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시를 스스로 얘기하자니 쑥스럽습니다"하는 시인은 말을 이었습니다.
시 하나 읊고 줄줄줄 이어지는 말. 옛날 이야기. 옛날이지만 오늘날까지 시인 마음속에서 살아숨쉬는 이야기. 옛날 옛적 일이지만, 오늘날까지 고이 이어지면서 시인 삶과 생각과 모습을 이루고 있는 이야기.
한 번 봇물이 터진 말은 그치지 않습니다. 거침없이 이어집니다. 시인을 앞에 모시고 둘러앉은 사람들은 아무 말이 없습니다. 시인 할아버지 말이 맛깔스럽기 때문에 모두들 눈을 반짝반짝 빛내면서 듣습니다. 한 마디 두 마디 마음에 차곡차곡 새기면서 듣습니다. 이야기는 이어집니다.
"어머니가 아들 일곱 낳았습니다. 어머니가 인중 들어가라 해서 들어갔는데, 어머니는 우리 나라에서 제일 좋은 학교로 여기고 있는 이 학교에서 상을 받으니 얼마나 기뻐하셨는지 모릅니다. …… 송창식이 저와 동창이고, 2학년 때 같은 반이었습니다. 이 친구가 노래만 잘하는 게 아니라, 짧은 글을 잘 썼습니다.
그때 어, 얘 봐라, 음악 시험을 보는데 10점은 필기고 10점은 노래인데, 송창식이는 그렇게 잘 부르는지 몰랐습니다. 부르는데, 이건, 아버지나 삼촌 목소리가 나오는 겁니다. 바이브레이션이. 이 사람은 아주 부드럽게 노래도 잘 부르고, 짧은 글도 잘 쓰고, 또 농구도 잘하고. 주눅이 들었습니다. (하하하) (송창식이) 잠들었을 때 못된 장난도 하고, 자극을 받아서 산문을 쓰는데, 시에 끌려서, 도서관에서 거의 외우다시피 했는데, 내 시가 안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독서는 아무렇게나 하면 안 되겠구나 했는데, 저로서는 너무 많이 읽으니까, 내 글이 아니고 힘들었습니다."
지나온 우리 삶은 언제나 옛이야기, 추억이 됩니다. 지난날에는 아픔이나 아쉬움이었을지 모르나, 곰곰이 돌이켜보면 좋은 약이 되곤 합니다. 김윤식 시인은 시인으로서 큰 이름을 얻지 못했다고 스스로 밝히고, 또 시집은 1994년에 이르러야 처음으로 펴냅니다.
그동안 <고래를 기다리며>(1994), <북어ㆍ2>(1999), <사랑한다는 것은 한 사람의 마음이 저문 종소리를 울리고 있다는 것이다>(2003), <옥탑방으로 이사하다>(2006), <청어의 저녁>(2007), <길에서 잠들다>(2007)를 펴냈습니다. 신춘문예에 오래도록 아쉬움을 두면서 1983년에 추천, 1987년에 등단을 합니다.
"내가 많은 시를 남겨 놓는다고 얼마나 우리 나라에 도움이 되겠느냐만, 하느님이 나 같은 사람을 만든 의미가 어디 있겠느냐, 좋은 의견을 내어 사회나 복지에 도움이 된 것이 있느냐, 없다고, 그러면 뭐냐, 그저 시 하나만 남기자고, 그래서 요즘은 일기처럼 날마다 시를 씁니다"하고 말하는 김윤식 시인.
길에서 잠들다
삶이 피곤해서 그런 것은 아니다 물 한 그릇을 얻지 못해서도 아니다 발굽이 다 닳은 나귀처럼 하루 저녁쯤은 서서 잠들고 싶었기 때문이다 잠 속에서 그냥 마른 풀 향기처럼 흩어져도 좋고 모닥불로 사위어도 좋기 때문이다 길 가다가 눕는 곳이 곧 마지막 쉴 집이다 옛날 청도에 가면서는 정말 그런 생각을 했다 어깨뼈 위에 이슬이 내렸다
시읽기를 마치고, 둘러앉은 사람들이 저마다 궁금한 생각을 묻습니다. 저도 한 가지 여쭙니다.
"시인께서는 중학교 때 그렇게 많은 책을 읽으셨다고 하는데, 요즈음 중학생 나이가 될 아이들한테 책 몇 가지를 추천한다면 어떤 책을 추천하시겠습니까?"
"문학 정도(바른길)를 가려면 황순원이나 김동리, <노인과 바다> 같은 책을 읽어야 하지 않나 싶습니다. 정도를 받아들일 수 있으면 다른 책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인간 보편 가치와 개인 가치를 생각하도록 하는 책을 읽으면 좋겠습니다. 책이 어려운 듯해도 읽어져요. 저는 요즘도 한 해에 열다섯 권쯤 읽습니다. 중고등학교 때 책을 많이 보았다는 선입관 때문에, 그때 읽은 것 같아서 안 읽게 돼요. 공책을 만들어서, 읽으며 좋았던 귀절은 귀찮아도 옮겨적어야 책읽기가 돼요. 주춧돌을 놓으려면 인간 보편 가치를 채우고 읽어야지요.
이제 어른이 되었으면, 제가 굳이 어느 책 읽으라고 안 해도 되는데. 신문들 토요일판을 보면 좋은 책이라고 많이 소개되어 나옵니다. 그런데 하나도 좋은 책이 아닙니다. …… 우선 번역이 문제예요. 세 번 네 번 읽어도 이해가 안 돼요. 짜라투스트라를 읽었어도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어떤 책이든 권해 드릴 수 없어요. 한 가지 말한다면 불란서에 레비스트로스라는 사람이 쓴 <슬픈 열대>가 있어요. 철학이면서 문학이고, 문학이면서 철학이고."
고개를 끄덕거립니다. 서로서로 슬며시 웃습니다.
茶
향내는 검고 초췌하게 마른 이파리에서 난다 죽은 달빛 냄새 죽은 사람 냄새 죽은 냇물 냄새 먼데서 우는 새의 목소리 이런 것들의 죽은 향내가 난다 스치듯 낮게 가볍게 번지는 강원도 고성 건봉사 요사채 윗목에서 맡는 죽어 메마른 풀 이파리의 바스락거리는 냄새
(3) 다섯 번째 시잔치 소식
지난 2월 23일, 인천 배다리 헌책방골목에 자리한 '시 다락방'에서 김윤식 시인을 모시고 네 번째 시잔치를 열었습니다. 다가오는 3월 29일 토요일에는 이가림 시인을 모시고 다섯 번째 시잔치를 엽니다. 시 창작을 하는 틈틈이, 프랑스 문학과 철학을 우리 말로 옮기는 이가림 시인은, 지금 인하대학교 문과대 프랑스문화과 교수로 일하면서 <시와 시학> 편집주간으로 일합니다.
책과 시와 사람이 그리운 분들이라면 토요일 낮 두 시에 넉넉하게 시간을 내어 시잔치 나들이를 하셔도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봄바람 따스하게 느끼면서 두 다리로 우리 사는 이 땅을 꾹꾹 밟으면서 찾아와 함께 시를 읊고 듣고 나누고.
덧붙이는 글 | 책방골목 한켠에 마련된 조그마한 '시 다락방'은 다달이 시잔치를 엽니다. 3월 29일 토요일 낮에 다섯번째 잔치를 엽니다.
인터넷방 <함께살기 http://hbooks.cyworld.com> 나들이를 하시면 책+헌책방+우리 말 이야기를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2008.03.28 17:47 | ⓒ 2008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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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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