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조선희 원장저널리스트로서의 자신의 경험을 들려주며 '진실'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동현
"1980년대 말, 외화수입이 자유화 됐어요. 영화인들은 한국 영화 시장이 모두 무너질 거라고 반발했죠. 직배 영화가 개봉됐을 때, 극장에다 뱀을 풀거나 불을 지르는 사건이 벌어졌어요. 언론은 그들을 민족주의 시위대로만 그렸고 저도 그녀도 그런 줄로만 알았죠."그때로부터 3~4년이 지난 후 영화 제작과 배급을 도맡고 있던 양대 메이저사의 사장이 모두 구속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그들은 극장 방화사건을 배후조종한 혐의를 받았다. 직배영화 배급권을 둘러싼 영화 배급업자들 사이의 이익다툼이 '민족주의 시위대' 뒤에 감춰져 있었던 것이다. 완전한 진실이 밝혀지기까지는 그 후로도 4년이 더 걸렸다.
"일간지는 하루라는 시간을 이길 수 없고, 주간지는 일주일을 이길 수 없어요. 그런 건 어쩔 수 없이 역사에 기록 될 뿐이지 저널리즘은 그걸 비켜가죠. 그걸 참 '아이러니' 라고 느꼈어요. 참 역사라는 게, 저도 그때 기자였지만 반쪽의 진실을 알았다는 걸 나중에 깨달았죠."신문은 하루만의 진실이지만 그것을 부정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신문 기사도 결국엔 시간 위에 존재하는 것. 어떤 것들은 진실이고 또 어떤 것들은 오보다. 그것이 걸러져 진실이 된다.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저널리즘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다.
"하루하루의 신문이 쌓인다고 역사가 되진 않아요. 하지만 저널리즘마저도 없다면 역사의 기초가 없어지게 됩니다."그녀는 연합통신의 기자로 처음 ‘정글’에 뛰어들었다. 영화 잡지의 불모지에서, 고급 영화 잡지 그것도 한국영화를 주로 다루는 씨네21를 창간했다. 성공할 수 있겠는가라는 주위의 우려를 무색하게 만들며 씨네21을 최고의 영화잡지로 만들었다. 그리고 소설 쓰기에 전념하기 위해 성공한 잡지의 편집장 자리를 버리고 광야로 나갔다. 그런 그녀가 다시 ‘정글’로 돌아왔다.
"영화감독이자 소설가 선배가 영상자료원장 공모에 응해보지 않겠냐는 거예요. 처음엔 ‘소설가를 실업자로 아는 것 아냐’ 왜 내가 직업이 없다고 생각하느냐. 내가 그렇게 장래성이 없어 보이나? (웃음) 근데 막상 직장생활을 해볼 거냐는 말을 듣고 나니 마음이 쏠리는 거예요."그녀는 정글을 마다하지 않는 듯하다. 아니 어쩌면 체질적으로 정글을 좋아하는 지도 모른다. 정글에선 가끔 하이에나가 된다던 그녀. 그러나 지금 그녀는 '썩은 고기'를 찾아 산기슭을 해매는 하이에나가 아니라 '맛있는 풀'이 있는 곳을 찾아 동료들에게 알려주기 위해 위치를 기록하는 톰슨가젤처럼 보인다.
아카이브, 영화 문화의 구심점2003년 유네스코는 ‘디지털 유산 보존 헌장’을 만들었다. 디지털 유산은 후손에게 물려줄 가치가 있는 것들을 총망라한다. 현 세대와 미래 세대를 위해 보호하고 보존해야 하는 유산이다. 프랑스는 1537년 도서에 관한 ‘납본법’을 만들어 ‘아카이브’(보존소)를 구축했다.
아카이브, ‘최선의 경우, 한 나라 영화문화의 구심점 역할’을 할 것이란다. 그녀가 앞으로 써 나갈 기록과 역사, 그리고 한국 영화사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그녀를 만난 날 봄비가 내렸다. 짧은 시간의 만남 때문이었을까. 사라진 한국영화사의 조각이 많아서일까. 봄비. 감자밭을 적시기엔 부족해 보였다.
덧붙이는 글 | 한국언론의 새로운 표준과 가치를 모색해보려는 '저널리즘 특강'에 독자 여러분, 특히 언론인과 언론인이 되고자 하는 분들의 많은 관심을 기대합니다. 서울에서 진행되는 특강에 참여하기를 원하는 분은 사전에 연락해주시면(043-649-1148) 제한적이나마 자리를 마련해 드리겠습니다. 특강일정표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홈페이지(http://journalism.semyung.ac.kr)에 게시돼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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