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선생님 소개기사(1993년 9월9일 무술신문)
박정규
박 선생님은 단신으로 3개국에 합기도를 보급하느라 젊은 날을 모두 보내시고, 노년에 병을 얻으셔서 지금은 자녀의 도움을 받아야만 거동이 가능한 처지가 되었지만, 남미 땅에 합기도를 보급하고 대한민국의 위상을 알렸다는 사실을 자랑스러워 하셨다.
하지만, 선생님은 김00 선수를 세계챔피언으로 만드시고도 당사자에게 고맙다는 말 한마디 듣지 못한 것, 현지 대통령과 친분이 있던 시절에는 한국인들이 친한 척하다가 자기 필요가 채워지면 떠나간 것, 혼란스러운 한국 정부의 잦은 정권교체로 인해 '수고한다'는 말 한마디 듣지 못한 것을 많이 아쉬워 하셨다.
마지막 인사를 하기 위해서 행미와 선생님 댁으로 가는데 붉은 베레모에 카키색 군복을 입은 무장 군인들이 방탄조끼까지 입고 검문을 하고 있다. 우리차도 검문을 받았는데 여권을 집에 두고 왔다니까 검은색 호송차량에 집어 넣고 문을 닫아 버렸다.
당황한 행미가 집에 전화를 하고 종환이가 달려와서 아무리 많은 이야기를 해도 '신분증'이 있어야만 한단다. 결국 20분여 만에 여권을 가지고 와서야 풀려날 수 있었다. 갑자기 <네트(NET)>(산드라 블록 주연의 영화)라는 영화가 생각났다. 주인공은 음모에 의해 데이터베이스상의 모든 기록이 지워져 존재하지 않는 사람으로 되고, 나중에 극적으로 신분을 회복한다는 내용이다.
국경지대라 밀입국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화장실 갈 때도 신분증을 가져가야 한다면서 박 선생님이 위로를 해줬다.
박남규 선생님의 살아오신 이야기를 들으면서 점점 슬퍼졌다. 2천만 중에…단 5명의 한국인이 여기 있노라고 소리치는 슬픔이랄까?
정치가 불안정한 나라, 철창 속에 스스로 갇혀 사는 사람들, 밤의 불빛이 너무 슬프도록 아름다운 나라여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