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시크교도의 성지 암리차르의 황금사원
서종규
힌두교와 이슬람교의 정점을 통합한 시크교1월 25일(금), 10시를 조금 넘겨 찾은 황금사원은 시크교의 성서인 그랜드 사히브(Grand Sahib - 구루들이 남긴 말과 힌두와 회교의 경전에서 뽑은 어귀들의 모음)를 운반하는 의식을 행하고 있었다. 붉은 양탄자를 깔고 그 큰 관에 넣은 성전을 연못 중앙에 있는 황금사원에서 보관 장소로 옮기는 것이다. 인도 특유의 악기 소리와 찬양하는 노래가 울려 퍼지며 많은 사람들이 그 뒤를 따르고 있었다.
이 황금사원은 시크교의 총본산으로 1577년 시크교의 제4대 교주 람다스에 의하여 불멸의 꿀이 흐르는 연못이라는 성천 암리타사라스에 건설하였다. 오늘날과 같이 순금을 입힌 지붕과 대리석들로 이루어진 것은 1802년 마하라자 란짓 싱에 의해서였다. 이때부터 황금사원이라는 애칭으로 불려졌다.
이 황금사원이 있는 도시 ‘암리차르’는 인구 약 80만 명 정도로 파키스탄과의 국경에서 약 30km 떨어진 지점에 있는 교통, 군사상의 요지이다. 이곳은 펀자브 평원의 관개수로 시설이 잘된 곡창지대이다. 또 모직물, 면직물, 견직물 공업이 활발하여 섬유 도매상이 많은 상업 중심지이다. 1919년 간디 지지파의 군중들이 영국군에 의해 학살된 곳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시크교는 인도 인구 11억 명 중 2% 정도로 인도 서북부 펀자브 지역을 중심으로 전 세계에 약 8천만 명 정도의 교인을 두고 있는 종교이다. 시크의 뜻은 '제자'이고, 우두머리는 구루로 '지도자' '스승'을 가리킨다. 구루는 죽어서도 구루로 환생하며 대대로 이어진다.
교조인 초대 구루 나나크는 1469년 펀자브의 힌두교 집안에서 태어났다. 나나크는 인도 전역을 돌며 "힌도교도, 이슬람도 없다"고 설파하며 두 종교의 장점을 통합했으며 힌두교의 단점인 카스트제도, 여성차별 등을 철폐할 것을 주장했다. 그래서 암리차르에는 카스트제도의 신분 차별이 없다.
시크교도에게는 다섯 가지 계율이 있는데, 첫째는 머리카락을 자르지 말 것(그래서 시크교도들은 터번을 쓴다), 둘째 가난한 이와 수입을 나눌 것, 셋째 오른손 손목에 쇠로 만든 팔찌를 찰 것, 넷째 짧은 바지를 입을 것, 다섯째 반드시 단도를 몸에 지닐 것이다.
인도 인구 중에서 소수의 시크교도들이지만 그들은 인도사회의 중심세력을 형성하고 있다. 곡창지대인 펀자브 지역이어서 그런지 정치, 경제, 학계에서 중심을 이루고 있는 사람들이 많고, 인도의 수상을 비롯하여 특히 군인 등 요직에 속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핍박에 저항하기 위해 전사조직화되면서 호전성이 대단히 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