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백 투더 퓨쳐> 리메이크판 제작에 나섰다

청와대, '프리 크라임'도 운용하나

등록 2008.03.09 08:58수정 2008.03.09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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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도 알 수 없는 미래이기에, 미래는 언제나 미지의 영역이다. '존 티토'와 같이 자칭 '미래에서 온 사람'의 예언이 화제가 되는가 하면, 영화나 만화와 같은 대중문화 장르에서도 '타임 슬립'은 언제나 흥미로운 소재로 활용된다.

 

로버트 제메키스 감독의 <백 투더 퓨쳐> 시리즈는 특히나 기억할만한 타임 슬립 소재의 영화다. 로버트 제메키스는 과거와 미래를 오가는 코믹 SF 영화에 대한 아이디어가 떠올라 영화화를 추진하려 하지만, "너무 유치하다"는 이유로 번번히 거절당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에게는 스티븐 스필버그가 있었다. 로버트 제메키스의 번뜩이는 재치를 눈 여겨보던 스티븐 스필버그는 프랭크 마샬과 케슬린 케네디 등의 자신의 동지까지 <백 투더 퓨쳐>의 기획 파트를 맡아 로버트 제메키스의 든든한 후원자를 자처한다.

 

그렇다면 영화 제작의 결과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일이다. 말 그대로 초대박이 난 것이다. 미국 현지에서만 1억 400만 달러의 흥행 수입을 올렸고, 세계 흥행 수입은 자그마치 2억 8백만 달러였다.

 

그 이후로, 우리는 숱한 타임 슬립 소재의 영화와 만화 및 애니메이션에서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우리는 두 눈 뜨고 있는 와중에 '타임 슬립'을 지켜볼 아주 소중한 기회를 맞이할 수 있었다. 누구냐고? 놀라지 마라. 대한민국 대통령이 거주하고 그 참모들이 두루모인 청와대였다.

 

청와대판 리메이크 <백 투더 퓨쳐> 과거편, '지록위마(指鹿爲馬)'

 

청와대판 리메이크 <백 투더 퓨쳐>는, '과거편'과 '미래편'으로 구성돼 있다. 같은 '타임 슬립'을 소재로 했다고는 하지만, 두 영화의 분위기는 전혀 다르다. '과거편'은 역사에서 빌려온 모티브를 현대적으로 리메이크한 일종의 '퓨전 사극'이다.

 

'과거편'이 빌려온 모티브는, 중국 진나라 시황제 사후, 호해(胡亥)가 2세 황제로 즉위했던 시절이다. 그 시절 진나라에는, 어리석은 2세 황제를 대신해 모든 권력을 행사하던 환관 '조고(趙高)'가 있었다.

 

그가 반역을 일으키려 했다는 이야기도 있으며, 자신에게 해가 될 정신 멀쩡한 신하들을 숙청하려 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어쨌든, 조고는 2세 황제에게 사슴을 바친다. 그런데, 그는 이렇게 말한다.

 

"이 말을 폐하께 바칩니다."

 

멀쩡한 사슴을 말이라고 하니, 황제는 "이 녀석이 나한테 장난치나" 싶은 생각이 들었나 보다.

 

"이게 어떻게 말이니? 사슴이지. 야, 너희들은 어떻게 생각하니?"

 

2세 황제가 이렇듯 신하들에게 물어보자 다양한 반응이 나온다. 가만히 있는 중신들도 있었으며, "이건 사슴인데 승상이 장난치는 것 같다"는 반응을 보이는 사람들도 있었다. 조고는 중신들의 행동을 똑똑히 기억해둔다.

 

그 이후엔, 어떻게 됐을까? '사슴'이라고 정직하게 답변했던 사람들은 모두 숙청당했다.

 

<삼국지연의>에도 비슷한 내용의 일화가 있다. 조조가 한중 원정을 떠났을 때, 반 조조 세력이 수도에 불을 지르며 난을 일으키다가 제압된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조조는 조정의 중신들을 모아놓고, '불을 끄러 나온 사람'과 '집에 쳐박혀 있던 사람'으로 알아서 흩어지라고 한 것이다.

 

그 결과, '불을 끄러 나왔다'는 편에 선 사람들은 모두 숙청당했다. "불을 끄러 나온 척하면서 반란에 동조하려고 했다"는 혐의였던 것이다. 반대로, '집에 쳐박혀 있던 사람들'은 "겁은 많을지라도 반란에 동조할 생각은 없던 기특한 녀석들"이라는 이유로 오히려 상을 받았던 것이다.

 

청와대가 기획·제작·연출한 <백 투더 퓨쳐> '과거편'에서는,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주연배우로서, '조고'와 '조조'의 역할을 맡았다. 온갖 불법비리 의혹을 가득한 장관 내정자들을 향해 '베스트 오브 베스트'라면서 자신이 직접 나서 국민들에게 소개하는 내용의 영화인 것이다.

 

물론, 이들은 '베스트 오브 베스트'였다. "자연을 사랑했을 뿐 땅투기는 아니었다"던 환경부 장관 후보자와 '삼청교육대 이론 정립'과 '미국 국적 딸에게 건강보험 혜택을 적용시킨' 보건복지가족부 장관 내정자, 그리고 독재자에게 아부한 전력이 있는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 등, 이들이 '베스트 오브 베스트'가 아니면 누가 '베스트 오브 베스트'인가.

 

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이 말한 '베스트 오브 베스트'와 국민들이 이해한 '베스트 오브 베스트'는 그 의미가 다르다. 이명박 대통령은 한마디로 '사슴'을 '말'이라고 주장한 격, 국가폭력의 대표작이었던 '삼청교육대 이론 정립' 경력을 가진 사람을 '베스트 오브 베스트 실용인사'라고 주장했으니, 이게 뭐가 다른가.

