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담을 한다며 들어간 분들 소식이 오래도록 없습니다. 면담은 잘 이루어지고 있을까요. 나이 많은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많은 시위대는 한 시간 넘게 목소리를 높이고 한 분씩 나와서 이야기를 하다가, 잠깐 쉬기로 합니다. 그렇게 이십 분쯤 쉬고 있을 무렵, 시청으로 들어가 이야기를 나눈 사람들이 밖으로 나옵니다. 주민대표와 이야기를 나눈 사람은, 건설교통국장 홍준오씨.
이야기한 결과는 이렇습니다.
"남북측 연결하는 주요 간선도로로서 꼭 필요하다… 길은 중요하니까 내야 하고, 문화적으로 중요한 것은 나중에 복원하면 된다. 시간을 두고 천천히 (복원)하면 될 것이다."
시장은 그예 주민과 만나지 않고, 건설교통국장만 자기 이야기를 외통수로 들려주었다고 합니다. 그동안 종합건설본부에서 해 온 이야기 그대로, 판박이처럼. 인천 배다리라고 하는 곳 '가치를 알지만' 길은 낸다고, '훼손되는 줄 알지만' 나중에 되살리면 된다고, '수도국산 달동네 박물관 문화 정체성을 살려 주겠다'면서, 박물관 둘레를 망가뜨리는 길은 꼭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만 되풀이하면서.
인천시장은 끝내 '공사 강행' 결재를 내린 뒤 거두지 않겠다고 하고, 시는 그대로 밀어붙인다는 소식에, 주민들은 힘이 빠집니다. 그러나 이렇게 주민은 아예 없는 사람으로 치고 밀어붙여 온 지가 벌써 한두 해 일이 아니지 않느냐며, 다시금 기운을 차리고 더 힘차게 싸워야 하지 않겠느냐며, 오늘은 이렇게 돌아가지만 웃는 얼굴로 즐겁게 싸우자며 서로가 서로를 북돋웁니다. 주민대책위 부위원장 문성진씨가 마지막 다짐을 외치고 주민들이 구호를 따라 외친 뒤 시청 앞 집회를 마무리짓습니다.
그러고는 우리 집터이자 삶터인 배다리로 돌아옵니다. 한 분 두 분 집으로 돌아가시고, 끝자리까지 남은 이들이 늦은 낮밥을 함께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눕니다.
[주민 목소리 2]
"산업도로가 놓이면 자기들 집값이 오르는 줄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데, 뭘 모르는 소리야. 지금도 옆에 동국제강이다 제철소다 시끄럽고 매연 엄청나서 문제인데, 여기에다가 산업도로까지 놓이면 어떻게 살아. 그런데 솔빛주공 27개 동에서 오늘 16명밖에 안 나왔어. 한 개 동에 동대표 한 사람씩만 나와도 스물일곱 명인데 열여섯 명밖에 안 나왔어. 딩동 하고 같이 갑시다 하면 사람 없다고 하고 나오지 않아."
"저도 솔빛주공에 사는데, 주민들은 환경피해가 무엇인지 실감을 하지 못해요. 먼저, 아침 일찍 집에서 나가 밤에 집으로 들어오니, 큰 피해를 못 느껴요. 그리고 남이 해 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내가 나가기에는 귀찮고 힘들다고 느껴요."
"아파트 사는 사람들은 정 싫으면 팔고 다른 데로 이사가면 그만이에요. 여름이고 겨울이고 창문도 안 열고 사는 곳이 아파트잖아요."
"오늘 참 기운이 빠지고 힘든데 어느 분이 그러더라고요. 아주 바닥에 떨어졌을 때 다시 하는 일이라고요."
"시위 한 번 한다고 주민의견 수렴해 주면, 벌써 다른 데서도 다 시위하고 그러겠지. 앞으로 오랫동안 싸워야 할 거야."
"시청 앞에서 하도 시위를 많이 하니까, 시위 제대로 못하게 꽃밭 만들어 놓고 울타리 쌓고 주차장에다가 만들어 놓고. 세상에 이렇게 만들어 놓은 시청이 어디 있어요?"
"이건 완전히 토목부장 하자는 대로 다 하고 있어."
"민원인이 많으니 시청에서는 방호원을 늘리고, 경비업체 시설 늘리고, 그러면서 주민 목소리는 더욱 안 듣고."
