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가지는 지하철 역 입구에 설치된 배포대에 진열된다. 빨강·파랑·노랑·초록 등 무가지 회사에 따라 배포대의 색상도 제각각이다. 평일 아침 배포되는 무가지는 총 6개. 신문 당 4~5개의 배포대가 할당되는 것을 감안하면 거리에 설치된 배포대의 수는 20개가 훌쩍 넘는다.
A신문에서 5년 동안 신문배포를 하고 있는 임아무개(67)씨는 하루 평균 4시간을 신도림역 2번 출구에서 보내고 있다. 현장에 도착하면 가장 먼저 배포대를 설치하고 도착한 무가지를 반으로 접어 보기 좋게 올려놓는다.
그가 담당하고 있는 A신문은 무가지 시장에 첫 발을 내딘 '형님뻘' 무가지로 인지도가 가장 높다. 때문에 발행부수 역시 다른 무가지보다 월등히 높다고 한다.
오로지 광고를 통해 수익을 얻는 무가지의 경우 무엇보다 발행부수로 대변되는 인지도가 가장 중요하다. 광고주들이 많이 읽히는 신문에 광고하고 싶어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동선과 가까울수록 사람들이 집어갈 확률이 높기 때문에, 무가지 업체 간 배포대 위치를 둘러싼 신경전은 불가피하다.
배포대 위치, 형님 먼저 아우는 나중에
흔히 먼저 자리를 차지하는 사람이 '임자'라 생각하기 마련이지만 배포대 위치에는 나름대로 규칙이 있다. 그 규칙이란, 먼저 창간한 신문이 가장 좋은 자리를 차지하는 것. 그렇기에 목이 좋은 자리는 6년차 무가지 'A'의 차지다. 다음은 5년차 무가지인 B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실제로 둘러보았던 신도림역과 잠실역에서는 사람들의 손이 잘 닿을 수 있는 구역에 A신문 배포대가 떡하니 자리잡고 있었다. 그 뒤를 이어 B신문과 C신문이 자리하고 있었다. 임 아무개씨는 대수롭지 않은 듯 무가지의 '서열'에 대해 간략히 설명했다.
"일종의 약속이라고 할 수 있죠. 먼저 시작했으니 당연히 앞쪽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무리 무한 경쟁이라지만 그게 바로 상도덕이고, 선배에 대한 예우죠."
지하철역 입구에 배포대를 놓는 데도 '서열'이 있다니….
허나, 이러한 규칙이 잘 지켜지지 않을 때도 있다. 26일 잠실역에서 만난 D신문 김 아무개 소장은 버스 정류장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해당 구역이 아닌데도 버젓이 신문 가판대를 갖다놓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실제로 잠실역 버스 정류장 근처는 사람들의 이동을 방해할 만한 자리인데도 배포대가 설치돼 있었다. 아무리 예우 차원의 배포대 선정 기준이 있다해도 지하철 무가지 회사들 간의 경쟁은 치열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배포대 위치로 승부를 낼 수 없을 경우 직접 배포를 시도하기도 한다. 대부분 갓 창간된 신문들이 시도하는 방법이다. 허나, 비교적 '연륜'이 있는 지하철 무가지 회사들은 그 방법을 선호하지 않는다. 김 소장도 "쓸데없는 짓"이라며 혀를 찼다.
"신문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직접 배포를 하는 것인데요. 일정시간이 지나면 직접배포를 하지 않게 되죠. 소용없는 일이라는 걸 깨닫거든요. 사람들 각자 취향이 있기에 권하는 신문은 읽지 않거나 버려지기 일쑤입니다. 역 안에 들어가보면 금방 알 수 있죠."
지하철 무가지 배포, 노인들에겐 괜찮은 일자리
무가지 시장에서는 광고사 주최로 3개월마다 한 번씩 열독률 조사를 벌인다. 출구조사와 전화조사로하며 그 결과는 무가지의 생존과 연결된다. 열독률이 높은 매체일수록 광고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무가지 회사들은 3개월에 한번씩 '초긴장 상태'에 돌입한다. 평소보다 발행부수를 늘리며 무리수를 두는 것도 이 때문이다.
보일듯 말듯, 경쟁 구도가 형성되는 것이 사실이지만 잠실역에서 D신문을 배포하고 있는 강부자(71) 할머니는 "배포원들끼리 서로 도우며 일한다"고 말한다. 같은 일을 하는 동료로서 "서로의 처지를 잘 알기 때문"이란다. 올해로 칠순을 넘긴 강 할머니처럼 배포원들의 평균연령이 높은 것도 특징이다.
"보수에 비해 교통비가 부담스럽기 때문에 젊은 사람들은 엄두도 못내죠. 지하철 무료이용권을 받는 노인 외에는 잘 하려 하지 않죠. 아침 4시간 정도 고생하는 것이기 때문에 힘들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주변 친구들도 이 일을 많이 하고 있죠."
무가지 배포가 '불법'이라는 논란이 있지만 노인들의 일자리 제공에 어느 정도 일조하고 있다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지하철 무가지로 한 끼니 해결할 수 있어"
신도림 역 지하철 승강장으로 내려가 보았다. 오전 8시를 넘기자 사람들이 물 밀듯 밀려왔다. 행여나 열차가 도착해 있지는 않을까 모두 발걸음을 재촉한다. 바쁜 사람들 틈에 무가지를 줍는 한 할머니가 보인다. 휴지통 옆에 쪼그리고 앉아 사람들이 버린 무가지를 배낭에 담고 있는 할머니. 어찌나 체구가 작던지 사람들 사이에 가려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