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밭.김남주 시인의 생가 앞에 있는 보리밭.
강기희
김남주 시인의 시에 등장하듯 만인은 법앞에 평등해야 한다고 헌법에도 나와있지만 세상은 여전히 '무전유죄 유전무죄'라는 의식이 팽배해 있습니다. 그 말이 만들어진 지 꽤 되었지만 요즘 일어나고 있는 상황을 보면 전혀 개선되지 않은 것 또한 사실인 듯 싶습니다.
평범한 이들이 투사되는 세상, 그가 바라던 세상이 아니야지난 해 가을엔 붕어빵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던 이근재씨가 노점상 단속으로 인해 자살을 했습니다. 하루 벌어 살기도 벅찬 이들의 죽음이라 더욱 안타까운 일입니다. 노점상 단속의 목적이 거리 미관상 보기 좋지 않다는 게 이유이니 할말 없는 나라입니다. 그런 나라 좋은 나라 맞는지요.
전두환 정권이 들어섰을 때가 기억납니다. 거리에서 좌판을 벌이고 있는 할머니들께서 단속반의 호각 소리 한 번에 고무다라이를 이고 도망치던 모습이 아직도 선합니다. 밀수한 양담배를 파는 것도 아니고 기껏해야 집에서 키운 애호박이나 푸성귀 몇 단 묶어 나온 할머니들이 고무줄 바지가 흘러내리는 것도 모른 채 도망치는 모습이 우리네 민중들의 삶입니다.
그 일이 아직도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 김남주 시인께서 뭐라 하실까요. 답답한 일상입니다. 비정규직법이 시행되면서 거리로 쫓겨나는 사람들이 더 많아진다는 사실 또한 김남주 시인이 알면 뭐라 욕설을 퍼부을까요. 평범한 주부였던 이랜드 사람들을 투사로 만든 것을 알면 김남주 시인은 가래를 끌어 올릴 것 같습니다. 곱게 자란 딸들이 투사가 되어 1년 넘게 투쟁을 하고 있는 KTX 승무원들을 위해서는 김남주 시인은 또 뭐라 말할까요.
노동부가 있어도 힘없고 가난한 이들의 노동권이 온전히 보호되지 못하고, 여성부가 있었어도 여성은 온전히 보호되지 못했습니다. 그나마 있던 여성부를 폐지하겠다는 정권까지 등장했으니 앞날이 감감하기만 합니다.
지난 해 여름 김남주 시인의 생가가 말끔하게 단장되었습니다. 시인의 손때 묻은 흔적들이 사라진 것은 안타깝지만 새롭게 단장된 모습을 보며 시인의 부활을 꿈꾸어 보았습니다. 긴 세월을 독방에서 보내야 했던 혁명전사 김남주 시인이 아니던가요. 이젠 부활할 때도 되지 않았던가요. 그런 세상이 지금 아니던가요.
그가 바란 세상은 요원하기만 한데, 우리는 그를 자꾸만 잊어갑니다. 잊어야 할 것이 더 많은 세상인데, 잊을 것은 남겨 두고 잊지 말아야 할 김남주 시인이 세상 속에서 자꾸만 잊혀집니다. 추억의 대상이 아니라 우리 곁에 머물러 있어야 할 김남주 시인인데, 우리는 자꾸 추억만 합니다.
배달되는 독촉 고지서는 쌓여만 하고, 텅빈 지갑엔 그저 주민증밖에 없는 사람이 늘어만 가는데도 우리는 그가 꿈꾸었던 세상을 포기하고 있습니다. 목을 세워 고개 쳐들고 항거하기보다는 예, 예 하면서 머리를 조아리면 먹을 것이 보장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모난 돌이 정을 더 빨리 맞는다는 석공의 말을 믿기 때문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