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 끝에서 바라본 지리산 줄기들. 키 큰 나무가 경남도 기념물 제212호 금대암 전나무다.
안병기
절 마당가에 가서 지리산 줄기들을 바라본다. 지리산의 긴 능선이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다가온다. 하봉 - 중봉 - 천왕봉 - 제석봉 - 연하봉 - 촛대봉 - 영신봉 - 칠선봉 - 덕평봉 - 벽소령 - 형제봉 등 지리산 능선이 차례로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순간 가슴 밑바닥 어디에 숨어 있었던지 그리움 한 덩어리가 불끈 붉은 해처럼 솟아오른다.
지리산의 자존심일까. 지리산은 순순히 내 모습을 다 보여줄 수 없다는 듯 천왕봉을 구름으로 살짝 가리고 있다. 날 보려면 직접 이곳으로 올라오는 뜻인가. 아무튼 장쾌하기 짝이 없는 풍경이다. 아무리 풍수지리를 문외한일지라도 이곳에 서면 저절로 알리라. 풍수장이들이 왜 금대암 자리를 천하 명당으로 꼽기를 주저하지 않는지를. 산 아래 금대암으로 들어오는 길 입구, 커다란 돌에 새겨진 '지리방장제일금대'란 글귀가 결코 허랑한 말이 아니라는 걸 이제야 알겠다.
마당 아래로는 꽤 너르고 푸른 대숲이 펼쳐져 있고, 그 가운데에 커다란 전나무 한 그루가 우뚝 서 있다. 전나무는 사시사철 잎이 푸른 상록침엽수다. 수령은 500여 년 정도로 추정되는 이 전나무는 우리나라 전나무 중에서는 가장 오래되고 가장 크다고 한다. 본래 두 그루가 나란히 서 있었으나 1998년 무렵에 낙뢰로 한 그루는 부러져 없어졌다 하니 무척 안타까운 일이다. 늙은 전나무가 대나무들에 으스댄다. "여기 나도 이렇게 푸르거늘 네가 무슨 독야청청이냐"라고.
나는 불현듯 금대암 스님들의 무욕에 한 가닥 의혹을 품는다. 저렇게 장쾌한 지리산이라는 정원을 두고도 모자라서 전나무를 키우고, 너른 대숲을 조성한 것은 욕심이 아니란 말인가. 하기야 그 덕분에 이렇게 천하 절경을 들여다보고 있긴 하지만 말이다.
조선의 선비 뇌계 유호인(1445~1494)은 '금대사'라는 시 속에서 "산 보고 물 보고 이 삶을 보내며 / 인간세상 많은 시비에 관여치 않네(看山看水送此生 不管人間多是)"라고 노래했다. 만일 이 좋은 풍경 속에서 세상 시비에 관여하려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분명히 두고온 세속에 대한 강박증을 단 한시도 놓지 못하는 가엾은 사람일 것이다.
촌스러움을 비켜간 대웅전과 숨겨진 아름다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