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오천서원 전경이다.
김환대
두 군데 모두 현재 아직 지정된 문화유적은 아니어서인지 다른 지역 사람들은 잘 모르는 듯하다.
영천 임고서원과 우항리 생가터 유허비
영천 쪽에서 이야기 하는 내용은 이러하다. 포은 선생의 문집이 10여 차례 간행이 되었는데 출생지가 영천 우항리로 최초 기록된 곳은 조선 선조 중년에 교서관본으로 간행된 포은선생문집이다. 조선 세종 21년(1428)에 최초 간행된 구본과 중종 28년(1533)의 신계본 및 선조 초년의 개성구각본이 교서관본보다 앞서 간행되었다.
교서관본 다음으로 선조 17년(1584)에 왕명에 의해 서애 유성룡이 앞선 네 종류 문집의 내용을 교감하여 개찬본이 1585년 7월에 완성하였으나 관국에서 간행하지 못하고 임고서원에서 간행하니 바로 영천초각본으로 불린다.
영천초각본 연보고이에 보면, 지원 3년 정축(충숙왕 복위 6, 1337) 12월 무자일에 선생께서 영천군의 치소 동 우항리에서 나셨다. 처음에 어머니 변한국부인께서 임신하셨을 때 난초 화분을 안았다가 놀라 떨어뜨린 꿈을 꾸고 깨어서 공을 나으셨으므로 몽란이라 이름 지었다.
임고서원은 임고면 양항리에 있으며, 1553년(명종 8) 임고면 고천동 부래산에 창건하였으나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었다. 이후 1603년(선조 36)에 다시 지었으며, 이때 임금으로부터 이름을 하사 받아 사액서원이 되었다. 1643년(인조 21)에는 장현광, 1727년(영조 3)에는 황보인을 추가로 배향하였다. 1868년(고종 5)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따라 철거되었다가 1965년 정몽주의 위패만을 봉안하여 복원하였고 2001년에는 황보인의 위패도 다시 배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