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도원 아침편지문화재단 이사장
오마이뉴스 남소연
눈부신 봄, 낮잠에서 깨어나네가 보낸 편지를 읽는다사랑이란 자로도 저울로도 잴 수 없는한 장의 엽서 같은 것그 속에 담긴 보고 싶었단 한마디그 한마디만으로도내 뼛속 가득 차 오르는 햇살.이제는 쓴 사람의 이름조차 가물가물하지만, 20여 년 전쯤 읽었던 한 편의 시가 던져준 감동은 여전히 기억 속에 선명하다.
한 장의 편지, 그 속에 담긴 한 줄의 문장이 사람을 웃기고 울릴 수 있다는 짧은 글귀. 그 간명한 메시지의 울림은 크고 깊었다.
바로 그 '편지 속 짧은 글귀'가 가진 힘으로 수많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행복'을 전파하는 사람이 있다. '아침편지 문화재단'의 고도원(56) 이사장.
목사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대학시절 학생운동에 참여해 고초를 겪었고, 웨딩드레스 업체를 운영했으나 장사에는 재주가 없었다. 이후 <뿌리깊은나무> <중앙일보> 기자 생활을 거쳐, DJ 정권 때는 대통령비서실 연설담당비서관으로 재직하기도 했다. 드라마틱한 삶이었지만, 굴곡이 없지 않았다.
그랬던 그가 스스로 편안함과 만족을 찾고, 평화로운 마음에 이른 것은 자신이 읽은 책에서 찾아낸 매혹적인 문장에 자신의 짤막한 문장을 덧붙인 '고도원의 아침편지'를 통해 다른 이들에게 희망과 행복을 배달하면서부터다.
"좋은 문장 하나가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도 있지 않을까?" 자신의 친구와 동창, 친척들 수백명을 대상으로 '아침편지'를 보내기 시작한 것은 2001년 8월 1일. 그로부터 6년 6개월이 흐른 지금. 매일 오전 그가 발송하는 '아침편지'를 받아보는 독자는 190만599명(22일 오후 3시 현재)으로 늘었다.
하지만, 독자의 많고 적음이 중요한 건 아니다. 고도원에게 보다 중요한 건 '아침편지'를 처음 시작할 때의 마음가짐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한 사람의 친구에게 보내는 마음으로 쓰자, 한 사람이 공감해야 대중도 공감한다, 내 진실을 열어 보여주자"라는 소박한 결심.
편지를 "보내는 사람의 마음이며, 땀방울이고, 눈물"이라고 말하는 그를 21일 오전 서울 마포구 합정동에 자리 잡은 '아침편지 문화재단' 사무실에서 만났다. '편지'라는 수단을 통해 행복과 희망의 참된 의미를 사람들과 나누는 그가 웃을 때마다 편안한 잔주름이 얼굴이 덮었다. 근사해 보였다.
- 만나게 돼서 반갑다. 근황은?"얼마 전 바이칼 호수에 다녀왔다. 3년 전부터 매년 '겨울의 심장을 찾아서'란 슬로건 아래 그곳으로 명상여행을 간다. 이번엔 80여 명과 일정을 함께 했다. 얼어붙은 얼음 위에서 조용하게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졌다. 바이칼·인도·몽골·티벳 등이 나와 '아침편지' 독자들이 자주 여행하는 곳이다. 그 외에 하는 일이라면 여전히 편지 보내고, 마라톤도 하고, 책 읽고, 강연하고…."
- 2001년에 시작된 '아침편지' 독자가 190만 명을 넘어섰다. 그처럼 많은 사람들에게 글을 띄운다는 건 어찌 보면 두려운 일일 수도 있을 것 같다. 편지를 쓸 때는 어떤 마음인지."소박하게 취미삼아 쓰게 된 것이 생각 밖으로 많이 커졌다. 항상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 독자들의 기대를 충족시켜야 한다는 강박도 있다. 늘상 새로운 소재를 고민해야 하기에 힘겹기도 하다. 하지만, 그것 덕분에 내면의 공부에 집중하게 된다. '죽을 때까지 이걸 할 수 있을까' 란 스스로에 대한 물음을 던지기도 하고. 독자가 200만, 300만이 되어도 '한 사람의 친구에게 보내는 마음으로 쓴다'는 '내 진실을 먼저 열어보인다'는 초심에는 변함이 없다."
