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불전인 보광전. 불전 앞에는 다층석탑과 석등(보물 제518호)이 서 있다.
안병기
<삼국사기>는 애장왕 3년(802)에 "가야산에 해인사를 창건하였다"라고 쓰고 있다. 애장왕은 사랑하는 공주의 불치병이 낫자 그것을 부처님의 가호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순응·이정 스님의 발원에 따라 가야산에 해인사를 지은 것이다. 공사 진척 상황을 일목요연하게 파악하기에 적당한 곳이라 판단했던 것인가. 해인사를 짓기 전, 맞바라기 산자락에다 먼저 암자를 지었으니, 그게 바로 이 원당암이다.
통일신라 왕실 원당이라는 지위도 변화무쌍한 세월 앞에선 무상하기 짝이 없는 것. 오랫동안 버려져있다시피 한 암자는 퇴락을 거듭했다고 한다. 그러던 것을 1971년에 이르러 혜은 스님이 중건했다. 그리고 근래에 조계종 종정을 지내시다 입적하신 혜암 스님께서 머무시면서 도량의 규모가 크게 바뀌었다. 사람들은 아무도 이런 원당암의 이력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 그저 '조계종 종정 혜암 스님이 계셨던 절'일 뿐이다.
암자로 들어서자, 미처 숨돌릴 사이도 없이 주불전인 보광전 마당으로 내닫는다. 보광암 마당엔 다층 석탑과 석등이 나란히 서 있다. 마치 야외에 전시된 공예품을 보는 듯하다. 아름답다는 말보다 예쁘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 같다.
다층 석탑은 김제 금산사 다층석탑과 마찬가지로 점판암으로 만든 청석탑이다. 화강암으로 된 바닥돌을 3단으로 쌓고 나서 그 위에다 몸돌을 받치는 기단을 올려놓았다. 그러나 현재 몸돌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지붕만 켜켜이 10층으로 쌓여 있다.
지붕돌들은 벼루의 재료가 되는 점판암이다. 지붕돌의 처마는 귀퉁이 부분이 살짝 위로 들려져 있어 가벼운 상승감을 느끼게 한다. 탑의 꼭대기에는 화강암 재질의 작은 노반(머리장식받침)이 놓여 있고, 그 위에 살짝 복발(엎어놓은 그릇 모양의 장식)이 얹혀져 있다.
청석탑 옆에는 석등이 있다. 본래부터 석탑과 짝을 이룬 게 아닌가 싶다. 6각형 바닥돌을 놓고나서 그 위에다 아래받침돌과 중간받침돌, 지붕돌을 놓았다. 윗면이 평평한 지붕돌 위에는 원기둥 모양의 돌 하나가 얹혀있다. 아래받침돌과 지붕돌은 점판암이며, 다른 부재는 화강암이다. 아쉽게도 석등의 화사석은 어디론가 사라진 상태다. 불을 밝히려고 세운 것이 석등이다. 불을 켜 둘 화사석이 없다는 건 그야말로 '앙꼬 없는 찐빵'이다.
공부하다 죽어라, 그것이 수행자의 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