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 앞 '만남의 광장'에서 윷놀이에 푹 빠져 있는 어르신들.
김대홍
답십리5동 서쪽은 답십리3동, 북쪽은 답십리1동이다. 답십리1동 방향을 따라서 북쪽으로 걷다 보면 답십리5동 사무소가 나온다. 답십리5동 사무소 옆에 조그만 식당이 하나 있다. 동네 사람들은 그 곳을 '만남의 광장'이라 불렀다.
답십리동을 찾은 날, 동네 어르신 몇 분이 식당 앞 만남의 광장에서 윷놀이를 하고 있었다. 술값 내기 윷놀이였다. 분위기는 흥겨웠다. 윷놀이터 옆엔 지글지글 국이 끓고, 소주병이 곱게 놓여 있었다.
서로 얼굴을 아는 사람도 윷놀이장에 끼이고, 지나가다 재미를 느낀 사람도 끼어들었다. 하다가 지친 이들은 가게 안으로 들어와 막걸리를 시켰다. 몇 시간 동안 윷놀이를 즐긴 이들은 어느새 친한 척을 하며 통성명을 한다.
"나이가 어찌 됩니까? 아이구 형님이네요."
"나이가 어찌 된다구요? 그럼 친구 하입시다."
근처 구멍가게 근처에선 아이들이 조그만 오락기 앞에서 게임에 푹 빠져있다. 그 좁은 자리에 세 명이나 앉았다. 의자가 기울어져 불편할 텐데도 아무 불평 없이 오락을 즐기는 모습이 재미있다. 또 다른 문구점 앞에선 두 아이가 오락을 즐기고, 한 사람이 열심히 구경한다. 때론 하는 것보다 구경하는 게 더 재미있는 법이다.
97세 시어머니 모시고 사는 할머니, 재개발되면 동네 떠나야여기서 조금 더 북쪽으로 올라가니 대로가 나왔다. 서쪽은 청량리, 동쪽은 '촬영소고개'다. 저 멀리 보이는 고개가 시원하다. 지금은 흔적조차 없이 사라졌지만, 답십리 배봉산엔 촬영소가 있었다. 1964년 작품인 <빨간 마후라> 촬영지가 바로 여기였다.
혼자서 물끄러미 촬영소고개를 보고 있는데, 인기척이 느껴진다. 바로 옆 평상에 할머니 한 분이 손자뻘 되는 아이와 함께 놀고 계셨다. 할머니는 "70대"라고 밝히셨다. 곧 할머니의 잔잔한 삶이 펼쳐졌다.
할머니는 시어머니를 모시고 살고 있었다. 시어머니는 3년 뒤면 100세. 동대문구 답십리동에 오기 전까진 서대문구 홍제동에 살았다. 내가 사는 곳이 '홍제동'이라고 했더니 무척 반가워하신다. 할아버지는 61세에 세상을 떠나셨으니 홀로 된 세월이 짧지 않다.
할머니는 "곧 사라질 동네인데, 뭐할라고 사진 찍나"라고 물으신다. "그래서 찍는다"고 말했더니 웃는듯 마는 듯한 모양이다. 할머니는 동네 할머니들 대부분이 의정부로 이사를 갔다고 하신다. 자신도 재개발되면 동네를 떠나야 할 거라고 중얼거린다. 보상을 받아도 어차피 아파트를 얻을 순 없지 않느냐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