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채와 운장각뒷건물은 유물전시관인 운장각으로 최근에 지어진 건물이다.
이덕은
사람이 무식하면 용감해진다고 했는데 내가 그 꼴 아닌가?
한옥이 좋아 이곳 저곳을 들쑤시고 다녔으면서도 유가(儒家)의 깊은 내력과 의미를 제대로 몰랐으니 도산서원을 보고, 양동마을을 들르고 녹우당을 보았어도 그저 겉에 보이는 하드웨어에 유치한 감탄사 한마디 내지른 꼴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시점에도 그 의미의 천분의 일마저 파악하고 있는지 그 또한 알 수 없다.
대구로 가는 길에 우리나라에서 제일 오래 되었다는 봉정사 극락전을 들르겠다고 차머리를 안동으로 향할 때만해도 그저 가벼운 마음이었다. 그러나 안동 서후면으로 들어서면서 길 양쪽으로 보이는 학봉종택, 간재종택, 안동 권씨 재실….
'어, 이거 뭐야?', 해방 전후에 남쪽으로 월남한 가족의 일원인 나에게 조상이란 그저 명절 때 찾아 뵙고 인사하는 정도의 어른이었다. 내 초등학교 친구처럼 사돈의 팔촌까지 두루 꿰는 가계는 그저 남의 집안사 정도라고 치부할 정도로 천박한 지식밖에 없었다고 솔직히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미치 안강(경주시 안강읍) 양동마을을 연상시키는, 잘 손질된 종택들은 규모가 크다고는 할 수 없지만 나 같은 무지렁이에게는 '음메 기죽어~'다. 봉정사 대웅전과 극락전을 둘러보는 사이에도 마음은 내려가다 들를 학봉종택과 간재종택에 가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