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렝게티 사파리에서 만난 사자 가족. 우리나라 강원도 크기의 국립공원안에서 동물 가족을 찾아다닌다.
조수영
무지 더운 아프리카?... 드러내면 야만, 감추면 문명?날씨도 그렇다. 아프리카, 생각보다는 그리 덥지 않다. 덥기로 말할 것 같으면 우리나라 한여름 날씨가 훨씬 더 덥다. 케냐의 나이로비, 남아공의 요하네스버그, 잠비아의 루사카, 짐바브웨의 블라와요 등 많은 도시들은 고지대에 위치하고 있어서 기후는 매우 쾌청하다. 오히려 남아공의 겨울은 가끔 영하로도 떨어지기 때문에 노숙자가 동사하는 일도 있다.
또 하나의 편견은 아프리카 사람들이 미개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어린 시절 아프리카 사람하면 떠오르는 것은 새까만 얼굴에 곱슬머리, 코에는 닭뼈 같은 것을 끼우고, 밤에는 모닥불을 피워놓고 북치고 춤을 추며 제사를 지내고, 사람을 잡아먹는 식인종 쯤으로 묘사되었다.
유독 흑인들의 역동적인 춤과 노래를 본능적이라고 표현하는 것도 이상하다. 춤과 노래로 감정을 표현하지 않는 민족은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 특히 가정용 노래방 기기까지 설치하면서 가무를 즐기는 우리로서는 할 말이 없다. 유독 아프리카 사람들을 본능적이라고 몰아세우는 것은 오래된 편견인 것 같다.
방송도 그렇다. 보통 여성의 가슴이 TV에 노출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드레스가 흘러내려 드러난 여배우의 가슴은 해외토픽감이다. 모자이크 처리를 하더라도 '19금'이라는 딱지가 붙는다. 그러나 염소가죽으로 만든 미니스커트만 입은 아프리카 여인의 가슴은 여과 없이 그대로 방영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시청자들도 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원시적이고 미개한 아프리카 여인의 가슴은 동물의 젖처럼 '선정적'이지 않은 것이다.
서양인들이 우리 여인네들의 드러난 젖가슴을 보며 미개인이라며 혀를 차던 게 불과 1세기 전의 일이다. 실제 1910년 <내셔널 지오그래픽>지 11월호에 실린 'Glimpses of Korea and China'라는 제목의 사진에는 한복 저고리 아래로 가슴을 훤히 드러낸 채 서 있는 여인의 모습이 있다. 개화기까지만 해도 우리나라에서는 여성의 가슴을 성적인 매력과 연관을 짓지 않았다.
평범한 아낙네들은 젖가슴을 가난에 굶주린 아이들의 소중한 '양식' 정도로 여겼다. 할머니들의 풀어헤친 젖가슴은 대를 이을 자식을 낳았다는 자랑스러운 표식이고, 생육에 대한 강한 애착이었다.
그러나 당시 이런 모습이 조선의 일반적인 모습이 아니었음에도 서양인들이 이런 사진을 남긴 것은 특이하고, 충격적이고, 미개하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마치 지금 우리가 일부 아프리카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열심히 사진을 찍어대는 것처럼, 우리네 할머니들을 수치심조차 느끼지 못하는 불쌍한 야만인으로 받아들이는 차별적 시선이 빚어진 일이다. 그들과 우리는 서로 다른 문화를 가지고 있을 뿐이다. 우리에게 낯선 그들의 모습을 그들만의 모습으로 인정해주는 마음이 필요하다.
아프리카는 항상 내전 중아프리카에 대한 또 하나의 대표적 부정적 이미지는 내전이다. 뉴스에 등장하는 아프리카는 늘 괴로운 모습이다. 내전으로 사람이 죽고, 총을 든 시민들의 모습에서 아프리카 사람들은 잔인하고 공격적으로 느껴진다. 그러나 여행을 하면서 느낀 그들의 모습은 순박한 시골아저씨의 느낌이었다.
불쑥 들어간 민가에서 막걸리 비슷한 술을 건네는 아줌마, 내 머리카락을 신기하게 만지작거리던 아이들, 버스정류장까지 공짜로 태워주는 트럭기사, 우갈리 먹는 법을 열심히 가르쳐주던 청년, 자기네의 식사를 먹어보라 건네던 짐바브웨 노점상 아줌마가 그랬다.
유럽 사람들이 오기 전까지 이 대륙에는 1만 가지가 넘는 인종과 작은 국가, 왕국, 술탄국가, 부족들이 있었다. 그들은 모두 서로 평화롭게 지낸 것은 아니었지만 서로 인정하고 인정받았다. 유럽 열강의 식민정책은 그들만의 생활 질서를 뒤죽박죽 엉키게 해 버렸다. 그들은 식민지 쟁탈전 결과 자기들이 통치하기 편한 대로 금을 그었다. 수천 년 동안 각 부족들이 설정해 온 영토 경계는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한 나라에 여러 부족들이 살거나, 한 부족이 둘 이상의 나라로 나뉘기도 했다. 한 나라에 소속된 서로 다른 종족들은 분리독립이나 권력 쟁탈을 위해 전쟁을 벌였고, 인근 나라에 있는 같은 종족들이 전쟁을 거들고 나서 국가 간 전쟁으로 비화되었다.
여행 중에 짐바브웨에서 느낀 불안한 사회분위기도 부족 간의 권력 쟁탈을 놓고 쇼나족과 은데벨레족 사이의 다툼 때문이었다. 같은 탄자니아에 살면서도 차카족은 마사이족의 일부다처제를 비난한다. 식민지배는 끝이 났지만 종족 분쟁이라는 후유증으로 여전히 남아 있는 듯하다.
에이즈와 아프리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