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힘이 들어도 "아빠 사랑해요"라는 자녀들의 편지를 받으면 힘이 난다.
김정미
'안전배달'을 마치고 우체국으로 들어선 박 집배원을 기다는 것은 '우편 분류' 작업. 다음 날 배달해야 할 우편물을 번지별로 분류하는 일이다. 그가 업무를 나간 새, 들어온 우편물만 해도 작은 상자 5개와 큰 상자 2개. 보통 작은 상자 2개 정도가 들어오는 것에 비하면 우편물이 많다.
각 집배원의 자리에는 책꽂이 형식의 칸막이가 쳐져 있다. 총 70개의 함으로 되어 있는데 그 밑에는 암호처럼 숫자들이 적혀있다. 알고 보니 각 배달 구역 번지수를 뜻하는 것. 3천 통이 넘는 우편물을 번지별로 구분해 70개 함에 일일이 넣는 것이 1차로 그가 할 일이다.
상자를 책상 위에 올린 그가 우편물을 한 손 집어 들더니 각 번지에 해당하는 우편물들을 빠르게 분류한다. 마치 2배속 영상을 재생하는 듯, 빠른 속도로 작업이 이뤄진다.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눈이 휘둥그레진다. 각 함의 위치가 머릿속에 입력되지 않고서는 쉽지 않을 일이다. 시선은 우편물과 함을 빠르게 오가고 손놀림 역시 예사롭지 않다. 10년 경력이 아니고서야 흉내낼 수 없는 '달인'의 모습이다.
내가 50통의 우편물을 분류하는 동안 그는 500여 통의 우편물을 작업하는 듯 보였다. 그만큼 작업 속도가 차이 나는 것이다. 그는 "한 개가 잘못 들어가면 배달이 느려지기 때문에 집중해서 작업해야 한다"고 말한다. 정말 '쉽지 않은 작업'인 듯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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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편분류작업 하루 5시간 넘도록 다음날 배달할 우편물을 분류한다. 70개의 함에 번지별로 우편물을 넣는 것이 1차 작업이다. 빨리 감기를 한 듯, 빠른 속도의 박종식 집배원. ⓒ 김정미
이런 분류작업만 기본 5시간 동안 이뤄진다. 서서 하는 작업이기에 다리가 결리고 허리도 아프다. "저 친구는 허리 디스크 수술을 했다"고 말하며 박 집배원이 발끝을 바닥에 '툭툭' 내리친다. 다리가 아픈 모양이다.
분류작업을 하는 내내 그가 몇몇 우편물을 따로 빼어둔다. 그 이유를 물었더니 "특별한 사연이 있는 우편물"이라 한다.
"이 집 아주머니가 카드빚이 많아요. 그런데 남편은 그 사실을 모르니까 고지서를 따로 전해 달라 부탁한 거죠. 이렇게 고무줄로 묶어 뒀다 전화가 오면 따로 전해주곤 합니다."휴가와 교육 등으로 자리를 비운 박 집배원을 대신해 우편분류를 하는 동료는 이 사실을 알 리가 없다. 그래서 다른 우편물과 함께 배달하고, 그 집에서는 한바탕 부부싸움이 나기도 했단다.
분류되는 우편물들을 살펴보면 98%가 '고지서', 나머지는 '광고 책자'다. 편지의 경우, 군인들이 보내는 편지 외엔 찾아보기 힘들 정도다. 그가 처음 일했던 10년 전에도 편지 수는 많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크리스마스나 연말을 맞아 보내는 카드들은 많았다. 동료들끼리 "누구 구역에서 가장 작은 규모의 카드가 발견되나"를 내기로 걸 정도였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는 "편지가 줄어들었다고 해서 정이 그만큼 줄었다고는 볼 수 없다"고 했다. 담당 구역 주민들과 만나면서 '정'을 많이 느꼈기 때문이다. 그는 집배원 일을 '천직'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앞으로도 열심히 일 할 계획이다.
집배원의 정년은 57세. "그만두면 과연 뭘 하나"고 운을 뗀 그는 곧 "하긴 워낙 일이 고돼서 57세 이후로는 힘들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30㎏ 무게가 나가는 상자를 들고 2~3층 건물에 올라가는 일이 허다한데 젊은 사람들도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체력적으로 힘든 일이 많아, 그는 집배원을 "정신적으로는 자유롭지만 체력적으로는 힘든 직업"이라고 한다. 하루 종일 우편배달을 하고 들어와서도 선 채로 5시간 넘게 우편분류를 하는 것만 보아도 그 이유를 알 듯하다.
"술 먹지 않으면 잠 안 올 만큼 고된, 그러나 세상에서 가장 좋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