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 피로연에 필요한 식사 준비에 분주한 두 바이족 여성. 신화촌은 한때 '과부촌'이라 불릴 정도로 여성들이 집안일을 도맡아 했다.
모종혁
티베트 라싸에만 400여명, 차마고도에서 활약한 문화 사절20세기 들어 교통수단이 발달하면서 신화촌 금속 장인들의 명성은 중국 전역에 퍼졌다. 반지·귀걸이·팔찌·목걸이 등 개인장식품에서 접시·주전자·컵·칼·자물쇠·문고리 등 일상생활용품, 각종 종교제기, 거대 조형물까지 신화촌 장인들은 금·은·동으로 가공해서 만들 수 있는 물건은 다 만들었다.
신화촌 주민들이 만든, 예술성 높고 특색 있는 민족성을 지닌 금속용품은 중국 사회주의정부의 인정까지 받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재앙이 닥쳐왔다. 1966년 시작된 문화대혁명의 10년 광풍은 신화촌 장인들이 만든 금속 수공품을 부르주아의 사치품으로 낙인찍어 탄압했다.
신화촌 3대 명장 중 한 명인 홍신구이(洪新貴·57)는 "문혁 시기 금·은 공예품에 대한 주문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 신화촌 장인들은 교통이 불편한 산간마을에 들어가 동제품을 만드는데 주력했다"고 회고했다.
홍 장인은 "우리 집안은 대대로 종교 제기를 주로 만들었기에 더욱 힘든 시기였다"면서도 "광시(廣西)·구이저우(貴州)에 사는 먀오(苗)족·동(侗)족·수이(水)족 등과 접촉하면서 현지 소수민족의 새로운 금속 공예술을 흡수·발전시킬 수 있었다"고 말했다.
1978년 개혁개방이 시작되면서 신화촌 장인들의 활동도 재개되었다. 억눌려 작업 못한 10년을 분풀이하듯 신화촌 주민들은 금·은·동으로 된 다양한 수공품을 만들어냈다.
2006년 한 해 신화촌에서 생산한 금속 공예품은 500만 건에 달하고 총 판매액은 2억 위안(약 260억원)을 넘어섰다. 신화촌 전체 1100여 가구 가운데 907가구가 금속 공예품을 만드는 데 종사하고 있고, 2118명의 주민이 금속 공예 장인이 되어 살아가고 있다.
신화촌 장인들은 20여 개 민족, 100여 품종의 생활문화 금속용품을 만들 수 있다. 신화촌 장인들이 만든 금속 공예품은 중국 각지 뿐만 아니라 인도·파키스탄·버마·태국·네팔·일본·미국·독일 등 세계 각지로 팔려나가고 있다. 수백 년 전 차마고도와 남부 실크로드를 통해 퍼져나간 신화촌의 명성과 공예품은 오늘날 편리해진 운송수단 덕에 대량 수출되고 있다.
홍 장인은 "최근에는 티베트 전역 뿐만 아니라 네팔에서도 라마불교 제기와 법기에 대한 주문이 잇따르고 있다"면서 "문혁과 개혁개방 초기 떠돌아다니면서 접한 라마불교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가 오늘과 같은 호황을 가져다주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