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비야의 <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바퀴 반>
푸른숲
알랭 드 보통의 <여행의 기술>을 읽고 나서 한비야의 <바람의 딸 걸어서 지구 세바퀴 반>을 읽었다. 전자는 포근한 카페에서 차 한 잔과 함께 진득하니 앉아서 본 것이고, 후자는 버스나 지하철에서의 심심함을 달래기 위함이었다.
이처럼 성격이 다른 두 책은 용도마저 다르다. 알랭 드 보통의 책은 주변의 사물에 대해 깊고 꼼꼼하게 고찰할 기회를 주는 반면, 한비야의 책은 각양각색의 경험과 감각적인 언어로 점철돼있어 그야말로 '재미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여행의 기술>보다는 한비야의 <지구 세 바퀴 반>을 좋아하고, 또 한비야가 그보다는 훨씬 많이 알려져 있다. 당연하다. 전자는 머리가 아픈데, 후자는 누가 봐도 눈이 휘둥그레질 만큼 재미있는 경험들뿐이니까. 필자 역시 한비야의 책을 보면서 지하철에서 혼자 키득거릴 정도로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보통은 알랭 드 보통처럼 머리 아픈 철학을 좋아하지도 않고, 여행을 하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보고 싶어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필자는 전자에 더 의미를 두려 한다. 왜? 그것이 오히려 지금 '우리의 현실'에 맞기 때문이다.
한비야의 여행담은 확실히 기이하고, 무지막지하며, 닮고 싶을 만하다. 그러나 그녀의 이름값이 높아지고, 수많은 평범한 젊은이로부터 추앙받는 이유에 대해서는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바로 그 '따라갈 수 없을 정도'의 기상천외함과 아무나 가질 수 없는 담력 그리고 적극성에 대해서 말이다.
한비야가 추앙받는 것은 그녀가 본받을 대상이어서가 아니다. 다만 그녀는 아무도 하지 못한 일을 해낸 '슈퍼우먼'에 가깝다. 또한 오직 새롭고 기이한 경험과 모험심이 그녀의 여행의 전부였던 만큼 내용 자체도 재미있다. 그 점이 '직접 행동'과 '가시적인 성과'를 중시하는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인 요소이기도 했다.
그러나 과연 한비야에 열광하는 모두가 그녀를 닮아가고 있는 것일까? 답은 No다. 실제로 여행을 좋아한다는 왠만한 사람도 모험심도 없이 그저 유명소에 들렀다는 것만으로 만족하고 있다. 그것은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것을 하고 살기 위해 중요한 것을 버리고 여행을 시작했으며, 그것이 오래 되었고, 이제는 오지만을 찾아 여행하고 싶다'는 사람이 '특이하다'는 평을 받는, 현재 우리 사회의 '상식'으로부터 유추 가능하다.
한비야의 책을 읽고 여행을 좋아하게 됐다는 많은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단지 '해외여행'에 관심을 더 가지게 됐을 뿐, 그녀가 몸소 실천한 '사서 고생'이라든지, '오지 탐험'을 몸소 실현하려는 경우는 드물다.
한비야는 적극적인 여성상과 풍부한 인생경력의 '트레이드 마크'이지, '진정한 여행가'로서 '진짜 여행'에 대한 진정 어린 울림을 선사하진 못했다. 그녀 자신 또한 그러한 점에 대한 노력이 부족했던 게 사실이다.
아마도 경험을 머릿속에서 살려내고, 진지한 감상과 생각보다는 재담꾼답게 이런저런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더 신경쓴 흔적이 책에도 역력하다. 그렇기에 정작 노련한 여행가들은 그녀를 '배낭여행족의 사부' 내지는 '기이한 탐험 경력의 소유자' 정도로 볼 가능성이 높다. 또한, 애초에 그녀를 숭앙하는 많은 사람들의 여행하는 방식은 실제로 그녀와는 많이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