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우리는 핀란드 '몰입교육'에만 흥분하는가

무상교육과 공동체 지향 교육 철학, 우수한 교사의 삼박자

등록 2008.04.04 14:51수정 2008.04.04 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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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의 교육 현장을 취재한 모 신문기자는 ‘학생들을 위한 나라’, ‘ 교육의 천국’이라고 소감을 밝힌 적이 있다. 1등을 모르는 아이들, 과외 없는 나라, 시험 없는 평가, 무료 교육, 무료 급식, 무료 교재, 국가예산의 14% 교육 예산. 방송이나 신문의 보도 내용을 보면 가히 호기심이 일어날 만하다.

2000년 유럽정상들은 리스본에 모여 유럽연합(EU)의 발전을 위해 '2010년까지 전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이고 경쟁력 있는 지식기반 경제'를 건설할 것을 합의했다. 그리고 이 목표 실현에 적합한 우수 모델로 핀란드를 선정했다. 핀란드는 EU 14개국 중에서 생산성 증가와 인적 자원개발 지원 항목에서 최고점을 획득했다.

또 핀란드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06년 학업성취도 국제학력평가(PISA)에서 과학 1위, 수학 2위, 읽기 2위를 차지했으며 반부패지수, 대학경쟁력, 국가경쟁력 등 모든 부문에서 비교우위를 보이고 있다.

이렇다보니 교육개혁과 교육경쟁력을 논할 때마다 핀란드를 따라가자며 너도나도 처방전을 내놓는다. 진보와 보수도 가리지 않는다. 영어몰입교육을 주장하는 사람들부터 무상교육을 주장하는 사람까지 모두 핀란드식 교육모델을 배우자고 한다.

그러나 과연 핀란드 교육이 한국의 교육문제를 해결하는 대안 모델이 될 수 있을까? 전체를 보지 못하고 부분을 확대하여 한국사회에 이식하려고 하지는 않는지 우려가 앞선다.

핀란드에서 온 이명박 정부의 영어몰입교육과 교원평가

국가경쟁력을 강조하는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모델에는 핀란드의 교육제도가 자주 등장한다. 특히 핀란드 교육의 경쟁력을 영어몰입교육과 우수한 교사의 질로 보고 있어, 이를 우리 교육에도 도입하고자 한다.


핀란드의 영어경쟁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국민의 80% 이상이 영어로 의사소통하는 데 불편이 없으며 웬만한 드라마, 영화는 자막 없이 영어로만 방송한다. CLL(내용-언어 통합학습법)이라 하여 수학, 과학, 미술, 체육 사회, 국어 등 다양한 과목을 영어로 가르치는 핀란드식 몰입교육이 시행되고 있다.

이에 이명박 정부는 과학과 수학 등 다양한 과목에서의 영어몰입교육, 초등학교 3학년부터 2시간 영어수업, EBS영어방송, 영어전문교사 계약직 고용 등을 정책으로 내세우고 있다.


또한 핀란드는 최고 수준의 우수한 교사진을 갖추고 있다. 유치원 교사는 최소한 정규대학을 졸업해야 하고, 초중등학교 교사는 석사학위가 있어야 가능하다. 박사 학위를 소지한 교사도 상당수다.

이를 두고 보수 언론이나 일부 전문가들은 교사경쟁력 강화를 위한 교원평가를 시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교사 경력 15년 이후의 교사연봉을 비교할 경우 핀란드는 1인당 GDP의 1.29배인데 비해 한국은 2.2배라며 교사집단을 향한 불신의 칼날을 갈고 있다.

심상정 후보도 핀란드식 자율학교를?

이번에는 진보진영의 '핀란드 따라 배우기'를 살펴보자. 고양 덕양갑에 출마한 진보신당의 심상정 후보가 핀란드형 교육특구를 만들겠다는 공약을 발표하여 학부모들과 사회의 주목을 받고 있다. 심 후보 측은 중등 2개교, 고등 2개교를 선진유럽형 자율학교로 전환하고 단계적으로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선진형 자율학교로 전환해 △교과편성 자율성을 통해 창의성과 특성을 살리는 맞춤형 자율 교육 실시 △ 우수 교원 초빙과 교과 편성 자율성에 근거한 책임 교육제 실시 △ 북유럽식 토론형 학습, 체험 학습, 개방형 학습 진행 등 기존 교육 시스템을 완전히 혁신한 선진형 교육 모델을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심 후보가 모델로 삼은 것은 한국의 초중등학교를 합친 핀란드의 9년 의무교육기관 ‘종합학교’인 듯하다. 핀란드 종합학교의 성공비결은 최고 대우를 받는 최고수준의 교사들에게 주어지는 교육과정운영의 융통성과 자율성,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하여 각각의 아이들에 맞춰 진행되는 개별지도에 있다.

