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로서 군주로서 늘 고민하는 이방원. 드라마 <대왕세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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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예를 본다면, 그가 생전에 받은 양녕대군이란 칭호 속에도 뭔가 심상치 않은 의미가 담겨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그럼, 태종의 장남 이제(1394~1462년)는 언제부터 양녕대군이라 불리게 되었고, 왜 그렇게 불리게 된 걸까?
제1남인 이제는 11세가 되던 태종 4년(1404)에 왕세자로 봉해졌다. 그 이전에는 대군으로 봉해진 적이 없기 때문에, 왕세자 시절에는 양녕대군이라고 불리지 않았다. <태종실록> 태종 18년(1418) 6월 5일자 기사에 따르면, 그는 폐세자 직후에 양녕대군으로 강봉되었다. 그는 그날부터 양녕이란 호칭을 갖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세자 자리를 잃는 시점에서 그의 대군호에 양(讓)이란 글자가 들어간 이유는 무엇일까? 당시 폐세자를 주도한 인물이 국왕인 이방원이었으므로, 대군호 제정에도 그의 의중이 반영되었을 것임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양녕대군이란 칭호 속에 담긴 이방원의 의중은 무엇이었을까?
일반적으로 볼 때에, 한자 '양'에는 책망이나 겸양의 뜻이 담겨 있다. 하지만, 양녕대군의 경우에는 책망의 뜻이 담겨 있다고 보기 힘들다. 왜냐하면, 아들들에게 항상 형제간의 우애를 강조하는 태종이 안 그래도 불쌍한 장남에게 그런 치욕적인 대군호까지 부여했다고는 생각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만약 '국왕의 책망을 받은 사람'이라는 의미에서 양녕대군이란 칭호를 부여했다면, 이후에 형제들 사이에서 양녕의 입지는 한층 더 좁아지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아들들 간의 유혈쟁투를 극히 두려워하는 태종이 그런 어리석은 일을 했다고는 보기 힘들 것이다.
따라서 이 경우에는 책망의 의미보다는 양보의 의미, 특히 <서경> '요전'(堯典)에서 강조된 의미가 담긴 것이라고 해석해야 할 것이다. <서경> '요전'의 주석에서는 "어진 이를 추천하고 착한 이를 높이는 것을 양(讓)이라 한다"고 했다. 어질고 착한 사람을 군주로 추대하는 행위를 '양'이라고 본 것이다.
그러므로 양녕대군이란 칭호에는 '어질고 착한 사람을 군주로 밀어준 사람'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양녕의 덕행을 칭송하는 의미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