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친구가 그린 벌거벗은 임금님 일러스트 습작 스캔본(사진모드)
최미란
"자기야! 나 지금 하나 끝냈어! 언능 와서 봐줘!!"
기뻐서 어쩔 줄 모르는 듯한 목소리로 호들갑 떠는 전화를 받으니 내 기분도 덩달아 들뜬다.
얼마 전이다. 매일매일 살아가는 일상이 똑같아 재미없다며 눈물 한 방울 내비치는 여자친구의 모습을 보면서 별다른 답을 해주지 못했다. 사실 여자친구의 전공은 서양화이고 내 전공은 전산학이다 보니, 그림을 그려도 그저 물감과 붓으로 그리는가보다 할 뿐 '그림'을 보거나 읽을 줄은 모른다.
그래서인지 생활에 활력소가 될 수 있는 무언가를 찾는 여자친구에게 그저 "대학원에 진학해서 공부 좀 더 해 볼래? 공인중개사나 미술 관련 자격증을 따보는 어때?" 하는 말 외엔 해줄 말이 없었다.
프리랜서 작가에 도전하겠다는 여자친구의 선언그러더니 어느 날은 일러스트를 배워 책에 삽화를 그려주는 프리랜서 작가에 도전하겠다는 선언을 했다. 그리고는 일러스트 학원은 대개 서울에 좋은 곳이 많고, 신인 작가가 삽화의뢰를 받기 위한 방법 중 하나가 학원에서 개설한 홈페이지에 작품을 올려서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것인데, 대개 학원은 수강생들 중심으로 작품을 올릴 수 있게 주기 때문에 서울로 올라가서 학원에 다녀야겠다는 이야기를 덧붙였다.
그 후 여기저기 다니면서 학원비라든가 생활비 등등을 포함하여 견적을 뽑더니 한숨을 푹 쉬는 것이다. 왜 그런가 했더니 학원비 3달 100여만원에 고시원비 100만~120만원, 재료비를 포함한 생활비 150여만원, 기타 등등 해서 서울에서 3달 학원 다니는 데 400여만원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미술 학원 강의를 나가며 한푼 두푼 알뜰하게 모은 돈을 부모님께 빌려드렸더니, 정작 자신에게 필요한 400만원을 구할 일이 암담한 것이다. 또다시 얼굴에 그늘이 지며 눈물이 맺힌다.
그러다가 10여일 전, 다시 생글생글 웃는 모습으로 "뭐, 지금 당장 갈 건 아니니까 반년 정도 미리 혼자 일러스트 연습 좀 하면서 돈을 모아서 갈래, 그래야 학원 가서도 진도가 빠를꺼 아니야?"라고 이야기 하더니, 어딜 가든지 스케치북을 가지고 다니며 보이는 것마다 스케치를 했다.
그리고 그림이라면 동양화든 서양화든 모두 같은 것인 줄 아는 나에게, 일러스트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이야기를 해주면서 자기의 스타일을 어떻게 잡아야 할 지 고민이라고 했다. 색을 어떻게 칠해야 할지, 분위기를 밝게 잡아야 할지, 그림을 코믹하게 해야 할지, 화려하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나는 "응, 응" 같은 여흥구를 넣으며 듣는 것 말고는 별다르게 해줄 것이 없었다. 전공이 어떻게 비슷한 것이었다면 많은 이야기를 해줄 수 있었을 수도 있지만, 전혀 다른 영역이다 보니 이해도 잘 안 되는 것이다. 그저 내 전공을 살려 "니가 그린 그림은 내가 스캔해서 인터넷으로 올려줄게"라고만 할 수 있었을 뿐이다.
공개한 첫 작품은 '벌거벗은 임금님'어제는 하루종일 지금까지 스케치했던 것 중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 색칠을 하더니 저녁에 드디어 색칠이 끝났다며 봐 라는 전화를 했다. 공식석상에 처녀작을 발표하는 작가처럼 상기된 목소리로 쑥스러운 듯 이야기를 한다. 이럴 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득달같이 달려가 봐주며 칭찬하는 일밖에 없다.
부지런히 차를 몰아, 그림 구경을 하며 연신 "우와" 하는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리고는 오늘 그 그림을 가져와 스캔해서 컴퓨터 파일로 만들어 보내주었다. 그림을 스캔하는 것은 처음이라 사진을 스캔하는 것처럼 해야 할지 삽화를 스캔하는 것처럼 해야 할지 알 수 없어 두 가지 버전으로 만들어 보냈다. 위에 있는 것이 사진 버전이고 아래에 있는 것이 삽화 버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