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마미'로 부르니 좋던가요?

[주장] 이명박 정부의 영어공교육화 정책, 학원만 돈 벌어주고 부모들은 두려움에 떨게했다

등록 2008.03.04 12:02수정 2008.03.04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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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정부의 영어 공교육화 정책, 아무래도 헛다리를 짚는 듯합니다. 초등학교 1학년부터 영어를 가르치고 더 나아가 영어로 영어수업을 하는 등의 조처를 발표했던 새 정부의 의도와는 달리 그 발표가 있은 직후부터 전국의 영어학원들에는 마치 광풍이라도 불듯 학부모들의 접수 문의가 쇄도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과거 부유층의 전유물이었던 '영어유치원'도 이제는 대다수 엄마들이 맞벌이와 아르바이트까지 해가며 보내야 하는 필수코스로 인식되는가 하면, 수백만원의 학원비를 부담하기 위해 신용불량자까지 돼야 하는 요즘 부모들의 모습이 보는 이로 하여금 안타까움을 넘어서서 "이 세상이 결국 미쳐 돌아가는구나"라는 자조의 탄식을 쏟아내게 합니다.

근본적으로 새 정부의 이번 발표가 잘못된 방향으로 흐르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 영어 라는 의미를 '실용언어'가 아닌 '국가경쟁력'으로 판단한 데 있습니다.

영어는 미국과 영국 등 서구의 대표적인 언어이며 세계적으로 공통되는 언어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다릅니다. 단순히 외국인과 대화를 하거나 외국서적을 읽기 위해서, 또는 취직에 필요해서가 아닙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영어=성공한 인간'이라는 도식이 성립합니다.

이런 희한한 공식이 통하는 나라가 우리나라입니다. 그래서 영어를 못하는 것은 곧 인생에서 낙오자거나 뒤떨어지는 인생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인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영어는 더이상 '외국어'가 아닌 한국인에게는 '성공을 위한 필수코스'가 됐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렇게 배운 영어를 제대로 써 볼 기회는 많지 않습니다.


홍콩은 제조업이 별로 없습니다. 그 나라는 무역중개와 금융, 그리고 관광 등이 국가의 주 수입원입니다. 그래서 전 세계의 기업들이 홍콩을 통해 거래하는 현실에서 영어란 필수적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아직은 제조업이 강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조선, 철강, 플라스틱, 반도체, 섬유, 곡물, 화훼, 식품, 자동차, 가전제품 등 대부분의 공장들은 일단 국내에서 제품을 생산해내는 작업을 하고 있고, 이를 수출하거나 내수시장에 판매하는 방식으로 국가의 경쟁력을 키워가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런 환경에서는 영어라는 도구를 활용할 기회는 그다지 많지 않습니다.


그런데 왜 새 정부는 이토록 '영어' 몰입에 총력을 기울일까요. 그것이 바로 이명박 정부의 '영어'에 대한 가치관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영어를 단순히 '언어'가 아닌 '인생의 성공과정' 내지는 '삶의 풍요'와 연관시키는 방식을 채택하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국민성공시대'와 '영어'가 연결되는 것입니다. 요즘과 같이 기술이 발달한 시대에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번역기'를 이용하거나 '전자사전'만 봐도 웬만한 이해는 할 수 있습니다.

언제부턴가 '영어'가 성공적인 삶의 척도가 되면서 영어 광풍은 시작됐고, 그 광풍을 잠재우려고 내놓은 정책 때문에 광풍에 번개를 달아준 꼴이 돼 버려, 우리 아이들은 '엄마'보다는 '마미'가 더 자연스런 세상에 사는 것입니다. 영어는 단지 '외국어'일 뿐입니다.

이번 정책이 잘못된 두 번째 이유는 부모들에게 두려움만 안겨줬다는 것입니다. 

앞서 말한 대로 영어를 단순히 '실용언어'가 아닌 '성공의 척도'로 평가하는 분위기에서는 아이를 가진 부모들은 엄청난 '두려움'에 휩싸입니다. 한국의 아이들이 영어를 못하는 것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되고 있습니다. 초등학교 1학년부터 영어를 가르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영어유치원부터 영어를 배운 아이들의 부모는 얼마나 좋아하겠습니까.

그러나 반대로 영어 동화책 한 권 본 적 없는 아이들은 초등학교 1학년부터 수업에서 뒤처지게 될 겁니다. 그러니 그 부모들은 두려운 것입니다. 자녀들이 학교에 들어가자마자 실력에서 뒤쳐지는 꼴을 봐야 하는 부모의 입장이 어떻겠습니까.

그러니 빚을 내든지 맞벌이를 하든지, 투잡, 쓰리잡을 해서라도 내 자식만큼은 그런 뒤처짐에서 건져내고픈 부모의 심정은 당연한 것입니다. 문제는 그런 노력에도 그 자녀의 성공이 '영어' 하나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가난한 부모들은 더 두려운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해결책은 있습니다.

국가가 나서서 '영어'와 관련된 어떤 정책도 세우지 않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이명박 대통령이 좋아하는 '자유시장경쟁원리'에 맡겨 두는 것이 낫습니다. 영어를 필요로 하는 사람의 경우에는 반드시 영어를 공부합니다. 그러나 굳이 영어를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에게까지 영어가 마치 '성공적인 인생의 지표'라도 되는 듯이 정부가 설레발을 칠 필요가 없다는 말입니다.

'오렌지'를 '어~륀지'라고 하는 우리나라보다는 '텔레비전'을 '테레비'라고 발음하는 일본이 훨씬 국제사회에서 어깨에 힘주는 세상입니다. 정부는 국민들의 발음을 고쳐서 국가의 경쟁력을 높이려 할 것이 아니라, 부패한 삼성과 같은 글로벌기업의 이미지를 바꾸고, 장관들의 도덕성을 키워서 국제사회에 인정받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사교육을 진정시키기는커녕 오히려 침체되던 사교육시장에 희망을 심어주고 있고, 세금을 보태주는 꼴이 돼 버린 영어몰입정책, 그 폐해는 고스란히 돈 없는 서민들의 삶을 더 어렵게 만들고 있습니다. 아이들을 영어학원 보낼 돈 없는 가난한 부모가 자식에게 원망듣도록 하지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우리 엄마는 "마미"가 아닙니다.

덧붙이는 글 | 미디어다음 블러그


덧붙이는 글 미디어다음 블러그
#영어 #영어공교육 #영어몰입 #사교육 #영어학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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