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16대 대선 당시 민주당 노무현 후보 선대본부의 총무위원장이었다. 대선자금을 총괄 책임지는 자리다. 그는 당시 민주당 대선자금 400억원을 만졌다. 그런데 그 가운데 금호로부터 6억원, 한화로부터 10억원을 받으며 영수증을 끊어주지 않은 것과, SK로부터 10억원을 받으면서 회사 명의가 아닌 사장 명의로 영수증을 끊어준 것이 나중에 문제가 되었다.
당시에는 그것이 일반적인 관행이었다. 또 일부는 영수증을 끊어주려고 했는데 오히려 회사측이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고 돈만 주고 영수증 수령을 거부하기도 했다. 특히 한화 10억원은 이재정 의원이 가져온 것을 받았을 뿐이었다. 그러나 6개월에 걸친 대검 중수부의 수사에도 불구하고 이 돈은 모두 선거자금 계좌에 합법적으로 입금되어 사용된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의 기소내용에도 대선자금에 대한 유용이나 개인비리는 없고 다만 영수증을 발급하지 않고 돈을 받아 정치자금법 위반했다는 것뿐이었다. 400억원어치라는 큰 떡을 만졌으나 떡고물은 하나도 묻히지 않은 셈이다. 그래서 '차떼기'로 수백억원을 받은 한나라당과 구색을 맞추기 위해 이상수 위원장을 끼워 넣어 사법처리한 것이라는 얘기도 나왔다. 그러나 그는 총무위원장으로서 노무현 대통령과 깨끗한 정치를 위해 기꺼이 '총대'를 멨다.
그가 총대를 멘 결과는 정치자금법 위반죄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이었다. 그 때문에 17대 총선에도 출마하지 못했다. 그로서는 억울했지만 정치개혁의 '독배'를 마시는 심정으로 희생을 감수했다. 그는 노 대통령 재임중에 사면복권되어 노동부장관에 기용되었다. 노 대통령으로서는 '노무현 대통령 만들기'에 앞장서다가 희생양이 된 '노동운동 감방 동기'이자 '노동위 3총사'였던 그에게 진 빚을 노동부장관으로 갚은 셈이다.
그 덕분에 이번 18대 총선에 통합민주당 서울 중랑갑 예비후보로 출사표를 던진 이상수 후보는 정치인으로서는 보기 드물게 입법·사법·행정을 두루 경험한 경력을 내세웠다.
그러나 3선 의원과 판사 그리고 장관을 두루 거친 이력에도 불구하고 그는 민주당 공천에서 배제되었다. 박재승 공천심사위원장이 내건 이른바 '전과자 공천배제 원칙' 때문이었다. 그러나 박 위원장은 비리 전력자의 예외없는 공천 배제를 강조하면서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 사람은 정말 억울할 수 있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이번 공천에서 배제된 '전과자 11인' 중에서 박 위원장이 말한 '한 마리 억울한 희생양'이 누구일까에 관심이 쏠렸다. 인터넷에는 '억울한 한 마리의 양 이상수를 구하는 모임'까지 생겼고 대체로 당내에서도 이 전 장관을 가리키는 편이다. 불법 대선자금과 관련해 처벌 받은 인사들 중 유일하게 추징금을 물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내 인사들이 모두 나서 구명운동을 벌인 것도 그 때문이다.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 선대위에 참여한 김원기·김근태·정세균·신기남·이해찬·장영달 의원과 정동영·정대철·이재정 전 의원 등은 이 전 장관의 선처를 요청하는 탄원서를 공심위에 제출했다.
그러나 공심위는 금고 이상의 유죄가 확정된 전과자에 대한 예외없는 공천배제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다만, 민주당은 전략공천 대상지역인 서울 중랑갑 선거구에 아직 후보를 결정하지 않고 있어 당이 전략적으로 후보를 내지 않는 가운데 그의 무소속 출마 가능성도 거론된다. 그도 "당을 살리기 위한 지도부의 처절한 몸부림임을 이해는 하면서도 개인적으로는 두 번 죽는 고통을 껴안는 것이기에 받아들이기 참으로 어렵다"고 호소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한나라당은 이 지역에 이번에도 '연예인 코드'의 유정현 전 SBS 아나운서를 전략공천했다. '대발이 아빠' 이순재씨와 1승 1패를 거둔 이상수 후보가 이번에도 연예인과 승부를 벌일 수 있을지 두고볼 일이다.
'세풍' 돈 수금한 김태원 전 한나라당 재정국장도 '억울한 희생양'?
한나라당에도 이상수 전 장관처럼 당을 위해 일하다가 독배를 든 '한 마리 억울한 희생양'이 있는 모양이다.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21일 '친박'계로 분류되는 김태원 후보(고양시 덕양을)의 선거사무실 개소식에 참석해 당 재정국장으로 재직하던 당시 대선자금 문제로 벌금형을 선고받은 사실을 언급하며 "한나라당은 김 후보에게 큰 빚을 지고 있다"고 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지난 3월초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 역시 김 후보에 대해 "심부름하다 수사 받아 벌금형을 받았고, 고생했다고 당이 벌금을 대납한 경우인데, 그런 사람이 무슨 죄가 있냐"고 두둔했다.
김태원 후보는 81년 민정당 사무국 요원으로 들어가 민자당 전문위원과 신한국당 재정국장을 거쳐 한나라당 의원국장을 지낸 사무처 당직자 출신이다. 그는 97년 당 사무처 재정국장 당시 세금 징수유예 등을 조건으로 OB맥주로부터 4억 5천만원, 하이트맥주로부터 4억 3천만원, 동부그룹으로부터 30억원을 모금한, 이른바 '세풍'(稅風) 사건으로 99년 7월 구속되어 2000만원의 벌금형(정치자금법 위반)을 선고받은 바 있다.