수업 시간에 학생들의 능력에 따라 맞춤형 교육을 하고, 모든 학교에 특수교사들이 배치되어 학습부진아만을 위한 특별수업도 진행한다. 학업능력이 탁월한 아이는 집에서 선생님과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스스로 공부하기도 한다. 고등학교의 경우 학년의 구분 없이 능력대로 배울 수 있도록 함으로써 평등하면서도 양질의 공교육을 제공한다. 사교육을 담당하는 학원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심상정 후보의 핀란드식 자율학교 모형이 공허하게 느껴지는 것은 핀란드 종합학교의 기저에 깔려있는 공교육에 대한 철학과 교사들의 열정을 담보하지 못한 채 제도의 개선만으로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단순히 눈에 띄는 몇몇 장점들만을 들여올 경우 선진유럽형 자율학교는 또 다른 입시명문고가 될 가능성이 크다.

핀란드 교육의 진정한 힘, 평생무상교육과 공동체 지향 교육철학

그렇다면 세계 최고 수준으로 인정 받는 핀란드 교육의 힘은 어디서 나오는가?

첫째, 평생 동안 지속되는 무상교육 시스템이다. 핀란드 교육시스템의 목표는 ‘모든 사람이 자신의 출신과 경제적 배경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이 타고난 재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초등학교에서 대학까지 지자체나 국가의 소유로 무상교육이 진행된다. 또한 다양한 성인교육기관들이 활성화되어 평생교육시스템도 갖추고 있다.  매년 약 100만 명의 핀란드 국민이 성인교육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경제활동 인구 5명 중 한 명꼴로 국가가 공짜로 시켜주는 직업교육을 받는다. 사교육을 담당하는 학원이 없는 것은 물론 과외도 피아노 등 예술분야에 한해 소수만이 받을 뿐이다.

이런 교육시스템 뒤에는 엄청난 규모의 교육예산이 자리하고 있다. 핀란드는 국가예산의 약 14%를 교육 분야에 할당하고, 국내총생산의 7%를 공교육비로 지출하고 있다. 수업료, 급식비, 교재비까지 모든 교육비용을 국가가 부담한다. 돈이 없어 공부 못한다는 말은 나올 수가 없다.

둘째, ‘경쟁에서의 승리’가 아닌 ‘공동체 시민으로의 성장’을 목표로 하는 교육 철학이다. 지역, 성별, 빈부격차에 관계없이 평등한 교육기회를 누릴 수 있는 것도 모두 이러한 철학 덕분이다. 뿐만 아니라 핀란드의 학교들에는 복지담당관, 심리학자, 특수교사들이 배치돼있어 학생의 심리적, 신체적 사회적 발달을 체크하면서 학생들의 학습과 어려움을 진단하고 해결해 주고 있다.

마지막으로 꼽을 수 있는 핀란드 교육의 성공 배경은 바로 우수한 교사들이다. “Teachers, teachers, and teachers” 로 요약될 정도로 우수한 교사의 확보와 교사의 질을 높이는 교사교육 그리고 그에 따른 사회적 대우가 자리 잡고 있다. 교사가 국가 교육과정을 바탕으로 수업과 평가에서 자율권을 행사하면서 자율적인 경쟁을 유도하고 있는 것이다.

교육의 근본적 대안을 찾기 위한 국민적 교육주권운동 필요

1920년대부터 무상의무교육을 추진하면서 평생교육시스템으로 국가적 인적 자원을 길러온 핀란드의 교육경쟁력은 한국 교육에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영어몰입교육, 자율형 고교 확대, 입시제도 개선, 대학평등화나 자율화 등 부분적인 처방이 아닌 근본적 대안이 필요하다. 이 시대를 살고 있는 보수, 진보 진영뿐만 아니라 현장의 교육전문가들도 국민과 토론하고 소통하며 찾아야 할 대안이다.

이제 사교육비, 대학등록금 걱정 없이 모든 국민들이 동등한 교육기회를 제공받을 수 있는 교육체제는 어떻게 가능한지 국민 모두가 나서 해법을 찾아야 한다. 헌법에 명시된 교육권을 보장받기 위한 국민적 교육주권운동을 벌여가자. 교원노조, 교육전문가 단체들은 국민과 학생들에게 희망을 주는 대안적 정책과 비전을 만드는 주체가 되자.

끝으로 중앙집권적인 교육체제와 입시제도의 개선만큼 중요한 것은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신뢰와 존경을 받기 위한 교사들의 헌신적인 노력이다. 교사들이 꼴찌에게도 용기와 희망을 줄 수 있을 때, 교사들이 진정 학생들의 희망이 될 때 핀란드식 교육시스템도 가능한 일이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대안정책 웹사이트 이스트플랫폼(www.epl.or.kr)에도 실렸습니다. 글을 쓴 이영탁 기자는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의 이사이며, 현직 중학교 도덕 교사입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대안정책 웹사이트 이스트플랫폼(www.epl.or.kr)에도 실렸습니다. 글을 쓴 이영탁 기자는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의 이사이며, 현직 중학교 도덕 교사입니다.
#핀란드 교육 #이명박 #심상정 #영어몰입교육 #선진유럽형 자율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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