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운대. 이항복의 집터에 있다. 필운은 백사와 함께 이항복의 호다. 현재는 배화여대 구내에 있다.
이정근
“윤 대감 막내 여식이 올해 몇이오?”
“열두 살 이외다. 왜 그러시오? 좋은 혼사라도 있소?”
“아니, 윤대감이 모르고 있었단 말이오? 궐에서 곧 간택이 있을 것이라 하는데 여식을 한 번 내보내 보시지요.”
정묘호란으로 강화도에 몽진했다 환궁한 인조는 국본(國本)을 염려했다. 군부와 세자 그리고 원손. 이렇게 혈맥으로 단단히 묶여 있으면 어떠한 환란이 닥쳐도 걱정이 없을 것 같았다. 세자 나이 열세 살. 어서 세자빈을 맞아들여 원손을 보고 싶었다. 인조는 서두르고 있었다.
“당치않은 말씀을, 저희 여식은 아직 어리고 배운 것이 미천하여 어림없습니다. 그리고 그게 어떤 자리인데 내보내고 싶다고 내보낼 수 있습니까?”
“인물이 곱던데… 한 번 밀어 볼까요?”
“아서요, 아서. 언감생심 꿈도 꾸지 말아야지요.”
손사래를 쳤지만 윤대감은 내심 싫지 않은 기색이었다.
“아닙니다. 소인이 한 번 밀어보겠습니다.”
“어림없다니까요. 하하하.”
사랑채에서 흘러나온 소리를 엿들은 연실이는 가슴이 두근거리고 얼굴이 붉어졌다. 두근거리는 가슴은 참새 심장처럼 콩닥거렸다. 숨이 가빠오며 입술이 타들어갔다.
“왕자님이라고 하셨지? 잘 생겼을까? 못생겼을까?”
연실이는 그날 밤, 잠을 이루지 못했다. 밤하늘에 떠있는 무수히 많은 별을 헤이며 왕자별을 찾았다. 별 속에서도 백마를 탄 왕자님을 찾아 헤맸다. 연실이가 하얗게 밤을 새운 이튿날 아침.
“이리 오너라.”
인왕산 아래 순화방에 자리 잡은 강 승지 집에 호령소리가 들렸다. 임금을 모시고 있는 승지 집을 찾아와 큰 소리 칠 수 있는 사람은 조선 팔도에 그리 많지 않다. 화들짝 놀란 하인이 짚신을 잘잘 끌며 빼꼼한 대문 사이로 물었다.
“뉘신데 이른 아침부터 영감 댁에 와서 큰 소리 치시우?”
“장동 김 대감이라고 일러라.”
하인의 전갈을 받은 강석기가 버선발로 뛰어나왔다. 김 대감이 누구인가? 집권 서인세력을 이끄는 좌장이 아닌가? 비록 학맥은 달라도 조선의 사대부들이 머리를 조아리는 위인이 아닌가? 강석기는 심장이 벌렁벌렁 뛰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꾸지람 들을 일은 없는 것 같은데 무슨 호통이 떨어질지 겁이 덜컥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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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事實)과 사실(史實)의 행간에서 진실(眞實)을 캐는 광원. 그동안 <이방원전> <수양대군> <신들의 정원 조선왕릉> <소현세자> <조선 건국지> <뜻밖의 조선역사> <간신의 민낯> <진령군> <하루> 대하역사소설<압록강>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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