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낮 서울 마포구 한 중국요리집에서 손님들이 주문한 자장면이 주방에서 만들어져 나오고 있다.
권우성
"자장면 싼 곳도 럭셔리 한 곳도 있다, 자유시장경제 원리도 모르나?"
낮 12시 50분에 찾은 서울 북아현동 북아현길 들머리에 위치한 B 중국음식점. 간판엔 가격표 숫자가 지워져 있었다. 식당 안은 조용했다. 주문이 밀려들어야 할 시간이지만, 홀로 켜진 TV소리만 식당 안에 가득했다. 메뉴판에 적힌 자장면 가격은 다른 곳보다 500원 싼 3500원이었다.
마침 식당 주인인 김준호(49)씨가 배달을 마치고 식당 안으로 들어섰다. 바로 주방 안으로 갔다. 직접 배달도 요리도 하는 모양이었다. 요리가 나온 후, 김씨에게 "점심시간인데 조용하다"고 묻자, 허탈한 웃음이 돌아왔다.
- 정부가 발표한 가격 관리 52개 품목에 자장면이 포함됐다. "김밥도 500원씩 올랐는데, 왜 자장면 값만 많이 올랐느냐고 하느냐. 밀가루·기름·식용유·식재료 값 다 올랐다. 밀가루 20㎏만 해도 작년 1만2000원에서 2만6000원으로 2배 이상 올랐다. 어쩔 수 없이 자장면 가격을 올렸다."
- 이번 물가 안정 대책이 잘못됐다고 보나?"실무자들이 직접 현장에 나와 부딪쳐 보고 유통구조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를 확실히 알아보고 단속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규제만 하면 잘못된 거다."
- 자장면 가격을 통제할 것이란 얘기가 많다."자장면 값이 싼 데도 있고, 럭셔리한 데도 있다. 1500원짜리 김밥을 먹을 사람은 그거 먹고, 2000원짜리·4000원짜리 자장면 먹을 사람은 그거 먹으면 된다. 업소 자율에 맡겨야 한다. 자유시장 경제 원리가 그런 거 아니냐."
- 정부가 실제로 가격 통제에 나서게 될 경우, 어떤 피해가 예상되나?"정부가 인위적으로 자장면 가격을 통제할 경우, 소규모 식당은 도태될 것이다. IMF 때는 물류비, 인건비라도 쌌는데 지금이 그때보다 더 힘들다. 이미 작년 12월, 올해 3월에 구청에서 2차례에 걸쳐 실태파악을 나왔다."
벌써 망한 중국집도... 2500원 받는 곳도...김씨의 사정은 소규모 중국음식점이 맞고 있는 어려움을 보여줬다. 모두들 "IMF보다 더 힘들다"는 의견에 동의했다. 오후 1시 반 찾아간 서울 북아현동의 C 중국음식점의 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벌써 망한 듯, 가게 입구엔 반쯤 떨어진 환영 팻말만이 기자를 맞았다.
인근 D 중국음식점 앞엔 배달 오토바이 세대가 놓여있었다. 예상과 다르게 배달이 없는 모양이었다. 식당 건물에는 '홀에선 자장면이 2500원'이라는 플래카드가 붙였다. 2층에 위치한 식당으로 들어서니 16.529㎡(5평) 남짓한 식당 안에서 3명의 손님이 보였다.
자장면에 대한 정부의 가격 점검 이전에 중국음식점들은 이미 살아남기 위해 가격을 쥐어짜고 있었다. 식당 주인 김성민(36)씨에게 그 이유를 묻자 마치 인터뷰를 기다렸다는 듯이 "(식당을) 때려치우지 못해, 식재료라도 벌려고 2500원 받고 있다"며 열을 냈다.
그는 이날 주문 현황을 보이며 "점심 땐 원래 60집 배달하는데 30집밖에 못했다"고 흥분한 어조로 말했다. 그는 한참 속사정을 털어놓은 후 식당 바깥에서 "속 타서 하루 2갑 피운다, 이 가게에 12명의 식구가 달려 있다"며 진한 담배 연기를 한숨 쉬듯 길게 내뿜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