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안 병마용박물관 1호갱에 있는 병마용
최종명
개관 이래 4천만 명 이상이 다녀간 곳. 1호 갱에는 6천여 건이나 되는 병마용 유물이 있으니 정말 세계문화유산으로 손색이 없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천장 곳곳에 비가 새고 있어서 놀랐다. 그토록 자랑하는 박물관을 비가 샐 정도로 관리한다는 것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클로즈업으로 병마용의 이곳 저곳을 보고 있노라니 정말 기원전 시기에 이렇듯 아름다운 모양이 어떻게 가능할까 하는 감탄이 절로 생긴다.
천징위엔의 주장처럼 진시황이 아닌 진소왕이 고향인 초나라로 돌아가고 싶어한 어머니를 위해 만들었다면 그야말로 기적의 예술품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병마용의 모습은 다양하고 서로 다르다. 사람의 얼굴이 서로 다른 것처럼 다른 표정, 동작, 자세가 그대로 묻어있다. 대부분 군복을 입었지만 갑옷을 입은 것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자연스럽게 손을 차려 자세로 서 있기도 하지만 손을 살짝 들고 있는 것도 많다. 말들도 몸집에 차이가 있다.
가장 흥미로운 것은 옷 색깔이다. 천징위엔의 주장을 보면 진시황은 통일 후 통치를 위해 옷을 모두 흑색으로 통일했다고 한다. 그런데, 병마용의 옷을 보면 전체적으로 붉은 빛이나 빛이 다소 바래긴 했지만 녹색 빛이 남아있는 전투복 상의에 자세히 보면 자주색 빛깔이 군데군데 드러나는 바지 차림이다.
2천년 이상 땅 속에서 숨쉬면서도 고유 색채 유지병마용이 2천년 이상의 세월을 땅 속에서 숨쉬고 있으면서도 그 고유의 자기 색채를 유지한 것이 놀라울 정도다. 흙이 변하겠는가. 진소왕 이전 순장도 많았던 시대에 굳이 흙으로 병마용을 구웠기에 이렇듯 오랜 세월에도 빛나는 혼을 지켜온 것이 아닐까 싶다.
전투 부대이구나 느낄 편대의 행렬이지만 간혹 그 배치가 군대라고 보기에는 느슨하게 서 있는 모습도 있다. 가슴에 구멍이 뚫린 병마용이 몇 개 보인다. 갑옷 속을 뚫고 지나간 자리처럼 허하게, 멀리서 보면 어둠의 빛깔처럼 느껴지는데 그것을 보는 마음 역시 허망해진다. 같은 세월을 견뎌왔으면서 머리가 떨어져 나간 것도 서러운데 구멍까지 났을까. 사람이 다 서로 그 본성이 다르듯이 병마용도 다 다름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