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구정물에서도 연꽃처럼 피어난다

나는야, 사회복지사를 위한 자원봉사자

등록 2008.02.06 12:59수정 2008.02.06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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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생은 설거지가 많아서 좋겠어!"

 

오늘도 점심을 먹은 뒤 주방에서 동료의 밥그릇을 설거지하는 나를 보더니 다른 동료가 지나가며 인사를 건넨다.

 

내가 일하는 곳은 노인요양시설이라 자원봉사자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자원봉사자들은 봉사 시간 동안 어르신을 위해 방청소며 각종 허드렛일도 한다. 사회복지사들에게는 어르신들의 이불 개기, 방·화장실 청소, 빨래와 같은 허드렛일도 일상이다. 또 어르신을 제외하고 직원들은 자신이 먹고 마신 밥그릇과 컵 등도 직접 씻어야 한다.

 

정작 나는 사회복지시설에서 일을 하지만 행정을 전담해 어르신들 가까이에서 시중 들지 않는다. 사회복지사인 동료들은 똥기저귀는 물론이고, 먹어도 먹어도 배고프다는 치매질환을 앓는 어르신을 달래고 친자식들도 쉽사리 하기 어려운 각종 시중을 한다. 때로는 뜬눈으로 밤을 새우며 병구완하고 아침 일찍부터 늦은 시간까지 자신보다 남을 위한 이타심을 가지고 일하는 사회복지사들. 나는 사회복지사 동료들을 위한 '자원봉사자'가 되고 싶다.

 

사회복지사가 급여를 받고 하는 직업이라고 하지만 남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면서 살아가는 것은 보기와 달리 힘들다. 누가 나에게 직장을 묻으라치면 사회복지시설에서 일한다면 "좋은 일 하시네요"하고 쉽게 평가하지만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

 

설날·추석 같은 명절이 더 쓸쓸한 어르신들과 함께 하느라 정작 자신의 명절과 휴일을 잊은 지 오래인 사회복지사 동료들에게 커피를 한 잔 타주고, 동료의 밥그릇을 대신 씻는다. 동료의 말벗도 되었다가 산책하면서 고민도 듣는다. '사회복지사를 위한 자원봉사자'. 그래서 오늘도 동료의 밥그릇과 커피잔을 대신 씻고, 커피의 향기를 같이 나눈다.

 

나는 '손님은 왕'이라는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손님에게 서비스하는 종업원 그들이 왕이다. 종업원이 즐겁고 기분이 좋아야 손님에게도 그 행복이 옮겨갈 거라 믿는다.

 

오늘 저녁 퇴근길에 자반 고등어 한손이라도 사들고 가야겠다. 혹시 휴일도 잊은 채 일 한답시고 집나가 이제 들어오는 나를 위해 아내가 어깨라도 주물러가며 말벗도 되고 나만의 자원봉사자가 되어줄지 모른다. '행복해서 웃는 것이 아니라 행복해지기 위해 웃는다'는 말처럼 지금 당장 옆의 동료를 위해 커피 한잔을 타보자. 그리고 동료의 말을 들어보자. 그것이 업무와 관련 되었건 동료의 자랑이 되었건….

 

나눌수록 커지는 행복은 저 멀리 있지 않고 가까이 내가 동료를 위해 설거지하는 구정물 속에도 연꽃처럼 피어난다.

2008.02.06 12:59ⓒ 2008 OhmyNews
#사회복지사 #김종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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