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혈증서지난 날의 헌혈 증서들을 꺼내 보았다.
김선태
나는 1985년 1월 12일에 처음으로 헌혈을 하기 위해서 마포에 있던 적십자중앙혈액원까지 직접 찾아갔다. 난생 처음으로 헌혈을 하면서 내 팔에서 빠져 나간 저 피가 누군가의 생명을 살릴 수도 있다는 것이 신기하고 나도 그런 좋은 일을 하게 되었다는 마음에 기쁨이 넘쳤었다.
그러나 나는 그 무렵 멀리 민통선 철책 아래에 있는 파주군 파평면 장파리에 근무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헌혈을 하는데 조금 까다로운 문제가 있었다. 말라리아 위험지역이라는 것이었다. 그래서였는지, 아니면 너무 장거리 출퇴근 때문이었는지 나는 만 1년이 지난 다음에야 겨우 두 번째 헌혈을 할 수 있었다.
그 이후로 매년 한 두 번씩 헌혈을 하였지만, 1991년 교감으로 승진을 하면서부터 교장으로 승진을 하기까지 약 8년 동안은 전혀 헌혈을 할 기회를 갖지 못했다. 교감 생활을 하는 동안은 내가 근무하는 학교가 경기 북부지역인 양주, 파주, 고양 등으로 늘 멀리 출퇴근을 하여야 했기에 헌혈하러 일부러 나오기가 힘들었다.
이 기간에 매년 한 번씩만 했더라도 내가 스스로 약속을 했던 30회는 채울 수 있었을 텐데, 그 때 하지 못해 30번을 채우지 못하고 오늘 겨우 26회를 마지막으로 헌혈을 마감해야 하게 되었다. 적십자 혈액원의 규정상 만 64세가 넘으면 더 이상 헌혈을 받을 수 없기 때문이다.
헌혈을 하는 사람들의 건강을 생각하여서 라고는 하지만 요즘은 나이 들어도 건강상의 문제 그리 많지 않거나 오히려 젊은이 못지않은 탄탄한 육체와 체력을 지닌 분들이 늘어 가고 있는 현실을 생각한다면 이 규정도 좀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적십자에서 이 규정을 언제 만들었는지는 모르지만 이제는 대한민국의 평균수명이 75세를 넘기고 있다. 그래서 만 64세는 아직 경로당에도 나가지 못할 정도로 젊은이 취급을 한다. 어디 가서라도 환갑을 넘긴 걸로는 노인 대접을 받지도 못한다. 환갑내기라는 말은 아직도 청춘이라는 말로 인식이 될 정도가 되어 버렸다.
이렇게 고령화가 진행이 되고 평균 수명이 늘어나는 것을 보면 이제 적십자의 헌혈 규정을 고쳐서 혈압이나 혈소판, 적혈구의 수량이나 다른 건강상의 문제만 없다면 몇 년 더 헌혈을 할 수 있게 해주어도 좋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혈액 보유량이 늘 불안할 정도로 줄고 있다는 소식을 접할 때마다 안타깝다. 하지만 우리나라처럼 젊은이들이 학교 공부에 시달리고, 취직 시험에 매달리고 있는 나라도 없다고 생각하면, 젊은이 중 누가 쉽게 헌혈대에 누우려고 하겠는가 싶어진다.
결코 쉽지 않겠지만, 아직도 젊은이 못지않은 체력을 지니고 건강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이라, 본인이 희망 할 경우 헌혈을 꼭 막아야할 이유는 없는 게 아닐까 싶어진다.
내가 약속한 30회를 채우지 못하고 마지막 헌혈을 한다는 생각을 하니 조금 섭섭하고, 억울한 마음이 든다. 이제는 헌혈도 안 받아주는 고물단지가 되었구나 싶으니 어찌 서글프지 아니하겠는가?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조인스건강블로그, 한국일보 디지털특파원 등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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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애 마지막 헌혈, 아직 난 '팔팔'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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