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표지.
김영사
박상진 교수는 목재조직학을 다루는 학자이다. 그러나 그의 관심은 그냥 나무의 조직이나 세포 형태를 연구하는 데서 머물지 않는다. 그는 나무 속에서 역사를 읽기도 하는 특이한 존재다.
그는 이 책 이전에 펴낸 <궁궐의 우리나무>, <역사가 새겨진 나무이야기>, <나무, 살아서 천 년을 말하다> 등을 통해 우리에게 나무를 통해 역사를 읽는 흥미로운 방법을 알려 주었던 것이다.
책 <나무에 새겨진 팔만대장경의 비밀>은 '나무, 석가모니와 만나다', '자작나무 제작설의 진실 혹은 거짓', '다시 새기는 팔만대장경', '경판의 탄생지를 둘러싼 미스터리', '처음 모습 그대로, 750년 경판 보존의 비밀', '옛 사람들의 완벽한 경판 관리 노하우?', '8만 1,258장의 생존 기록' 등 모두 8장으로 이뤄져 있다.
저자는 매우 친절하게도 대장경판의 탄생에서부터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그리하여 우리가 가진 궁금증을 하나하나 해결해 나간다. 책에 실린 중요한 내용을 몇 가지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팔만대장경에 대한 궁금증 몇 가지 ①팔만대장경판은 이름 그대로 팔만 개일까?
팔만대장경이라는 이름 속엔 이미 양적인 의미가 암시되어 있다. 그러나 팔만대장경은 정확히 팔만 개가 아니라 8만1258개이다.
②옛 문헌에 나오는 기록대로 팔만대장경판은 정말 자작나무로 만들어졌을까?
'자작나무는 백두산 원시림을 비롯한 북한 내륙의 고산 지방, 중국의 북동부, 사할린에서 시베리아에 걸쳐 자란다. 추운 곳을 좋아하는 한대 수종이기 때문이다. 만약 자작나무를 베어다 경판을 만들었다고 가정한다면, 생각해볼 수 있는 지역은 북한 내륙의 고산 지방이다. 나무를 벌채하여 압록강이나 대동강에 뗏목을 띄워 황해로 내려와 강화도로 가져와야 한다. 대장경판을 새길 당시 수도 개성을 비롯한 육지는 몽고군에게 점령당한 상태였다. 따라서 이런 가정은 성립되지 않는다.'(79 쪽) 저자가 목재조직학 연구 방법에 따라 팔만대장경 약 250여 점을 표본으로 삼아 현미경으로 나무의 세포 모양과 배역을 살펴본 결과 경판의 재질이 산벚나무, 돌배나무, 자작나무와 비슷하게 생긴 거제수나무가 88퍼센트를 차지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통설에서 말하는 자작나무는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③760년 전에 만들어진 팔만대장경이 어떻게 아직까지 아무런 손상을 입지 않은 채 남아 있을까?
지금으로부터 760년 전에 만들어진 팔만대장경이 지금껏 남아있다는 것이 경이로울 정도로 한반도는 지속적으로 전쟁에 시달려 왔었고, 대장경을 보관하고 있는 해인사도 수많은 화재에 시달려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파손되지 않은 채 그대로 남아있는 데는 많은 사람들의 노고가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전쟁 당시 해인사에 있던 빨치산을 공격하는데 폭탄을 쓰지 않고 기관총으로만 공격함으로써 대장경의 파괴를 막은 폭격기 편대장 김영환 대령이 대표적인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