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치소 수용자가 딸·부인한테 보내는 애틋한 편지

부산구치소 '아름다운 글 소감문 발표회' ... "버리는 기술" 발표

등록 2008.03.25 14:44수정 2008.03.25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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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구치소는 24일 오후 수용자 11명이 참여한 가운데 '아름다운 글 소감문 발표회'를 열었다. 정분옥 부산구치소 교정협의회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부산구치소는 24일 오후 수용자 11명이 참여한 가운데 '아름다운 글 소감문 발표회'를 열었다. 정분옥 부산구치소 교정협의회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부산구치소

발표하는 수용자와 심사위원도 눈시울을 붉혔다. 24일 오후 부산구치소(소장 정종욱)가 벌인 '아름다운 글 모음집 소감문 발표회' 자리에서다.

이날 11명의 수용자들이 글을 써와 발표했는데, 한 젊은 수용자가 "버리는 기술"이란 제목의 글을 발표하자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그는 발표 도중 딸과 관련된 일화를 읽을 즈음 머뭇거렸다. 다른 수용자와 심사위원들이 박수를 쳐 분위기 반전을 시도했지만 마찬가지.

그는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글을 읽어 내려갔다. 두 딸과 부인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면서 내내 눈물을 보였다. 심사위원인 정분옥 부산구치소 교정협의회장도 눈시울이 붉어졌다. 부산구치소 직원이 화장지를 가져와 발표자와 정 회장한테 건넬 정도였다.

그 수용자는 이날 발표자 가운데 최고상을 받았다. 상품으로 도서상품권을 선물로 받았다. 그는 우수 발표자한테 주어지는 '가족만남의 날' 때 참가 기회까지 얻었다. 지금까지 가족 면회는 창살을 통해서 했다. 이제 맛 나는 음식을 놓고 부인과 두 딸의 얼굴을 부비면서 즐거운 한때를 보낼 수 있게 되었다.

부산구치소는 수용자 교정프로그램의 하나로 '아름다운 글 모음집 소감문 발표대회'를 열어오고 있다. 이 행사는 2003년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13회째 열렸다. 수용자 가운데 응모과정을 거쳐 구치소에서 자체 심사를 한 뒤 10명 남짓 뽑아 발표하도록 하는 것.

정종욱 소장은 "앞으로 문화 교양적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확대 실시함으로써 수용자들에게 진정한 자아확립과 반성을 가져올 뿐만 아니라 가족관계 회복을 위한 계기를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이날 최고상을 받은 한 수용자의 글이다.

부산구치소 한 수용자의 "버리는 기술"
1980년대 뉴욕에서는 지하철 내에 있는 낙서를 깨끗이 없애는 일만으로 범죄율은 75%나 낮아졌다고 합니다. 일본 도쿄의 디즈니랜드는 600여명에 달하는 청소 스태프들이 300명씩 교대로 15분간 자신의 구역을 돌면서 쓰레기 없는 꿈의 디즈니랜드를 실현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번 주제는 '버리기 기술'로써 가지고 있는 물건은 물론 이거니와 나쁜 감정과 욕심들을 마음속에서 깨끗이 비워 보다 나은 정신과 주변 환경을 만들어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고 항상 준비된 자세로 생활할 수 있는 것에 대해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중략) 우리가 여기에서 지내면서 정작 버려야 할 나쁜 욕심과 마음을 담아두어 나가게 되면 사회에서도 크게 변하지 않는 사람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 글을 쓰며 많은 생각이 교차했습니다. 그 중에 제일 기억이 남는 것은 5년 전 일입니다. 저의 딸아이가 100일도 채 되지 않았을 때 서울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저의 아버지와 저의 아내가 공연을 보러 딸아이를 두고 간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아무렇지도 않은 채 TV만 멍하니 보았습니다. 한 시간 정도 흐르더니 아이가 울기 시작했습니다. 얼레도 보고 달래도 보았습니다. 쉽지가 않았습니다.

그 울음이 아파트 밖까지 울려 퍼질 때 쯤 전 지쳐 있었고 아이를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야! 왜 태어나서 우리를 힘들게 해!" "너 없어졌으면 좋겠다"라고. 딸아이를 흔들며 더욱 울렸습니다. 정말 화가 났습니다. 제 인생에 끼어든 녀석이라고, 저의 행복에 끼어든 자식이라고 하며. 잠시 후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여보세요." 저의 아내였습니다. "△△ 잘 있어, 안 울어?"하며 묻더군요. "어, 어 그래"라고 대답했습니다. 아내는 "나 거의 다 왔어"하며 끊었습니다.

지금 무슨 생각을 하며 지내는지 솔직히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가족만 생각하면 아내에게 얼마나 몹쓸 짓을 했는지 저의 딸에게 얼마나 안 될 짓을 했는지 생각만 하면 마음이 쓰리고 아픕니다. 정신없이 시간을 보내려고 하지만 혼자 있을 때 볼 일 볼 때 잠시 생각나는 말 "나 정말 잘하고 있는 걸까"라구요.

