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덕 골목길전철이 놓이기 앞서까지, 인천에서 서울로 오가던 사람들은 이 언덕길을 오르면서 "어휴 서울까지 언제 가나" 하는 한편, 서울에서 돌아올 때 "이야, 이제 다 왔네!" 하면서 땀을 훔쳤습니다. 서민들 발자국이 수도 없이 찍힌 언덕 골목길입니다. (인천 숭의동 109번지 골목길)
최종규
음부터 골목도시는 아니었으리라 봅니다. 개항기에는 ‘한국에서 빼앗은 물자를 일본으로 빼내는 들머리’ 구실을 해야 했고, 해방 뒤에는 ‘일제가 지은 공장과 여러 시설을 바탕으로 서울을 개발하도록 물자를 올려보내는 들머리’ 구실을 해야 했습니다. 시골을 떠나 도시로 몰려드는 사람들을 싼 일삯으로 묶어 두는 ‘서울 변두리 공장 도시’로 인천이 뿌리를 내리게 되고, 이러는 가운데 ‘하꼬방’이라고 하는 조그마한 게딱집집이 잔뜩 들어서게 되었을 테지요.
그리고 이런 역사가 한두 해도 아니고 열 해나 스무 해도 아닌 서른 해 마흔 해를 거치며, 이제는 자연스러운 인천 문화로 인천 삶으로 자리를 잡았으리라 봅니다. 이리하여 인천 옛 달동네 한켠을 쓸어내고 아파트를 올려세우면서도 ‘수도국산 달동네박물관’이라는 곳이 서는구나 싶어요.
.. 베르트는 창문이 나 있는 머리 같은 것은 잘 그리지 못한다. 아니, 잘 그릴 수도 있다. 만약 그랬다면 심사위원들은 베르트가 새로운 기법을 사용했다고 말할 것이다. 피카소처럼 말이다. 그러나 내가 그린 그림을 내면, 전에 그린 내 그림을 잘 모르기 때문에 새로운 기법을 시도했다는 말은 하지 않을 것이다 .. (49∼50쪽)먼 옛날에는 조용조용 사는 터전이었다가 비류백제가 뿌리를 내린 곳이었습니다(미추홀). 온조백제한테 무너지면서 흐지부지 역사에서 자취를 감추듯 했지만, 일제강점기 때에는 백범 김구 선생이 일본 순사를 맨주먹으로 때려잡은 뒤 숨어지내던 곳이었습니다. 이제는 권리를 되찾은 조봉암 선생이, 일제한테 짓눌렸던 우리 나라를 올곧게 일으키려고 동지를 모으고 후배를 북돋우던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비류백제가 무너지듯 백범 선생도 조봉암 선생도 역사에서 이슬로 스러집니다.
.. “아니, 유명한 화가의 기법으로 그린 거야.” “그렇다면 그 사람은 칼라보다 훨씬 나은 사람이죠.” 내가 말했다. “그 애는 내가 말해 준 대로만 그렸으니까요. 그 사람은 스스로 생각한 것들을 더구나 유명한 화가의 기법으로 직접 그렸잖아요. 그렇게 하려면 아주 힘들었을 거예요. 똑같이 멋진 작품을 만들기가 어려웠을 테니까요. 사람들은 그 그림이 진짜라고 생각해서 그렇게 몰려오지 않았나요?” “거장의 ‘이름’이 적혀 있으니까 믿었던 거야.” 엄마가 말했다. “그 사람의 이름이 써 있었다면 사람들이 감탄하지 않았을 거라는 말인가요?” “당연히 그렇지.” “사람들은 무엇을 감상했나요? ‘그림’이었나요, 아니면 그림 밑에 써 있는 ‘서명’이었나요?” .. (84쪽)지난 토요일, 옆지기 동생과 옛동무하고 동네 미술전시터(스페이스 빔) 나들이를 갔습니다. 올해 미술대학을 마치는 인천 그림꾼들 ‘신진작가 초대전’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예나 이제나 그림 보는 눈이 없고, 그림 즐길 줄 모르는 저입니다. 이번 그림잔치를 보면서도, ‘음, 음.’만 나올 뿐, 딱히 어떠한 느낌을 받지는 못합니다.
무엇보다 제 눈높이가 낮고 눈길이 얕아서일 테지요. 어쩌면 새내기 그림꾼들 그림 눈썰미나 깊이가 조금씩 채워지고 있는 터라, 살짝 아쉬울 수 있습니다. 그저, 오즈음 그림꾼들이 무엇을 생각하고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가는가 하는 느낌은 조금 받았습니다. 그림을 그리든 사진을 찍든 글을 쓰든, 저마다 자기가 발딛고 살아가는 곳에서 부대끼는 사람들 삶이 그림이나 사진이나 글로 나타나거든요.
.. 실로 뜬 테이블 보, 피아노 덮개, 양복 등에는 왜 만든 사람의 이름이 없을까? 마음만 먹으면 어디에든 이름을 쓸 자리는 충분히 있을 것이다 .. (90쪽)지난날 이오덕 선생님이 가르치던 아이들이 그렸던 그림을 떠올려 봅니다. 연필로도 그리고 크레파스로도 그린 1960∼1970년대 산골마을 아이들 그림을 떠올려 봅니다. 이 아이들 그림에는 이 아이들 삶이 고스란히 묻어나 있었습니다. 또, 저는 이 아이들과 같은 삶을 좋아합니다. 그래서 이 예전 아이들 그림을 보며 눈물이 핑 돌곤 했어요.
동네 미술전시터에 내걸린 새내기 그림꾼들 그림에도 이 그림꾼들 삶과 생각이 배어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도시에서 살고는 있어도 도시 삶을 그닥 달가워하지 않고 반기지 않습니다. 아무래도 이런 탓에 이분들 그림이 제 마음 깊은 자리까지 못 파고들지 않나 싶습니다.
.. 난 사람들이 기도를 올려 신을 귀찮게 하는 일을 될수록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자기들 입장만 생각하지 말고 신도 이해해 주어야 한다. 어떤 사람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스스로 해결한다면 신은 그 사람을 훌륭하다고 생각하고, 그가 목숨이 위태로운 위기에 처해 있을 때 그를 먼저 도와줄 것이다 .. (114쪽)하긴. 그러겠네요. 누구나 자기가 좋아하는 그림을 볼 때 ‘이 그림을 그린 사람이 어떤 마음이겠네’ 하고 느낍니다. 자기가 좋아하지 않는 그림을 보면서 ‘이 그림을 그린 사람은 왜 그렸을까?’ 하고 묻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