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 건너 외따로 떨어진 정견각.
안병기
여기가 홍제암의 끝은 아니다. 계곡을 가로지르는 다리를 건너가면 거기에도 정견각과 '귀로난야'라는 현판을 단 전각이 있다.
이 건물의 안을 들여다 보지 않았기 때문에 어떤 용도로 쓰는 건물인지 알 수 없다. 어쩐지 사적인 공간일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문을 열어 보지 않았다.
그보다 한 단계 더 높은 축대 위에 정견각이 있다. 사모지붕 건물이다. '정견(正見)'은 팔정도의 하나로 바른 견해를 뜻한다. 여기서는 산신각 역할을 하고 있는 듯.
전각 안에는 산신탱화를 봉안했다. 산신은 민간신앙의 대상으로 신성시 되어 왔던 호랑이를 의인화한 것이다.
다리를 건너서 인법당 앞마당으로 되돌아온다. 내 어린 날의 영웅 사명대사에게 작별을 고해야 할 시간이다. 이제 영웅을 기다리는 시대는 멀리 갔다. 그들은 벌써 오래 전 하나둘씩 땅으로 끌어내려졌다. 그래도 어릴 적 영웅만은 아직 높은 곳에서 끌어내리고 싶지 않다. 모든 작별에는 의식이 필요한 법, 다시 석장비로 다가가서 그 생채기를 어루만지면서 깨알 같은 글씨를 읽어내린다.
허균과 함께 사명당 유정 스님을 옹호하다이 "자통홍제존자사명송운대사석장비"를 쓴 허균은 국가가 강적과 대적해 싸우는 전시를 당했기 때문에 " 미혹한 중생의 번뇌를 털어 없애주고, 씻어주는 일을 제대로 할 겨를이 없었다"라고 사명대사의 생애를 안타까워한다. 내킨 김에 허균은 이렇게 사명당을 옹호한다.
스님을 깊이 알지 못하는 사람들 중에는 사명 스님이 중생으로 하여금 미진(迷津)인 차안(此岸)에서 피안(彼岸)으로 건네주는 일을 등한히 하였고, 구구하게 나라를 위하는 일에만 급급하였다고 비판하지만, 그들이 어찌 나라를 침범한 악마를 죽이고, 국난을 구제하는 것이 곧 불교의 한량없는 공덕을 짓는 일인 줄 알 수 있겠는가! 유마거사의 무언(無言)이 바로 불이법문(不二法門)에 들어가는 것이어늘, 어찌 요란스럽게 말로 훈도(訓導)할 필요가 있으랴! 불녕(不侫)이 비록 유가(儒家)에 속하는 무리이지만, 서로 형님 아우라고 호칭하는 친한 사이로 누구보다 스님을 깊이 알고 있다. *불녕- 재주가 없는 사람이란 뜻으로 자기를 겸손하게 이르는 말 허균이 어디에선가 사명당을 헐뜯는 얘기를 들었던 모양이다. 목소리가 약간 흥분된 어조다.
맞다, 승병을 일으켜 왜와 싸웠을망정 나라고 어찌 수도자로서 수행에 전념하지 못한 회한이 없을손가. 전란의 시대에 태어나지 않았다면, 누군가 나 대신 책임을 져 주었더라면, 내 어찌 부휴 선수 스님 같이 수행에 몰두하여 오로지 부처 되기만 꿈꾸며 살 수 없었겠는가. 그러나 아무리 그렇기로소니, 내 어찌 중된 자로서 "중생의 번뇌를 씻어 줄 겨를조차 없었노라"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으랴.
비록 사명당의 호국의지가 임금의 은혜를 갚으려는 것이었다 해도 그건 사명당이 살던 시대의 한계일 뿐이지, 사명당 개인의 한계는 아니었다. 이땅의 그 누구도 임진왜란의 왜적을 물리치는데 사명당이 크게 기여했다는 것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슬슬 홍제암을 떠나간다. 내 어린 시절의 영웅이여, 그만 안녕.
덧붙이는 글 | 비문의 해석은 한구금석문 종합영상시스템 자료를 참조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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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곳을 지향하는 눈(眼)과 한사코 사물을 분석하려는 머리, 나는 이 2개의 바퀴를 타고 60년 넘게 세상을 여행하고 있다. 나는 실용주의자들을 미워하지만 그렇게 되고 싶은 게 내 미래의 꿈이기도 하다. 부패 직전의 모순덩어리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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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하다, 중생의 번뇌를 씻어 줄 겨를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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