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육 시간에 현아. 신입생이지만 그냥 끼어주는 '깍두기'처럼 있지 않고, 이어 달리기를 잘 해서 제 몫을 했다.
배지영
다시 학교로 돌아오는 길에 땅바닥에 바짝 붙어서 날렵하게 다니는 자동차를 봤다. 그 안에 탄 남자가 인사를 건네왔다. 시골 마을에 어인 '날라리' 행차인가 싶어서 '쌩깠다'. 학교에 가 봤더니 그가 내초도 분교장 진명식 선생님이었다.
작년에 내초도 분교는 재학생 3명에 입학생 1명, 모두 4명이었다. 2학기 때 황태준 황한솔 남매가 전학 와서 6명이 됐다. 올해 입학생 박현아까지 더하면 총 7명이다. 그러나 2년 전에는 12명이었다. 그 때 진명식 선생님은 <분교 수기 공모>에 '기필코' 당선되어서 아이들을 데리고 2박 3일 동안 에버랜드와 서울 구경을 다녀오기도 했다.
진명식 선생님은 내초도 분교에서 5년째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올해 입학하는 현아가 한글을 읽고 쓸 줄 안다는 것을 미리 알고 있었다. 그 전에는 ㄱ ㄴ부터 가르친 아이도 있었다. 아이들은 학교가 끝나도 시내의 아이들처럼 학원에 가지 않는다. 선생님들(진명식·하정훈) 퇴근 시간까지 컴퓨터와 글쓰기를 배운다. 책도 읽고, 한자 급수 공부도 한다.
나는 우리 아이 학교 보내고 공교육에 대한 마음이 비뚤어졌다. 선생님은 붙박이 가구처럼 있었다. 다리를 깁스한 우리 아이가 급식실에 오고 가도록, 아이 고모나 이모, 때로는 '알바생'을 보내야 했다. 한글 공부를 따로 안 하고 학교에 간 아이는 "받아쓰기 때문에 살 수가 없어"하면서 울었다. 나는 왜 미리 한글 떼는 학습지를 시키지 않았을까 괴로워했다.
가끔은 생각했다. 옛날, 우리들은 모두 천재였을까? 어떻게 한글도 안 배우고 학교에 가서도 맞춤법을 틀리지 않고 글을 쓰게 된 걸까? 떠오르는 건 '나머지'였다. 아이들은 받아쓰기를 못하거나 구구단을 못 외우면, 남아야 했다. 학교 끝나면 야구나 축구, 냇가에서 목욕도 할 수 없었다. 그 날의 '나머지'들은 선생님에게 안 들키게 서로 얼굴을 찌푸렸다.
아이들은 오후 5시쯤 되면, 부모님한테 혼날 일을 생각하고는 질질 짰다. 들에 매어놓은 소도 데려와야 하고, 마당에 널어놓은 콩이랑 고추도 들여놔야 하는데…. 선생님은 좀처럼 "합격!"이라고 하지 않으셨다. 우리 반에 거의 날마다 '나머지'를 하던 친구는 어둑어둑 해진 뒤, 선생님 자전거에 타고 집에 오기도 했다.
교사 1인당 학생수 3~4명, 여기는 '신이 내린 학교'3월 3일 입학식 날, 본교인 해성초등학교 문원식 교장 선생님은 혼자 입학하는 현아 어머니와 경기도 하남에서 일부러 오신 현아 외할머니, 외할아버지에게 내초분교는 "신이 내린 학교"라고 하셨다.
선생님 한 명당 학생 수가 서너 명이어서 교육의 질은 높고, 마음껏 볼 수 있는 책도 많고(작년에 본교와 분교를 합쳐서 뽑은 독서왕은 분교의 고승환, 상품으로 자전거를 받았다), 방과 후에도 선생님들이 무보수로 공부를 봐 주니 특별한 학교라고.
'신이 내린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스스럼이 없었다. 누군가의 시작으로 말싸움을 하고, 치고받게 되면, 교무실에 와서 고자질을 했다. 신입생인 현아도 동네에서 줄곧 봐왔을 언니 오빠들과 서로 싸울 만큼 친한 사이인 모양이었다. 입학 첫 날부터 누구한테인가 맞아서 울고 있는 중이라고, 한솔이가 선생님한테 '일르고'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