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릉'의 홍살문인경왕후의 익릉을 홍살문이 호위무사처럼 지키고 서 있는 모습
이성한
인경왕후는 열 살 때 세자빈으로 책봉되어 숙종이 즉위하자 그의 첫 번째 부인이 된 왕의 여자입니다. 그러나 그녀는 애석하게도 천연두를 앓아 발병 8일만에 세상을 뜨고 말았답니다. 중전이 되고서도 남편의 사랑을 제대로 한 번 받아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그녀의 한(恨)을 풀어주기라도 하려는 듯, 숙종은 인경왕후의 무덤을 서오릉의 가장 높은 지대 위에 보란 듯이 마련해 주었던 모양입니다.
스무 살의 나이에 남편을 두고 세상을 떠나간 조강지처를 위해 숙종은 그 나름 안타까운 마음을 달래려 비교적 기품 있고, 위엄 있는 무덤을 조성케 배려를 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떠나간 임은 돌아올 수 없는 법, 살아생전 뜨겁게 받지 못한 남편의 사랑을 어찌 죽어서 받을 수 있으리오?
나는 아이들과 나지막하게 경사진 익릉의 삼도를 바쁘지 않은 걸음으로 천천히 내려왔습니다. 그리고 얼마를 다시 걸어 ‘순창원’을 지나고, 소나무와 참나무가 어우러져 무리를 이룬 왕릉의 숲을 지났습니다. 그런데 몇 발짝 걸음을 옮기는 찰라 나는 이 숲에서 혼령들이 훨훨 자유로이 노니는 것 같은 환영을 감지했습니다. 그 숲에는 얼마동안 적막이 흘렀고, 나는 그 곳에 가만히 서 있었습니다.
잠시 후 이름모를 새들의 지저귐이 숲의 고요를 깨뜨렸습니다. 나는 혼유의 숲이 주는 신비함과 신령스러움을 몸소 으스스하게 느끼며 덕종과 소혜왕후가 나란히 누워 있는 ‘경릉’으로 향했습니다.
덕종은 세조의 맏아들로 세조가 즉위한 지 3년만에 세상을 떠난 추존 왕입니다. 성종이 즉위하여 추존되기 전까지 덕종의 묘는 ‘대군묘제도’를 따랐기에 그 초라함은 측은하기까지 해 보입니다. 특히나 ‘동원이강능’-하나의 무덤 영역 안에 두 개의 무덤을 조성해 놓은 능-의 형식으로 조성된 무덤을 자세히 살펴보면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