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야택시 10원 단위 거스름돈 왜 못받나

2004년 시민 제안 채택한 서울시 "이후 논의된 바 없다"

등록 2008.02.29 10:01수정 2008.02.29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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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잡지사에 몸담고 있는 여기자 고아무개씨는 한 달에 3~4번은 심야에 서울 택시를 이용한다. 업무의 특성상 마감, 발간을 앞두고는 며칠간 밤샘 작업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택시를 이용하고 거스름돈을 받을 때마다 고씨는 이상한 생각을 감출 수 없었다.

심야 할증요금이 줄곧 10원 단위로 계산되는 것이다. 지불이 불편한 뿐더러 택시기사들도 10원 단위 요금이 나오면 내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 고씨는 이유를 주변에 물어보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얼마 되지도 않는 거 가지고…"라며 오히려 핀잔을 주기 일쑤였다.

심야시간, 무의미한 미터기

서울에서 운행되는 네 종류의 택시 중 가장 많이 이용되는 중형택시의 기본 요금은 2km까지 1900원이다. 이후 144m 마다 100원씩 추가되며 시속 15km 이하로 주행시에는 매 35초마다 100원씩 올라간다. 심야시간(자정~4시)에는 기본 요금에 20%가 할증되며 추가 요금 역시 20%씩 할증 적용된다. 100원 단위로 계산되는 비심야 시간대와는 달리 심야에는 일괄적인 20% 할증으로 미터기에 10원 단위까지 찍힌다.

하지만 현재 10원 짜리 동전은 사회에서 거의 통용 되지 않는 상황이다. 때문에 심야 시간에 택시를 이용할 경우 거스름돈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택시 기사들은 보통 10원 단위 요금은 무조건 100원으로 환산하거나 아니면 반올림을 이용하는 식으로 잔돈을 내준다. 사실상 요금 정산 방식이 관행화 돼 있다 보니 의무를 지키는 택시기사도 권리를 주장하는 승객도 찾아보기 힘들다.

실제 기자가 최근 두달간 20여 차례 강남, 양재, 신천, 길동 등 몇몇 지하철 역 인근에서 심야 택시를 이용해 본 결과 10원 단위 요금까지 내주는 택시는 없었다. 10번은 택시기사 임의로 10원 단위를 100원으로 올려 계산했고 7번은 반올림을 이용해 거스름돈을 내줬다. 이의를 제기할 경우 100원을 주는 택시도 있었지만 10원짜리 동전은 없으니 잔돈이 나오지 않게 요금을 지불하라는 기사도 있었다.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없어


심야 시간에 강남역에서 만난 승객 김아무개씨는 "계산할 때마다 미터기를 확인하지만 10원 단위까지 눈에 들어오지는 않았다"며 "물론 10원 단위를 잔돈으로 내준 택시 기사 역시 없었다"고 말했다. 양재역 인근에서 만난 승객 정아무개씨 역시 "받아야 겠다고 생각할 때도 있었지만 막상 10원짜리 동전으로 실랑이를 벌이기는 어려웠다"고 설명했다.

길동역에서 대기하고 있던 택시기사 이아무개씨 역시 "보통 끝자리 요금이 50원 미만이면 잔돈을 내주지 않는데 이의를 제기하는 승객은 거의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그래도 거스름돈을 내주는 게 당연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10원 짜리까지 어떻게 챙기고 다니느냐"며 "안 그래도 운전 해서는 먹고 살기 힘든 마당에 이런 것까지 신경 쓰기는 힘들다"며 오히려 기자에게 어려움을 호소했다.


서울시, 4년 전 바꾸려 했었다

서울시는 보통 3년에 한번 꼴로 택시 요금을 인상한다. 현재 1900원의 기본 요금은 2005년 6월 1일부터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 심야 요금은 비심야 요금의 20%를 더 받는 식으로 같이 요금이 오른다. 10원짜리 동전이 크게 통용됐을 때는 심야 시간대 20% 할증 적용이 문제가 안됐지만 지금 10원짜리 동전은 시민들의 지갑에서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큰 40원의 발행비용을 줄이기 위해 정부에서 활용 캠페인을 벌여도 별 효과는 없다.

서울시 역시 시대적 흐름과 동떨어진 심야 시간 택시 요금 체계가 시민들의 불편을 초래하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실제 시는 2004년 10월 시민들로부터 '시정관련 아이디어 공모'를 받아 '심야택시 할증요금에 10원 단위가 나오지 않도록 택시미터기를 조정해 달라'고 제안한 한 시민의 의견을 장려상으로 채택했다. 당시 시 관계자는 "내용이 대단히 좋다. 즉각 시정에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관련 부서에서는 시에서 발주한 택시 요금 인상건에 관련한 용역 결과가 새 요금 체계에 이미 적용됐다는 이유로 이를 반영하지 않았다.

서울시 도시교통본부 택시정책팀의 황인동(48)씨는 "마지막으로 택시 요금이 바뀐 게 2005년 6월"이라며 "2004년 말에 나온 내용을 새 요금 체계에 반영하려면 이미 진행되고 확인된 많은 부분을 되돌려야 하는데 시기적으로 무리가 있었다"고 말했다.

서울시 "지금은 바꿀 의향 없다"

그렇다면 향후 택시 요금 변화 때는 미터기에서 10원 단위 요금이 사라질 수 있을까. 가능성이 높지는 않다.

택시정책팀에서 택시요금 조정 업무를 맡고 있는 황인동씨는 "오히려 2004년 시정 아이디어 공모 이후에는 10원 단위 요금과 관련해 시민들의 민원이나 불만이 거의 없었다"며 "시에서 논의된 바도 없다, 다만 추후 요금 인상에서 반영될 수도 있지 않겠냐"고 밝혔다.

길동역에서 만난 택시기사 신아무개씨는 "택시 요금 인상 때마다 업계에서 거리 조정 등을 통해 10원 단위 요금을 없애 줄 것을 시에다 요구한 것으로 안다"며 "그런데 무슨 이유 탓인지 전혀 시정이 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동전의 가치 탓에 항의하는 손님은 없지만 별일도 아닌 것에 손님과 실랑이 여지를 만들어 놓는다는 자체가 문제가 있는 게 아니냐"고 덧붙였다.    
#택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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