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나 시내 남서쪽 버스터미널
김성호
마다가스카르에서 영어는 통하지 않는다택시를 타고 남쪽 모론다바로 가는 남서쪽의 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버스터미널을 보자 다시 동부 아프리카로 돌아간 느낌이다. 버스정류장도 지저분하고 혼잡하고, 차량이 내뿜는 검은 연기로 코가 콱콱 막힐 지경이다. 호객꾼들이 달라붙어 서로 자기 버스를 타라고 권유한다. 버스도 대형버스는 없고 봉고버스나 미니버스다. 아프리카 닭장차이다. 보기만 해도 머리가 아플 지경이다. 버스 정류장도 흙먼지가 날아다니고, 주변 음식점의 위생상태도 엉망이다.
오후 2시 30분에 출발하는 모론다바 가는 봉고버스표를 30000 아리아리(미국 돈 15달러)에 예매했다. 마다가스카르는 다른 아프리카 국가에 비해 물가는 싼데, 장거리 버스 요금은 비싼 편이다. 석유가 나지 않아 기름 값이 비싸기 때문이다. 아프리카에서 닭장차라 부르는 대중교통 버스인 봉고버스를 마다가스카르에서는 ‘택시-브루스(Taxi-Brousse)’라고 한다. 프랑스어인 ‘택시-브루스’는 영어로는 ‘부시 택시(Bush Taxi)’이다. 영어의 ‘부시(Bush)’와 프랑스의 ‘브루스(Taxi-Brousse)’는 덤불이라는 같은 뜻이다. ‘택시-브루스(Taxi-Brousse)’는 덤불지역을 달리는 택시라는 뜻으로, 영어는 형용사가 명사 앞에 오고 프랑스는 형용사가 보통 뒤에 오는 말 순서 차이(어순차이) 일 뿐이다.
버스정류장 근처 식당에 들어갔다. 지저분했지만, 꼬박 하루를 택시-브루스를 타고 가야하기 때문에 배를 골릴 수는 없다. 나이 많은 할머니가 주인이다. 나는 항상 그렇듯 가장 친숙하고 탈이 나지 않을 음식을 주문했다. 영어로 “라이스(쌀밥)”와 “치킨(닭고기)”를 시켰다. 할머니가 알아듣지를 못한다. 식당을 하는 주인이 “라이스”와 “치킨”을 모르다니. 결국 옆에 현지인이 먹고 있는 음식을 가리키며 같은 것을 달라고 하자 그때서야 할머니는 “로마자바(Romazava)”라고 알아들었다는 듯 씩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쌀밥과, 야채를 넣어 끓인 쇠고기국, 감자 으깬 것 등이 나온다.
밥을 먹은 뒤 나는 물을 시켰다. “워터(물)”라고 했는데도, 할머니가 무슨 뜻인지 모르고 당황해 한다. 내가 다시 프랑스어로 “오(Eau)”라고 하자 할머니는 “라노(Rano·말라가시어로 물)”하면서 알아듣고 생수를 한통 갖다 준다. 내가 고등학교 때 제 2외국어로 배운 프랑스어에서 지금도 기억하는 몇 가지 단어 중 하나가 “오(물)”였다. 마다가스카르에서 먹는 물(생수)은 정확히 말하면 프랑스어로 “오비브(Eaux vives)이지만 그냥 “오”해도 알아듣는다.
나와 마다가스카르 할머니 사이에서 밥을 먹는 동안 유일하게 의사소통이 된 것이 있다. 바로 “코카콜라”이다. 쌀밥과 쇠고기 국, 작은 물, 콜라 한 병을 합쳐 2700아리아리 밖에 안 된다. 우리 돈으로 1350원이다. 마다가스카르는 아프리카 국가 중 물가가 가장 싸다.
마다가스카르 여행에서 어려운 점은 바로 언어다. 모든 의사소통의 기본이 말인데, 마다가스카르에서는 말이 어렵기만 한 것이 아니라 복잡하기까지 하다. 현지어인 말라가시어와 식민지 종주국인 프랑스어에다 아랍 말과 아프리카 말, 영어까지 섞여 있다. 표기도 프랑스어와 말라가시어가 모두 로마자로 표기되어 있어 발음도 프랑스식으로 해야 하는지, 영어식으로 해야 하는 지 헷갈린다.
같은 로마자로 표기되다보니 프랑스 철자 고유의 ‘악상 떼귀(Accent aigu. 알파벳 이(e) 위에 점이 붙는 악상 떼귀(é))’와 같은 것이 없으면 어떤 말이 프랑스어고, 어떤 말이 말라가시어인지 분간하기가 쉽지 않다. 같은 로마자라도 프랑스식 발음과 영어식 발음은 다르기 때문이다. 마다가스카르는 말라가시어라는 말은 있었으나 문자가 없다보니 아랍상인들에 의해 ‘소라베(Sorabe)’라는 아랍 문자로 표기되다 19세기 영국의 기독교를 받아들이면서 표기도 로마자로 바뀌었다.
마다가스카르의 여행객 숙소에는 여행책자나 투어회사 팸플릿이 적은데다, 그나마 영어가 아닌 프랑스어로 되어 있어 영어에 익숙한 우리에게는 매우 불편하다. 여행에 관한 정보가 부족하고 인프라도 떨어지고, 언어 소통에도 장벽이 있다 보니 배낭여행객에게는 여행하기 어렵다. 여행객 숙소의 주인도 영어를 거의 하지 못하고, 말라가시어와 프랑스어만을 한다.
프랑스어는 교육받은 사람들이나 여행객 숙소 등 외국인을 상대하는 현지인들이나 사용하고, 대부분 마다가스카르인은 버스정류장의 할머니처럼 말라가시어만 안다. 아랍과 아프리카어의 흔적은 가장 흔하게 사용하는 “살라마(안녕하세요)”라는 인사말에서 찾을 수 있다. 살라마는 아랍의 영향을 받은 아프리카 인도양의 동해안에 사용되는 스와힐리어의 ‘살라마’에서 따온 말이다. 살라마는 아랍어로 ‘평화’나 ‘안전’을 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