그는 98년 9월 당시 한나라당이 97년 대선에서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를 동원해 공기업에 대선자금을 요구한 것이 문제되어 서울지검 공안부 박철준 검사로부터 소환요구를 받은 가운데 서상목 의원 등이 포함된 국세청을 동원한 대선자금 모금 사건이 언론에 보도되자 10개월 동안이나 도피했었다.
김태원 전 재정국장 "당에서 도피 권유했다"
물론 위에서 시키는 대로 돈 심부름한 그로서는 억울할 법도 하다. 범인 도피를 지시한 것도 한나라당이었다. <오마이뉴스>가 입수한 세풍 수사기록에 따르면, 그도 검찰 조사에서 출석을 앞두고 왜 도주했냐고 묻자 "한나라당 당직자 회의에서 저에게 출석을 보류하는 것이 좋겠다고 제의해 검찰에 출석을 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검사 : 당에서는 왜 검찰에 출석을 못하도록 하였는가요?
김태원 : 제가 한나라당 재정국장으로 대선자금 문제에 대해 알고 있는 부분이 있어 일단 피해 있는 것이 좋겠다고 당 회의에서 권유가 있어 제가 체포영장이 발부되었음에도 도피를 하게 된 것입니다.
이른바 '세풍사건'은 97년 대선 당시 세금 징수유예 등을 조건으로 24개 기업으로부터 166억원의 불법정치자금을 모금한 전형적인 권력형 비리사건이다. 그리고 당시 한나라당은 총재의 동생인 이회성씨와 김태호 사무총장, 서상목 의원과 이석희 국세청 차장 등이 모금 기획에서부터 집행 심지어 범인도피에 이르기까지 조직적으로 관여했다. 그럼에도 한나라당은 당시 IMF 긴급구제금융 상황임에도 '방탄국회'로 국정을 마비시켰다.
게다가 영수증 없이 관행적으로 이뤄진 2002년 민주당 대선자금 사건과 국가기관(국세청과 안기부)이 직접 개입해 강제모금한 97년 세풍 사건은 그 본질이 서로 다르다. 그럼에도 당시 안기부 동원 공기업 모금 사건을 수사한 박철준 주임검사와 국세청을 동원한 '세풍' 사건을 수사한 이승구 주임검사는 지난 11일자 검찰 간부인사에서 사표를 내야 했다.
'이상수 사건'의 본질은 상대 후보가 집권했을 경우 불이익을 받을 것을 우려해 정치자금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는 기업측의 관행적인 요구에 따라 영수증을 끊어주지 않아 정치자금법을 위반한 것이다. 그러나 김태원 후보는 97년 당시 공기업 모금과 국세청을 동원한 강제모금이 범죄임을 알면서도 범행에 가담했고, 금융기관의 고교 동창들을 은밀히 시켜서 불법자금을 돈세탁했고, 혐의가 드러나자 고의로 도피해 수사를 방해했다.
이를테면 그는 한나라당 사무처 차량을 끌고가 이회성씨가 동부그룹으로 거둔 30억원을 싣고와서 한나라당에 보관해두었다가 자신의 고교 동문들이 관리하는 차명계좌에 넣어두고 관리했다. 그런 점에서 2002년 한나라당 대선자금 '차떼기의 원조'인 셈이다.
'차떼기의 원조' 두둔한 강재섭-박근혜 전·현직 대표
그럼에도 강재섭 대표는 지난 3월 초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강조한 민주당의 '비리 전과자 공천배제 원칙'이 세간의 주목을 끌자, 한나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저쪽은 개혁 공천하는데 우리는 안 그러고 있다는 말이 있는데 천만의 말씀이다"면서 "민주당이 한나라당 공천을 벤치마킹해 겨우 이 정도 수준에 왔다"고 폄하했다.
"상대당은 정치적으로 주도권을 쥐고 있다고 해서 (여당 시절에) 부정부패 사범을 사면복권하고 다음날 장관 취임하고 해서 그런 부패사범이 당에 꽉 차 있는 것이다. 이걸 어떻게 정리할까 해서 정리하지 못할 건데 외부 공천심사위원회가 와서 이 정도 한 것이다. …한나라당은 이미 일정수준의 도덕성을 확보하고 있는 정당이다. 우리당은 지난번에 당헌당규를 다 고쳐서 금고 이상 형을 받은 분들은 아예 신청도 못 받게 창고에서 거부해서 그분들 출마도 못했다."
강 대표가 '부정부패 사범을 사면복권해 다음날 장관 취임' 운운한 것은 이상수 전 장관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앞에서 보았듯이, 김태원과 이상수는 다르다. 그런데도 강 대표가 김 후보에 대해 "그런 사람이 무슨 죄가 있냐"고 두둔하는 것은 이율배반이다.
더구나 지난 총선을 앞두고 '천막당사'에서 뼈를 깎는 심정으로 한나라당 개혁을 주도했던 박근혜 전 대표까지 나서서 "한나라당은 김 후보에게 큰 빚을 지고 있다"고 그를 '희생양'으로 띄우는 것은 정치 지도자로서의 도덕 기준과 상황 인식에 심각한 문제가 있음을 의미한다.
그런 점에서 김 후보의 경쟁자인 최성 의원(민주당)이 23일 기자회견을 갖고 "한나라당이 '차떼기'로 위기에 처할 당시 천막당사로 이동해 국민에게 철저히 사과한 박 전 대표의 행보는 정치적 쇼에 불과했음이 드러났다"며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것은 공세적 정당방어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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