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 끝에서 바라본 풍경. 건너편은 군산시 대야면이다.
안병기
마당가에는 범종각이 홀로 걸터 앉아있다. 1989년에 건물을 지어 낙서전 마루에 걸려 있던 범종을 이곳으로 옮겨 왔다고 한다. 범종에는 상원사 동종의 것을 빼다 박은 듯한 비천상이 새겨져 있다. 언젠가 해거름에 이곳에 다시 와서 바람을 타고 바다로 밀려가는 종소리를 들으리라.
망해사의 오전은 적막하다. 망해사는 서해바다의 무릎을 베고 잠들고, 서해바다는 그런 망해사의 가슴에 기대어 깊이 잠들어 있다. 절 마당가로 다가가서 서해바다를 내려다본다. 바다가 발밑까지 바짝 다가오더니 짭조름한 소금기 풍기는 입을 열어 가만히 말을 건다. "내가 보고 싶어 왔느냐"고, "내 진면목을 보고 싶으면 한 없이 더 낮아져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구나. 바다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큰 대장경이구나. 세상 어느 경전도 바다보다 더 많은 가르침을 품은 경전은 없다. 때때로 바다를 바라볼 때면 살아온 날들을 크게 뉘우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건 그 때문인지도 모른다.
마침내 오랜 응시 끝에 서해바다로부터 시 한 편을 건져올린다. 시란 마음이 길을 잃었을 때 꺼내보는 지도 같은 것이다.
심포에는 바다에 몸을 던지려다가문득, 머리를 깎은 뒤제 스스로 절이 된 망해사가 있다시퍼렇게 깎은 머리를 한 채벼랑 끝에 가부좌 틀고 앉아 수행하는망해사 낙서전이 있다망해의 생살을 밀고 나온검붉은 사리 하나 서해로 떨어진다닮아진 염주처럼 떠 있던 고군산열도, 바닷물 붉게 그 사리를 닦는다잘 씻겨진 보름달이 젖은 채로곧 올려질 것이다 - 박성우 시 '망해사' 전문황혼이 아니라서 그럴까. 시를 읽어도 좀처럼 마음의 지도가 선명해지지 않는다. 오후부터 서해안 쪽으로 눈발이 날릴 거라는 기상대의 예보가 아니었다면 오후 늦은 시각에 도착했을 것이다. 망해사로 오는 사람들이 가슴에 품고 오는 화두는 서해바다로 떨어지는 일몰이다. 그 화두를 타파하지 못한 채 중도에 떠난다는 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부탁하노니 망해사야, 내가 화두를 뚫지 못하고 그냥 갔다는 말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기 바란다.
삶의 막막함이 사무치는 날에 다시 오리라망해사를 나서 진봉산 꼭대기 낙조대를 향해 올라간다. 절 입구에 있는 부도밭에 잠시 들린다. 망해사의 중흥조인 진묵대사(1562~1633)는 이곳에서 멀지 않은 만경 불거촌에서 태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