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는 경준이
박상규
경준이는 강원도 정선군 운치리에 살고 있습니다. 운치리는 정선군 읍내에서 차로 동강을 따라 약 1시간 정도 달려야 도착할 수 있는 곳에 있습니다. 그야말로 첩첩산중입니다. 3일 오전 8시경 경준이네에 도착하니 떠들썩합니다. 경준이가 공교육에 첫 발을 내딛는 오늘, 그의 둘째 형 태헌이는 고등학교에 입학합니다.
농사를 짓는 아버지 김용성(48)씨와 어머니 이기자(48)씨도 이 날만큼은 멋지고 곱게 차려입었습니다. 아버지는 형 태헌이를 차에 태우고 영월로 떠났습니다. 빨간색 가죽 점퍼를 입고 입술에 역시 붉은색 립스틱을 바른 엄마와 경준이는 제 차에 올랐습니다. 경준이네 집에서 운치분교까지는 걸어서 1시간이 걸립니다.
학교까지 가는 길, 어머니에게 "막내아들 초등학교에 보내는 기분이 어떠시냐"고 물었습니다. 어머니 이기자씨는 그냥 말 없이 웃었습니다. 잠시 후 어머니는 나직하게 자신의 기분이 아닌 바람을 이야기했습니다.
"경준이가 남을 위할 줄 아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어요. 대통령 같은 것도 좋겠지만, 먼저 남을 배려할 줄 알아야죠. 그게 사람의 근본이잖아요."경준이는 말 없이 창 밖을 내다보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경준이는 아직 어머니의 '말씀'이 무얼 의미하는지 모를 겁니다. '남을 위할 줄 아는 사람'이란 게 뭔지, '배려'라는 단어가 어떤 뜻인지 모호하기만 할 겁니다. 이 모든 걸 이해하기까지는 많은 세월이 필요할겁니다. 그걸 배우기 위해 경준이는 지금 학교에 가고 있습니다.
정작 어머니의 말에 큰 울림을 느낀 건 바로 저였습니다. "국제화 시대에 걸맞은 지도자 양성" "국가를 이끌 인재 육성" 같은 조금은 부담스런 구호가 교육현장에 넘쳐나는 시대에,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이 되라"는 산골 어머니의 목소리는 가슴 저린 울림이었습니다. 그런 말을 들으며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경준이가 부럽기도 했습니다.
아이들은 여덟명, 어른은 열명 이상운치분교에 도착하니 교실에는 벌써 아이들이 여럿 와 있습니다. 운치분교의 전교생은 경준이를 포함해 모두 8명입니다. 정혜주(3학년)·정화평 남매, 김현정(6학년)·김예중(2학년) 남매, 3학년 황찬우, 5학년 민웅기, 그리고 경준이의 형인 6학년 김현준.
형과 누나들을 바라보는 경준이의 눈빛에는 큰 호기심이나 걱정 같은 건 없습니다. 오히려 무심한 표정입니다. 경준이를 맞이한 다른 아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아이들은 이미 한 마을에서 나고 자라, 서로를 잘 알고 있습니다.
학부모들도 속속 학교에 모였습니다. 혜주·화평 남매의 부모님, 웅기의 부모님, 그리고 부모님 대신 찬우를 키우는 할머니·할아버지도 참석했습니다. 어느새 아이들은 자기들끼리 뛰어놀고, 학부모들은 서로의 안부를 묻습니다. 주요 관심사는 단연 경준이의 입학입니다. 모두들 경준이에게 "건강해라" "공부 열심히 해라"라는 덕담을 전합니다.
오전 10시에 열린 입학식. 경준이가 교실 맨 앞에 홀로 앉았습니다. 경준이 뒤로 형과 누나들이 앉았습니다. 그리고 그 뒤로 학부모들이 앉았습니다. 박대규 선생님을 비롯한 교사 3명은 양복을 단정하게 차려 입었습니다. 아이들은 여덟인데, 어른들은 열 명이 넘습니다.
첫번째 의식은 국기에 대한 맹세입니다. 작은 카세트에서 국기에 대한 맹세 육성이 흘러 나오자 형, 누나들이 오른 손을 왼쪽 가슴에 올립니다. 주변을 살피던 경준이가 당황해 합니다. 그리고 이내 오른손을 자기 왼쪽 가슴에 대고 정면의 태극기를 응시합니다. 애국가는 어른과 아이들이 함께 부릅니다.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존하세~"가 산골 분교에 울려 퍼집니다.
"경준이의 입학은 학교의 행복이자 축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