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총통과 현 총통 집권기 대만 경제성장률 추이.
KOTRA
국민당, 경제 침체와 반 천수이볜 분위기로 손쉽게 정권 잡아이번 대만 대선은 정치·경제·사회 그리고 대 중국 양안정책에 대한 확연한 입장 차이로 국민당과 민진당 간의 접전이 예상됐다. 작년 양당 총통 후보가 확정된 뒤 마잉주와 셰창팅 간의 지지율 차는 그리 크지 않았다.
예상과 달리 마 당선인이 대승한 데에는 갈수록 침체되는 대만 경제에서 가장 큰 원인을 찾을 수 있다.
한때 대만은 아시아 네 마리 용의 하나로, 경제규모가 한국과 어깨를 맞댈 정도로 활력이 넘쳤다. 1978~88년 장징궈 전 총통 집권기 대만의 연간 평균 경제성장률은 8.7%로, 아시아 4용 중 1위였다(홍콩 8.3%, 한국 7.3%, 싱가포르 6.9%). 리덩후이 전 총통 집권기에도 싱가포르(8.1%)에 1위를 내주었지만 2위 성장률로 위세를 자랑했다.
천수이볜 총통 집권 후 연간 평균 경제성장률은 4.1%로 급락하면서 한국·홍콩·싱가포르의 평균 성장률 5.7~5.2%에도 현저히 못 미쳤다. 2001년에는 사상 최초로 마이너스 성장(-2.2%)을 기록하기도 했다. 잘 나가던 대외무역도 1980년대는 세계 11대 수출대국으로 아시아 4용 중 1위를 차지했으나, 2006년 현재 세계 16위로 4용 중 꼴찌로 떨어졌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더욱 심각하다. 대만은 한국보다 2년 빠른 1993년 1인당 국민소득 1만 달러를 달성했다. 대만은 한국과 달리 심각한 금융위기를 겪지 않았지만, 작년 1인당 국민소득은 2만 달러를 돌파한 한국보다 뒤진 1만6790달러에 불과하다. 민진당 집권 8년 동안 경제성장률이 12%에 그쳐 한국에 크게 뒤지고 있다.
천수이볜 총통의 독선적인 정치력과 급진적인 독립노선도 대만 유권자의 염증을 불러일으켰다. 천 총통은 재임 기간 모두 6차례나 내각을 바꾸었고 국무총리 격인 행정원장도 5명을 갈아치웠다. 직설적인 천 총통의 발언은 때로 도를 넘어 거친 언사로 나타났고, 국민들에게 '통합은 이루지 못하고 정쟁만 일삼는 총통'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주었다.
천 총통은 일관된 독립노선을 주창하며 현상 유지를 바라는 대만 국민들에게 불안감을 안겨주었다. 대만은 작년 국시인 '국가통일강령'의 운영을 중단했고, 대만 명의의 유엔가입 국민투표를 추진하여 중국과 첨예한 갈등을 빚어왔다. 천 총통 집권 8년간 양안관계는 정체상태에 빠져있다.
연임 성공 후 잇달아 터진 천 총통 주변의 부정비리는 대만 국민으로 하여금 민진당에 등을 돌리게 했다. 타이베이-가오슝 고속철도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천저난 당시 총통부 비서장이 뇌물 수뢰 혐의로 물러났고, 2006년에는 천 총통 사위인 자오젠밍이 대만 토지개발공사와의 주식 내부거래 혐의로 검찰에 구속됐다.
뒤이어 부인 우수전 여사가 뇌물수수와 불법 주식운용 혐의를 받으면서 천 총통은 대대적인 탄핵 위기까지 내몰렸다. '인권' '청렴' '민주화' 등으로 상징됐던 천 총통의 이미지는 땅에 떨어졌고 민진당의 지지율도 동반 하락했다. 천 총통 가족과 측근의 각종 비리의혹이 꼬리를 물면서, 민진당은 '천 총통 심판론'에 시달리다 정권을 다시 국민당에 내주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