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안 써야 우리 말이 깨끗하다 (107)

― ‘대망의 불국사’, ‘대망의 21세기’ 다듬기

등록 2008.02.28 11:43수정 2008.02.28 1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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ㄱ. 대망의 불국사를 보는 날

 

.. 오늘은 대망의 불국사와 석굴암을 보는 날이다 ..  《이지현-니나와 폴의 한국말 레슨》(문학사상사,2003) 41쪽

 

 있는 그대로 쓰는 일, 손쉽게 쓰는 일, 누구나 잘 알아들을 수 있도록 쓰는 일이 가장 어려운 일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가 집안식구들하고 이야기를 나누듯이, 일터에서 동료들하고 이야기를 나누듯이, 이웃들과 이야기를 나누듯이 글을 쓰면 될 뿐입니다. 지금 우리 나라 말 문제는, 입으로 뇌까리는 말과 손으로 끄적이는 글이 너무 벌어진 데에 있어요.

 

 ┌ 대망의 불국사를 보는 날이다

 │

 │(1)→ 기다리고 기다리던 불국사를 보는 날이다

 │(1)→ 손꼽아 기다리던 불국사를 보는 날이다

 │(2)→ 드디어 불국사를 보는 날이다

 └ …

 

 글쓰기 공부를 하거나 ‘문장론 수업’을 받는다고 글을 더 잘 쓰지 않습니다. 시골에서 농사를 짓거나 공장에서 노동자로 일해야만 말다운 말, 이를테면 삶이 담긴 자연스럽고 깨끗한 말을 쓰지 않습니다. 무슨 공부를 하느냐,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느냐는 크게 중요하지 않아요.

 

마음가짐이 첫째입니다. 둘레를 살필 수 있는 눈길이 둘째입니다. 그럴싸한 겉치레나 껍데기를 멀리할 수 있는 몸가짐이 셋째입니다. 작은 것 하나라도 언제나 배우거나 받아들일 수 있도록 애쓰는 일이 넷째가 될까요.

 

그러니까 어느 한쪽으로 굳거나 치우치거나 비틀려 있지 않다면,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지, 얼마나 더 많이 배웠느냐 아니냐와는 상관없이 자기 생각을 자기 삶을 담아서 살갑게 말을 하고 글을 쓸 수 있다고 느낍니다.

 

 보기글을 봅시다. “대망의 불국사”라 하는군요. 여기서 ‘대망’은 무엇일까요. 한자말인데, 무슨 뜻일까요. 待望일까요? 大望인가요? 大網이나 臺望은 아닌지요?

 

 이 말 ‘대망’을 한자로 적는다고 합시다. 자, 위에 든 네 가지 한자말을 한자로 적는다고 해서 무엇을 뜻하는 말인지 또렷하게 알 수 있습니까?

 

 누군가 뇌까렸기에 어디선가 주워들어서 “대망의 불국사를 보는 날이다”처럼 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게 무슨 소리래요? 무슨 뜻이래요? 말하는 이부터 무슨 뜻인지 제대로 모르며 그냥 되뇌이는 말은 아닌지요. 말하는 이부터 제대로 아는 말로, 말하는 이부터 뚜렷하게 알고 있으면서 나눌 수 있는 말로 해야 알맞지 싶은데.

 

 자기부터 제대로 모르는 말을 함부로 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도 제대로 알아듣기 힘들다고 느낍니다. 자기도 다른 이도 제대로 느끼거나 알지 못하기 때문에, 자꾸자꾸 뜬구름 잡는 말이 퍼지며 우리 말 문화가 병들고 주눅든다고 느낍니다.

 

ㄴ. 대망의 21세기

 

.. 대망의 21세기가 열린 이즈음에, 국제화 세계화를 입술이 마르고 닳도록 부르짖는 이 시대에, 교육인적자원부에서는 학생들을 체벌할 회초리 사이즈와 체벌 부위에 대해 연구에 연구를 거듭하고 있었으니 이 아니 슬퍼할 일이겠는가? ..  《김수열-섯마파람 부는 날이면》(삶이보이는창,2005) 50쪽

 

 ‘사이즈(size)’는 ‘크기’로 다듬습니다. “체벌 부위(部位)에 대(對)해”는 “체벌할 곳을”로 다듬고요.

 

 ┌ 대망(待望) : 기다리고 바람

 │   - 대망의 새해가 밝아 왔다 / 그는 대망의 우승컵을 품에 안았다 /

 │     내일이나 모레쯤엔 대망의 만선을 이루게 될 것이다

 │

 ├ 대망의 21세기

 │→ 꿈에 부푼 21세기

 │→ 기다리던 21세기

 │→ 기다리고 바라던 21세기

 │→ 기다리고 그리던 21세기

 └ …

 

 22세기가 되어도 “대망의 22세기”라고 쓸까요? 21세기까지는 이 말을 쓴다고 해도 다가오는 새천년에는 “꿈에 부푼 22세기”나 “기다리던 22세기”처럼 쓸 수 있으면 좋겠어요.

 

 “바라고 바라던 22세기”라고, “바라디바라던 22세기”라고 해도 되겠지요. “기다리고 기다리던 22세기”라고, “기다리디기다리던 22세기”라고 해도 되고요.

덧붙이는 글 | 인터넷방 <함께살기 http://hbooks.cyworld.com> 나들이를 하시면 여러 가지 우리 말 이야기를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2008.02.28 11:43ⓒ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인터넷방 <함께살기 http://hbooks.cyworld.com> 나들이를 하시면 여러 가지 우리 말 이야기를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
#토씨 ‘-의’ #우리말 #우리 말 #-의 #대망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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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꽃(국어사전)을 새로 쓴다. <말꽃 짓는 책숲 '숲노래'>를 꾸린다. 《쉬운 말이 평화》《책숲마실》《이오덕 마음 읽기》《우리말 동시 사전》《겹말 꾸러미 사전》《마을에서 살려낸 우리말》《시골에서 도서관 하는 즐거움》《비슷한말 꾸러미 사전》《10대와 통하는 새롭게 살려낸 우리말》《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읽는 우리말 사전 1, 2, 3》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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