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뤄핑의 유채꽃저 노란 벌판 위를 뒹굴고 싶다.
최성수
뤄핑(羅平)은 운남을 처음 찾았을 때부터 꼭 가보고 싶던 곳이었다. 끝없이 펼쳐진 유채꽃 밭 사진을 어느 잡지에서 얼핏 본 이후, 그 풍경이 내 마음에 새긴 듯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음 속의 길은 늘 현실의 길이 되지 못했다. 운남을 찾는 여행자들이 제일 먼저 발 딛는 곳인 따리와 리지앙을, 혹은 징홍이나 더친을 가느라 일반적인 여행지와 동떨어져 있는 뤄핑은 늘 뒤로 밀리기 일쑤였다.
처음 뤄핑을 꿈꿨을 때, 나는 운남의 곳곳을 단 한 번에 다 돌아볼 터무니없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 생각이 얼마나 허황된 것이었는지, 두어 군데의 여행지만 둘러보아도 빠듯한 내 일정은 끝난다는 것을, 운남에 가보고 나서야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다. 그만큼 운남은 넓고 큰 땅이었다.
유채꽃밭에 대한 그리움은 그저 따리나 리지앙의 교외에서 스치듯 만나는 손바닥만한 밭들에서 달랠 수밖에 없었다. 그리움도 마음에 오래 담아두면 병이 되는 법일까? 누지앙 여행을 계획하면서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여행의 마지막 일정에 뤄핑을 가겠다는 결심을 했다. 이번 여행에서조차 뤄핑을 가지 못한다면 어쩌면 영영 가지 못할 것 같은 조바심이 들어서였다. 누지앙의 눈 속에 갇혀 그렇게 조바심을 쳤던 것도 마음 한 구석에 뤄핑에 대한 그리움이 남아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봄과 겨울이 함께 있는 길아침 9시에 쿤밍을 출발한 차는 석림(石林) 가는 방향을 따라 시원하게 뚫린 고속도로를 거침없이 달린다. 하늘은 눈부시게 파랗다. 따리, 누지앙의 추위와 폭설이 남의 나라 일 같을 정도다. 석림을 지나자 길 가로 나무들이 푸른 잎을 햇살에 반짝이고 있다. 개나리꽃이 노랗게 핀 길을 지나니 아득하게 펼쳐진 평원이다. 봄 농사를 준비하는지, 밭에서 괭이질을 하는 사람들이 심심치 않게 눈에 띈다. 저 사래 긴 밭을 언제 다 갈아 고랑을 만들까 하는 걱정조차 따스한 햇살 아래 스르르 녹아 없어지는 것 같다.
눈 간 데 끝까지 밭이 펼쳐지고, 밭 위로 둥글게 하늘이 휘어져 있다. 하늘과 땅의 만남이 시야 끝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그리고 하늘 위에는 흰 구름이 몇 점 느긋하다. 푸른 하늘과 흰 구름, 끝없는 지평선이 이곳이 구름의 남쪽 땅 운남임을 증명하는 것 같다.
길 가 군데군데 벚꽃도 피어있고, 유채꽃이 노랗게 얼굴을 내밀고 있는 밭도 드문드문 보인다. 유채꽃을 보자 벌써 뤄핑에 다 온 것처럼 마음이 설렌다.
한동안 달리던 차가 샤오링(召令) 톨게이트 근처 휴게소에 멈춘다. 휴게소라고 해야 주유소 하나에 화장실만 있는 곳이다. 화장실에 갔다가 나오는데, 사람들 몇이 우리 차 옆에 선 승용차에 매달려 있다. 승용차에서는 물이 새고 있다. 차 주인인 청년은 물을 받아다 냉각수 통에 넣으며 걱정이 태산이다.
“아직 2천 km는 더 가야 하는데….”
쿤밍에서 출발한 그들 일행의 목적지는 푸젠성(福建省)이란다. 설을 쇠러 고향에 가는 길이라는 청년의 얼굴에는 걱정보다 그리움이 가득하다. 아직 일주일이나 남은 설을 쇠러 벌써 길을 떠나야 할 만큼 중국 땅이 넓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청년은 우리에게 손을 흔들고는 시동을 걸고 다시 달려간다. 차 뒷자리에 고향 친척들에게 줄 것인지, 선물이 가득하다.
우리도 다시 출발한다. 여전히 길은 따사롭다. 간간이 소나 마차가 고속도로를 막고 있다. 차는 짐승의 무리들이 지나갈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달린다. 가축들의 느린 속도와 자동차의 빠른 속도가 공존하는 도로에는 햇살이 가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