- 애초 '아침편지'를 시작하게 된 이유는 뭔가?"<대학신문> 편집장, 기자, 대통령 연설담당 비서관 등을 했다. 모두 책을 많이 읽을 수 있는 직업이다. 그러다 보니 개인적인 독서기록 파일을 가지게 됐다. 그걸 정리하다가 '좋은 문장 하나가 사람의 인생을 바꿀 수도 있다'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이어 '작은 문장의 힘을 나누자'라는 결심이 섰고, 이메일 주소를 알고 있던 가족과 동료, 동창들에게 보내기 시작한 게 오늘에 이르렀다."
199만이 보는 편지, "한 사람에게 보내는 마음으로"
▲"독자 숫자가 수십만 명이 되면서부터 거액을 이야기하며 사업적 제의 해오는 이들도..."
오마이뉴스 남소연
- 이렇게 가파르게 성장하다 보니 갖가지 일을 겪었을 텐데.
"독자 숫자가 수십만 명이 되면서부터 거액을 이야기하며 사업적 제의를 해오는 이들도 있었다. 유혹에 대한 고심이 없지 않았다. 하지만, '아침편지'는 공공성을 지녀야 한다는 생각을 바꿀 수는 없었다. 그래서 만든 게 '아침편지 문화재단'이다. 여기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집을 지어주는 사업 등을 벌였고, '몽골에서 말타기' 등 여행 프로그램을 만들고, '책 읽고 밑줄긋기 대회'도 열었다. 현재는 '아침편지' 영어판과 일어판·중국어판을 준비 중이다."
- 사업가, 기자, 청와대 비서관, 문화재단 이사장 등 여러 직업을 거쳤다. 어떤 게 가장 적성에 맞는지. "글 쓰는 게 가장 즐겁다. 사실 글을 쓴다는 건 '피를 말리는 작업'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글을 쓸 때 크나큰 행복감을 느낀다.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어려운 시절이 있다. 내가 번민하고 갈등하던 시절, 글이 없었다면 무너졌을지도 모른다. 앞으로도 '영혼의 우물'에서 오래 숙성시킨 글을 쓰고 싶다. 나는 스스로를 글을 통해 꿈을 꾸는 사람이라 말한다. 한 사람이 아닌 여러 사람의 희망이 되는 '좋은 꿈'을 현실로 만들어가고 싶다."
- 실로 많은 '아침편지'를 보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편지는 어떤 것인가? 그리고 가장 인상 깊었던 독자는?"희망에 관해 쓴 첫 편지다. 어느 날,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책에서 아버지가 그어놓은 밑줄을 보고 내 삶의 방향을 바꾸게 됐다. 아무도 가지 않은 '꿈의 길'을 가자고 사람들에게 권유했던 그 편지가 지금도 기억난다.
그리고 독자라…. 인천에 사는 20대 여성의 편지를 받은 적이 있다. '삶을 끝내려 책상과 옷장·은행계좌를 정리하고 마지막으로 이메일을 정리하다가 당신의 편지를 보고 생을 포기할 수 없다란 생각을 하게 됐다'는. 그 편지는 젊은 나이에 중풍으로 쓰러진 내 친구(판사)를 생각하며 쓴 글이었다. '바닥에서 우뚝 서자'는 내용이었는데, 그게 그런 역할을 해줬다는 게 고맙다."
고도원이 보낸 첫번째 아침편지(2001년 8월 1일) |
희망이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땅 위의 길과 같은 것이다.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
- 노신의 <고향> 중에서.
* 그렇습니다. 희망은 처음부터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도 생겨나는 것이 희망입니다. 희망은 희망을 갖는 사람에게만 존재합니다. 희망이 있다고 믿는 사람에게는 희망이 있고, 희망 같은 것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실제로도 희망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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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를 말리는 이 행복... 편지는 땀방울이자 눈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