2006년 7월이었습니다. 아내에게 편지를 썼었습니다. 이틀 동안 조금도 쉬지 않고 썼습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내에게 쓰는 편지였습니다. 일을 저지르고 아내와 떨어져 있었던 7개월. 그 숨어 있던 생활을 상세히 적었습니다. 아내에게 잘못했던 사소한 일들이 어찌 그리도 많았는지. 쓸 말도 많든지. 28장이나 되었습니다.

7개월만에 처와 하루를 보냈습니다. 제가 없던 동안, 아내로부터 힘들게 생활했던 이야기를 듣고 나니 당장 자수해야겠다는 생각을 굳히게 되었습니다. 경제력이 없는 아내는 두 아이들을 키우기가 걱정이었던 겁니다. 아내는 제가 집을 나간 뒤 달세 보증금을 빼 처가에 가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이후 아이들은 장모님과 처남이 키워주셨고 아내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비를 벌었다고 합니다.

지금 아내는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습니다. 한 달에 60만원 정도 번다고 합니다. 첫째와 둘째 아이는 어린이집 입학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한 달에 4번 이상 오던 접견이 3주나 되었는데 오지를 않고 전화 통화도 두 번이나 연결되지 않았습니다. 사흘 전 아내와 가까스로 통화를 했습니다. 힘이 없었습니다.

"○○아 접견도 없고 통화도 잘 안되고 어떻게 된 거야." 물었습니다. 돈이 문제였습니다. 나라에서 교육비를 지원해 준다고는 하나 두 아이를 키울 정도의 생활은 여의치가 않았고 저의 아내에겐 너무 힘들었나 봅니다. 전 원망하고 또 원망했습니다. 제가 지은 잘못으로 여기에서 3년이란 시간을 보내는 건 백번 천번 당연한 일이지만 가족은 더 힘든 생활을 하고, 아내는 하루가 지쳐가고 있었습니다. 이젠 더 이상 할 말도 없습니다.

가끔 편지에 △△가 "아빠랑 같이 살고 싶어요, 아빠 언제 와요"하며 물어오면 아내는 "또 한번 봄이 오면"이라고 말해 준답니다. "음, 아빠가 오면 △△ 옆 자리가 아빠자리, 그 다음 엄마, 그 옆에 ▽▽ 자리라고 손짓으로 잘 곳을 정한다"고 합니다.

저는 여기에서 아무것도 해줄 수 있는 게 없습니다. 도와 줄 수 있는 게 없습니다. 3년이라는 시간보다 가족과 떨어져 있다는 게 너무 고된 시간입니다. 가만히 서서 저의 가족을 지켜만 본다는 게 말입니다. 저의 아내가 감당할 수 있을지 앞으로의 시련을 이겨낼 수 있을지. 아내가 지쳐가는 것이 눈에 보입니다.

보험료, 생활비, 유치원 입학금, 친구들의 전화, 주변사람들의 대한 저의 안부, 일로 인해 아이들과 같이 지낼 수 없는 시간들, 아내에겐 너무 벅차 보입니다. 지금 당장 두 아이의 입학금이 없어 주변 분들에게 손을 벌리려 하지만 쉽지가 않은가 봅니다. 아이들이 커가며 생활은 나아 질 수 없고. 보이지 않는 눈치는 쌓이고 하루빨리 제가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할 텐데.

1년 전만해도 저 없는 동안 잘 키워 볼게 하며 씩씩했던 아내도 이젠 그런 얼굴 빛이 보이질 않습니다. 용기를 주고 싶습니다. 희망을 주고 싶습니다. 전 그저 아크릴 판을 사이에 두고 꽉 막힌 공간에서 환한 얼굴만으로 그녀를 대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번 기회로 인해 마음으로 간직했던 저의 딸에게의 미안함과 솔직한 마음을 입 밖으로 내 뱉고 싶습니다.

"아가야! 이 못난 아빠의 잘못을 용서해 다오. 나 비록 힘든 상황에 놓여 있다 보니 차마 할 수 없는 말과 행동을 너에게 보였구나. 앞으로는 너의 자상한 아빠, 자랑할 수 있는 아빠가 되도록 노력할게. 조금만 기다려 주렴. 지금 이 순간에도 씩씩하게 착하게 예의바르게 자라는 모습을 볼 수 없어서 안타까움 그지없지만 앞으로 너희들이 자라는 동안 예쁘게 커가는 모습을 항상 지켜보며 버팀목이 될 수 있는 든든한 아빠가 될게. 사랑하는 나의 딸 △△, ▽▽야 사랑한다. 정말 사랑한다."

가족이 나를 살아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 줍니다. 눈물이 있다는 것을 일깨워 줍니다. 미처 하지 못한 말도 많습니다. 표현하지 못한 글도 많았습니다. 어휘력이, 발표력이 좋지 못하여 이만큼 밖에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최선을 다했고 마음을 다했으며, 갑갑한 속마음이 후련합니다. 언제 어디서나 세상 누구 못지않게 저의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은 뜨겁습니다. ○○아! 가족을 위해 애써줘서 고마워. 사랑해.


#부산구치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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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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