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 평양도 아니고 왜 꼭 경성인가

등록 2008.02.25 18:40수정 2008.02.25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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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계에 '경성' 바람이 불고 있다고 한다. 여기에서 경성은 일제강점기의 서울이라는 시공간을 의미한다. 작년부터 이러한 기미가 보였다. 텔레비전에서 드라마 <경성 스캔들>이라는 작품이 선을 보였다. 이 작품은 인터넷 소설 <경성애사>를 원작으로 삼고 있다.

 

1942년 안생병원의 기묘한 이야기를 다른 영화 <기담>이 개봉해서 선전했다. 올해 또한 석굴암 보석을 둘러싼 모험 코미디극인 영화 <원스 어폰 어 타임>이 개봉되어 좋은 평가를 듣고, 영화 <라듸오데이즈>는 1930년대 최초의 라디오 드라마 풍경을 그렸다. 영화 <좋은놈, 나쁜놈, 이상한놈>이나 <모던보이>도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이러한 경성이라는 시공간이 새삼 영화에 특히 등장하고 있는 것은 이미 인문학적인 성과에 바탕을 두고 있다. 1990년대 중반부터 일제강점기 일상생활, 미시사에 대한 관심이 인문학도들 사이에 관심이 일었다. 그래서 <서울에 딴스홀을 허하라> <모던 뽀이 경성을 거닐다> <경성기담> <럭키경성>과 같은 인문교양 혹은 소설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왜 이러한 연구결과들이 나오기 시작했던 것일까? 그동안 일제 경성이라는 공간은 일제 침략을 받은 무거운 공간이거나 그러한 무거움을 걷어내기 위핸 저항과 투쟁의 공간으로 형상화되었다. 이 때문에 일제강점기의 일상 미시사에 대한 다양한 연구들이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다.

 

일제강점기 시기는 조선과 현대를 이어주는 중간 허리 부분에 해당한다. 특히 사회문화적인 측면에서 많은 부분이 서양의 문화들이 일본을 거쳐 한국에 처음 들어온 것이 많다. 특히 대중문화는 그 정체성 차원에서 일제강점기를 빼놓을 수 없다.

 

한편으로는 멀게만 느껴지는 그 시기가 지금의 우리와 별다를 게 없다는 시각도 이러한 경성 바람에 한몫한다. 그 당시 잃었던 부자신드롬이나 귀족 마케팅, 영어 광풍과 같은 현상이 그때도 있었다는 사실이 이를 말해준다.

 

어떻게 보면 사극 바람의 종착역이 경성이다. 드라마 <별순검>에서 보였듯이 상상력은 지금의 상황과 맞닿아 익숙할 때 더욱 리얼리티를 확보해준다. 완전히 판타지의 공간이라면 현실성을 확보하기 힘들다.

 

근대기 혹은 일제강점기에 집중해서 영화가 제작되는 것은 바람직한 명분이 있지만, 시대물에서 우리의 현재 고민을 투영하는 리얼리티를 확보하는 것이 여전히 급선무다. 이 때문에 단지 복고풍에 대한 선망이나 할리우드 영화의 짝퉁일 수만은 없다.

 

혹자는 지금 세계의 트렌드는 20~30년대 물질문명의 수혜기를 형상화하는 것이라며 단순히 옹호하지만 그것은 우리의 기준은 아닐 것이다. 물질문명의 혜택을 얼마나 받았으며, 무엇보다 과연 경성이 중심축이어야 하는가.

 

일제강점기의 목포나 평양은 어떠했을까? 역시 경성이라는 공간이 여전히 서울 중심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마는 것은 아닐까. 아니 애초에 여러 매체들이 이름붙인 ‘경성바람’이라고 부르는 것이 타당한 의문이다.

 

무엇보다 대중문화작품에서 그 당시의 사회문화적 성찰은 없고 가벼운 오락 로맨스물만 창궐하는 것은 당대의 문화와 사회적 정체성에 대한 그간의 인문학적 연구 작업의 문제의식들을 가볍게만 하는 것은 아닐까?

덧붙이는 글 | 데일리안에 보낸 글입니다.

2008.02.25 18:40ⓒ 2008 OhmyNews
덧붙이는 글 데일리안에 보낸 글입니다.
#경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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