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똔레삽 호수의 어린 뱃사공소년은 얼마나 자랐을까? 2005년 1월
이승열
떠나기 전날 밤 친구에게 내 여행을 알리는 짧은 편지를 썼다.
내 여행은 육체의 떠돎이라고, 사주에 있는 역마살 때문이라고 오랜 기간 착각하고 살았습니다. 어느 날 문득 깨달았습니다. 내 역마살은 육체의 떠돎이 아니라 어쩌면 마음 내려놓을 곳을 찾으려는 몸부림일지도 모른다는… 끝내 이렇게 평생을 떠돌지도 모른다는 자각은 공포에 가까웠습니다. 이제는 오랜 여정을 끝내고 앙코르와트에 나를 내려놓고 오려 다시 씨엠립으로 떠납니다. 단돈 일 달러를 위해 다라이를 타고 손으로 노를 저어 관광객의 보트를 향해 돌진하는 아이들, 노동으로 단련된 열서너 살을 넘지 않은 똔레삽 호수의 어린 사공들, 팔다리를 잃은 채 아리랑을 연주하던 거리의 악사. 삶에 대한 엄살과 투정은 이쯤에서 끝내고, 살아 있는 것이 행복이고 축복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확인하러 떠납니다. 그녀로부터 답이 왔다.
씨엠립… 바람처럼 다녀오세요. 이제 이름마저 잊은 씨엠립 시내의 한 까페에서 프라이드 치킨과 생맥주를 한모금 하고 싶군요. 오리엔털리즘에 매혹된 유러피언들이 거리의 갸날픈 인도차이나 처녀들을 시선으로 널름거리고 있던 풍경을 기억합니다. 가난하지만 아름다운 나라… 저 멀리 피안처럼 서 있던 앙코르와트에게 우리 모두의 안부도 전해주셔요. 그럴 수만 있다면, 그 거대한 돌조각 어느 구석에서 잠깐 졸아보면 어떨지?
공항 활주로 끝에 덩그러니 안착한 비행기 트랩을 내려오니 제일 먼저 나를 맞는 것은 냄새, 언제나 그렇듯이 오감 중에 제일 먼저 달라짐을 감지하는 것은 코이다. 열대의 공기가 품고 있는 희미한 나무 냄새, 내가 기억하는 씨엠립, 앙코르와트의 냄새다. 하루에 단 한번 비둘기호 열차만이 잠시 정차하는 간이역 같았던 씨엠립 공항이 새 단장을 하여 불빛이 밝다.
비자 발급을 위한 서류, 사진과 함께 미화 20불을 내미니 '투웨니원달러'를 강조한다. 밤 열시가 넘은 시간, 그새 야간 할증제도가 생겼나 하는 의문과 함께 잠시 갈등하다 길게 늘어선 줄 때문에 더 이상 묻지 않고 입국 심사를 마치고 나오니 보름달이 환하다. 운이 좋으면 달빛이 쏟아지는 사원을 걸을 수 있겠다는 기대감에 살짝 흥분이 된다. (씨엠립을 떠나던 날 팁을 요구하는 출입국 심사대의 직원을 보고 '투웨니원달러'의 의문이 풀렸다)
호텔까지 우리를 데려다 줄 몸집이 작은, 눈만 마주치면 대책 없이 미소부터 띠는 캄보디아 청년이 차에 타자마자 다짜고짜 한국노래부터 틀어댄다. 그것이 이곳에서 달러를 뿌려대는 한국인을 위한 최상의 서비스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방금 전 대설주위보가 내려진 서울을 떠나 30℃가 넘는 열대에 와서 처음 맞이하는 풍경이 차 안의 뽕짝 소리와 6번 도로변을 점령해 버린 한국어 노래방 간판들이라니. 우리들이, 내가 남기고 간 흔적의 현주소란 생각에 미안한 마음이 앞선다. 정중히 음악을 꺼달라고 부탁하고 가로등 하나 없는 거리를 달리기 시작하자, 이곳이 씨엠립임이 비로소 실감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