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우진
공숙영
- 군이라는 곳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견디기 어려울 것 같은데요. 여러 가지 일을 많이 겪으셨고 혹독한 훈련도 아주 많이 받으셨더군요. "네, 그랬어요. 오랜 시간 군에 있었고 힘든 일이 많았죠. 하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의 교류가 있는 곳이에요. 저는 절대 그걸 잊을 수 없어요."
"나는 군이라는 환경이 만들어 주는 운명적 일체감이 마음에 들었다. 군 특유의 권위적인 시스템이나 전시적이고 획일적인 일 처리 따위들에는 실망이 컸지만, 동기들이 똑 같은 조건에서 함께 고생을 하며 자기를 이겨 나간다는 점이 나는 좋았다. 서로를 격려하면서 같은 목표를 향해 움직인다는 것, 그런 데에서 오는 동지애와 공동체 의식 같은 것이 내 성격에 맞았다." - 군을 날카롭게 비판하시면서도 군에 대한 애착이랄까 애정도 강하신 것으로 보입니다. 애증 같은 것일까요.
"누가 날더러 군을 짝사랑하지 말라고도 했었는데 (웃음) 군에 오래 몸담았고 군인이 천직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니까요. 이렇게 내침을 당했지만요."
"나의 군인 정신은 나라를 위해서라면 언제라도 죽을 수 있다고 말하고 있었지만, 나의 적은 북쪽 어디에 있는 게 아니라 내 주변의 남군이고 문서 쪼가리들이었다."대한민국은 군대다- 군은 대표적인 계급사회인데요. 여군이나 장교의 문제가 있는 한편 병역의 의무를 지는 남성 국민들, 병역의 의무가 없는 대신 대가를 치르는 소위 이등국민과 비국민들이 있고요. "병역의 의무를 지는 남성들은 군인 시절이 다 있잖아요. 군인이었다가 국민이었다가, 국민이었다가 군인이었다가 그렇잖아요. 군이 어떤 곳인지 군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우리 모두가 정확히 알고 함께 고민할 필요가 있고, 우선 저는 제가 보고 겪은 것으로부터 문제제기를 시작한 것인데요.
저는 군이 계급사회이긴 하지만 최소한 계급 안에서 평등하고 계급에 따라 투명하게 일이 주어지고 능력에 따라 기회가 공정하게 보장될 거라고 믿었어요. 또한 상급자들이 계급에 기대어 부리는 횡포는 정말 견디기 어려웠어요. 계급이 높으니까 그런 횡포가 없어도 자연히 계급이 보장하는 권위가 따르는 것인데 왜 그런 횡포를 부리는지 이해가 안 갔어요.
현재 군대에서 해결되어야 할 복잡한 문제들이 정말 많지요. 시간이 많이 걸리고 합의점을 찾기 어려운 문제들. 그러나 반드시 개선되고 시정되어야 하겠죠. 제가 생각하기에 좋은 조직은 힘든 건 힘들다고 솔직히 털어놓고 말할 수 있으면서 힘든 것을 함께 극복할 수 있는 조직이에요. 사람이 힘들다고 다 못 견디는 게 아니거든요."
"계급이 곧 폭력이 돼 버리는 권위적인 질서 같은 건 아무리 많이 경험해도 익숙해지지 않았다. 상위 계급이란 게 단지 임무상의 윗선이 아니라 하급자를 자기 뜻대로 조정하고 부려먹는 도구가 되는 게 군대다. 제대로 된 조직이라면 사람들이 나약한 본능으로 움직여 가는 게 아니라 내면의 좋은 능력이 살아나도록 제도가 갖추어져야 할 것이다. 내가 기대했던 군이 바로 그런 조직이었다. 영업을 하고 이익을 추구하는 곳이 아니라 나라를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조직이기에 능력을 우선하는 공평한 시스템이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나는 얼마나 순진했던가. 군대란 곳은 일반 사회보다 더 원색적인 경쟁과 폭력적 권위주의가 횡행하는 곳이었다." - 원래 반골 기질이 좀 있으신가 봐요. 훈련소 시절에도 부조리한 자질구레한 규칙은 도저히 지킬 수 없다고 생각해서 결국 최고 벌점왕이 되었다면서요. "제가 좀 그래요. (웃음)"
"여고생이 되어서도 나의 이런 기질은 변하지 않았다. 선생님이 수업료를 못 내는 아이들을 혼내면 벌떡 일어나 “수업료 못 내는 게 아이 잘못인가요?”하고 따졌고, 다 큰 여고생들에게 너무 짓궂은 장난을 건다 싶으면 정색을 하고 지적을 했다. 우리 사회에는 나이 어린 사람이 정면으로 지적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풍토가 있다. 원칙과 예의를 들먹이며 항의하는 나를 대견하게 보고 격려해 주는 사람도 있었지만 못마땅하게 보는 경우가 늘 더 많았다. 그래서 언젠가는 학교 선생에게 100대까지 맞아 보기도 했다. (중략) 그렇게 맞다가 종례시간이 다 되었다. 나 때문에 집에 못 가고 있는 아이들에게 미안해졌다. 나는 벌떡 일어나 “종례하시고 때리세요. 다시 맞겠습니다” 하고 말했다. 그러자 담임이 시뻘개진 얼굴로 “너 이거 부러질 때까지 맞아 봐라” 하고는 다시 엎드리게 했다." 유방 없는 여군은 군인이 아니다"나는 유방암 수술을 받았다. 30년 가까운 여군 생활 동안 남군에게 뒤지지 않으려 온갖 노력을 다 할 때마다 그렇게 거추장스러울 수 없던 여성의 상징을 그 수술에서 없애 버렸다. “이제야 홀가분하네.” 수술에서 깨어난 후 울먹이는 가족들 앞에서 내가 던진 첫마디였다. 쓸쓸한 감정을 밀어내며 그런 농담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여성이기 보다는 군인이 되고자 뒤돌아보지 않고 달려온 지난 세월이 있어서 가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