는 옛 가옥과 장터가 한눈에 안겨 들어온다. 장센량은 황량하면서도 원시적이고 옛 성벽과 마을의 신비를 간직한 전베이바오의 장점에 주목했다.
1980년대 말 장센량의 소개로 중국 4세대의 대표감독 셰진은 <말몰이꾼>, <노인과 개>를 이 곳에서 찍었고 장이머우는 자신의 데뷔작 <붉은 수수밭>을 전베이바오에서 제작했다.
독특한 자연경관과 역사적 전통이 깃든 전베이바오에 주목한 중국과 홍콩 영화인들은 1990년대에 잇따라 인촨을 찾았다. 베이징·상하이·시안·우시 등에 있는 유명 영화세트와 달리 상상력과 창조성을 발휘할 수 있는 제작공간으로 평가 받았기 때문.
쉬커의 <신용문객잔>, 류전위 감독, 저우싱츠 주연의 <대화서유> 등 총 70여 편의 영화와 드라마가 제작되면서 전베이바오는 일약 중국 영상제작단지 중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오늘날 전베이바오는 해마다 수십만 명의 관광객이 찾아 인촨 주민들에게 수많은 일자리를 제공해 주고 지방정부에 막대한 재정수입을 안겨주고 있다. 처량했던 옛 성터가 5000만 위안(약 70억원)의 고정자산과 수억 위안의 무형자산 가치를 보유한 문화 브랜드로 변모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