"'도로가 안 되면 재개발 안 되는 거지요?' 하고 묻는 분이 있어요. 이 산업도로를 반대하는 뜻이 있어도, 산업도로가 나야 재개발이 되어 자기한테 이익이 돌아올 거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인데."
"저희 아파트는 재건축 인허가를 빨리 내주어야 하니까, 우리보고 반대를 하지 말라고 해요. 시에서는 다른 주민들한테 '용적률 높여 줄 테니까 반대하지 마라. 2등급인데 3등급 주겠다'고 하는데, 거기다가 여기는 옛날 아파트라 꽃밭이 넓고 대지지급률 높으니까, '그래서 합의하자'고, '도로 반대하지 말라'고 해요."
"그런데 용적률이 높아도 산업도로 나면 4층까지 닿아서 막는데."
"'야, 18평까지 22평 되어 공짜로 들어가는데 왜 반대하느냐'고 해요."
"시에서 여기저기 댕기면서 말을 흘리는 거예요. '반대를 하지 말아야 재건축 용적률이 올라가지, 반대하면 누가 올려 주냐' 하면서."
"아파트 사는 사람들 생각은, 팔고 이사 가면 되니까, 주택에 사는 서민은 이사갈 수도 없고, 세입자는 더 그렇고, 어찌 손쓸 수가 없고."
"노인정에 가면, 어르신들이 그래요. 도로 그냥 두게 해 주어야 한다고, 재개발이 되어야 동네가 발전한다고."
아주머니 아저씨들 이야기를 가만히 듣습니다. 공무원들 매무새에 이가 갈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갈림은 조용히 사그라들고, 인천시에서 일하는 공무원들, 이 가운데 가장 높은자리에 앉은 우두머리 안상수 시장이 참으로 딱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스스로 외톨이가 되려고 하니까요.
시민들이 표를 주어서 시장이 되기는 했으나, 표만 시민한테 받았을 뿐, 시 살림을 꾸려나가는 데에서는 시민 또는 주민 목소리나 삶터에 귀기울이지 않고 눈여겨보지 않으면서 외걸음만 걷고 있으니까요.
지금은 서민들 힘으로는 어찌할 노릇이 없는 높은 자리, 이른바 '권좌'에 앉아 계시다지만, 이 권좌가 얼마나 오랫동안 이어질 수 있을는지요. 이 권좌에 앉아 갖은 권력을 휘두르는 지금, 안상수 인천시장께서는 얼마나 행복하시고 보람이 있으신지요.
구름이 흐르는 소리, 바람에 따라 꽃잎과 나뭇잎 팔랑이는 소리, 참새와 비둘기와 까치가 지저귀는 소리, 사람들 길을 걷는 소리, 부엌에서 밥하는 냄새와 식구들이 오순도순 모여서 밥먹는 소리 …… 들은 멀리한 채, 자동차 씽씽 달리는 소리, 비행기 날아가는 소리, 중장비 웅웅거리는 소리, 땅 파는 소리, 헌 건물 헐고 새 건물 짓는 소리 …… 들로 가득한 땅에서 우리 삶은 즐거울 수 있는지.
따순 햇볕을 못 쬐더라도 기름이나 가스로 난방기 돌리면 되고, 시원한 바람을 못 쐬더라도 원자력발전소 전기로 에어컨 돌리면 되는 우리 삶은 기쁘거나 가슴벅찰 수 있는지. 우리 몸 살찌우는 곡식을 얻는 흙을 푸대접하면서 사람이 제 목숨을 고이 지킬 수 있는지. 죽어서 얼마나 많은 돈을 무덤까지 가져가고 싶어서, 또 딸아들한테 얼마나 많은 돈을 물려주고 싶어서, 돈 놓고 돈 먹자는 개발에만 눈독을 들이는지.
= 집회터 둘레 모습 몇 가지 =
▲얼굴들모두들, 생업에 힘쓰고 집안일을 돌보느라 바쁜데, 이런 데에까지 힘을 빼앗기고 시간을 흘리게 하는 인천시 정책이란... 누구를 생각하는 정책일까요.최종규
▲ 얼굴들 모두들, 생업에 힘쓰고 집안일을 돌보느라 바쁜데, 이런 데에까지 힘을 빼앗기고 시간을 흘리게 하는 인천시 정책이란... 누구를 생각하는 정책일까요.
ⓒ 최종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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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배다리를 지키는 인천 시민모임 인터넷방(http://cafe.naver.com/vaedari)이 있습니다.
2008.03.01 12:43 | ⓒ 2008 OhmyNe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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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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