 

<백 투더 퓨쳐> 과거편은, 언론과 국민들로 하여금 지나간 언론 보도를 돌아보게 한다는 포인트도 숨어 있다.

 

언론은,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가 20여 년 전에 독재자와 골프 회동을 가졌다는 보도를 찾아내면서 보건복지가족부 장관 후보자가 1년 전에 "(참여정부의) 복지 정책 실패는 신앙심 부족"이라고 주장한 신문 게재 칼럼을 찾아냈다. 대선 당시에도, 대통합민주신당은 <세계일보> 1993년 3월 27일자 보도 <이명박 의원 도곡동 땅 은닉>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찾아낸 것이다.

 

촘촘한 시나리오 덕분에, 언론과 관객마저도 과거를 탐구하게 만들도록 하는 것이 '과거편'의 매력이다. 과거편 '지록위마(指鹿爲馬)'는 '미래편'이 개봉된 지금에도 관객들의 입소문 속에서 장기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다.

 

청와대판 리메이크 <백 투더 퓨쳐> 미래편, '마이너리티 리포트(Minority Report)'

 

필립 K.딕 원작, 스티븐 스필버그 연출에 톰 크루즈 주연작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2054년의 워싱턴을 배경으로 한 영화다.

 

범죄가 일어나기 전에 범죄를 예측해 범죄자를 미리 단죄한다는 '프리 크라임'이라는 최첨단 치안 시스템을 소재로, 그 자신이 살인을 저지르는 장면이 예언된 존 앤더튼(톰 크루즈)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현재와 미래를 초월하는 이 내용은, 인간이 기계의 지배를 받는 미래 세계에서 인류의 반란세력을 주도하는 '존 코너'의 탄생 자체를 막기 위해 '터미네이터'를 과거로 보내 '존 코너'를 암살하려 한다는 이야기를 안고 있다.

 

'미래편'은 이 내용을 끌어안으며, 현실 정치를 무대로 제작됐다. 국내 굴지의 재벌 그룹의 '공직자 뇌물 수수'를 폭로하기 시작한 변호사와 사제단이 '현 정부 인사들의 이름'을 거론하려 하자, 청와대 대변인이 미래로 달려가 그 내용을 입수한 뒤에, 사제단이 폭로하기도 전(약 1시간 전)에 "조사결과 거론된 분들이 떡값을 받았다는 증거는 근거가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는 해명을 한 것이다.

 

청와대 대변인이 직접 미래로 다녀온 것인지, '터미네이터'를 미래로 보낸 뒤 그 정보를 입수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영화도 명확하게 말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터미네이터'를 미래로 보낸 뒤 알아낸 것이라면 우리는 그야말로 무서운 광경을 본 것일 수도 있다. '터미네이터'가 '존 코너'의 탄생을 막기 위해 그 어머니 '사라 코너'를 죽이려 했던 <터미네이터> 속의 장면을 떠올려야 하는 것이다.

 

<마이너리티 리포트> 속의 '프리 크라임'이라고 가정해도, 그 무서움은 쉽게 가셔지지 않는다. '프리 크라임'의 운용 목적은 '사건 발생 전에 사건 가능성 자체를 없애며 용의자를 체포하는 것'이다.

 

'미래편'의 마무리는,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를 연상시킨다. 이제 막 개봉한 영화의 스포일러를 언급해 독자 여러분들께 송구스럽지만, 내 손이 나를 가만히 놔두지 않는다. 그 장면을 동영상으로 담아 인터넷 포털 사이트 등지에 게재된 기사는 동영상과 함께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이다. 우리도 <1984>의 마무리처럼 "그는 빅 브라더를 사랑해야" 할지도 모르는 것이다.

 

청와대가 말하는 '영화 제작의 변'

 

'미래편'의 언론시사회는 청와대에서 열렸다. 청와대 관계자는 영화 내용에 대한 보안을 강조하며 '엠바고'를 강조했다.

 

하지만, '미래편'의 내용은 영화 속의 내용에서처럼 그대로 공개됐다. 당연히 전국은 발칵 뒤집혀졌다. 청와대가 시간을 달린다는 둥(타임 슬립 소재 애니메이션 <시간을 달리는 소녀>), '프리 크라임'을 운용하고 있다는 둥, '터미네이터'를 비밀 병사로 부리고 있다는 둥, 다양한 소문들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영화 내용이 공개된 것에 대해 "사제단이 어느 선까지 발표할지 대충 알고 있지만 지금 언급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해명하면서 돌아다니는 소문이다. '지금 언급하는 것이 적절치 않다'고 한 그 '어떤 방식'에 대한 소문이 '터미네이터' 등을 운운하며 돌아다니고 있는 것이다.

 

사제단은 청와대의 반응에 대해 "도둑이 제 발 저린다는 표현을 이럴 때 쓰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미래편'의 반향을 알 수 있는 반응이다. 소문만 무성할 뿐 '미래편'이 제작된 동기나 그 방향에 대해서는 아직도 알려진 것이 없다.

 

확실한 것은 하나, 우리는 지금 할리우드에서 제작된 미래 영화가 이야기하는 미래의 부정적 단면을 일찌감치 봐버렸다는 것이다. '미래편'이 설령 재미있을지라도, 씁쓸한 뒷맛을 느껴질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아닐까. 그래서인지, 8일 하룻동안 청와대 리메이크판 <백 투더 퓨처>에 대한 대중의 반응은 격앙 일색이었다. 안타까운 일이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미디어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08.03.09 08:58ⓒ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미디어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돌발영상 #마이너리티 리포트 #삼성 특검 #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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