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이동경로, 스토리에 등장하는 지명을 중심으로 표시.
김성국
"둥둥둥, 둥둥둥." 갑자기 바깥에서 북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무슨 일일까?' 상황이 궁금했던 나는, 영아를 잠시 게스트 하우스에 남겨 둔 채 급하게 자전거를 끌고 거리로 나섰다.
나중에 알았는데 이날은 다름 아닌 시아파 모슬렘들의 애도절인 아슈라(Ashura)였다. 모슬렘들은 다수의 수니(Sunni))파와 소수의 시아(Shi'a)파로 나누어지는데, 이란은 대표적인 시아파 모슬렘 국가다.
여기서 잠시, 이슬람이라는 종교를 접하게 되면 반드시 따라오는 용어인 '수니'와 '시아'에 대해 간단하게나마 짚고 넘어가야 할 것 같다.
서기 632년, 이슬람의 창시자인 예언자 무하메드(Mahomet)가 죽은 후, 이슬람 세계는 그의 뒤를 이를 후계자 문제로 혼란에 빠졌다. 이후 권력은 마호메트의 혈통이 아닌 예지드(Yezid)에게 계승되었고, 이를 받아들이지 못한 무하메드의 손자 후세인(Husayn)은 반란을 일으킨다.
하지만 후세인과 그를 따르는 72명의 추종자들은, 현재 이라크 땅인 캬르발라(Kerbala)에서 예지드가 보낸 군대에 의해 전멸 당한다. 이 비극의 날이 바로, 이슬람력으로 1월 10일. 시아파 모슬렘들이 말하는 눈물의 '아슈라'다(시아파 모슬렘들은 이 아슈라가 있는 달에는 결혼식마저 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 사건을 계기로 이슬람 세계는 수니파와 후세인을 따르는 시아파로 분열된다. 이맘(Imam; 모슬렘의 지도자)의 정통성을 강조하는 시아파는 이슬람교를 창시한 예언자 무하메드의 직계 자손만이 하느님의 말씀을 제대로 전할 수 있다고 믿는다.
조금 더 역사적인 배경을 살펴보면, 첫 번째 이맘 알리가 살해당하고 그 영토는 시리아의 군주에게 넘어갔다. 그 후 시리아의 왕위를 계승한 예지드는, 세 번째 이맘인 후세인에게 조공을 바칠 것을 명령했다. 그에 못마땅하던 차, 예지드에 의해 임명된 그 지방 통치자의 폭정으로부터 자신들을 구해달라는 이라크 땅 쿠파(Kufa)의 한 시민의 요청을 받아들여 후세인은 그를 따르는 72명의 사람들을 데리고 출정했지만, 4000명에 달하는 예지드의 군사에 의해 모두 잡혀 처형당했다. 그 후, 이맘 후세인이 순교한 캬르발라 지역과 이라크의 쿠파 지역은 이슬람 시아파들에게 가장 중요한 순교지 중의 하나가 되었다.
시아파 모슬렘들은, 12명의 이맘(교주)을 예언자 마호메트의 직계 계승자로 생각하는데, 그 12명 중에서도 첫째 '알리'와 셋째 '후세인', 여덟째 '레자', 열두 번째 '마디'를 가장 중요한 이맘으로 생각한다고 한다. 873년 12대 이맘을 끝으로 이맘은 자취를 감추었지만, 시아 무슬림들은 100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언젠가는 다시 올 메시아의 재림을 굳게 믿고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