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악구 신림동 봉천동은 잘 알려져 있지만, 남현동이란 동네가 있다는 것은 모르는 이가 많다. 사당역 옆 동네가 바로 남현동이다. 빌라촌인 남현동 전경.
김대홍
1992년 계간 시전문지 <시와 시학> 봄호(3월 1일자)에서 미당 서정주(당시 77세)는 "친일 문학을 했다"고 털어놓았다. 일본의 태평양전쟁을 찬양했던 것에 대해선 "그 시절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했다"고 덧붙였다. 이어 "친일문학은 분명히 잘못된 것이며 청산돼야 한다"고 말했다.
친일 혐의를 받고 있던 노 시인이 처음으로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는 순간이었다. 이 고백은 곧장 여러 신문에 소개됐다. 사람들은 곤혹스러워했다.
'아무 말이나 놀리면 시가 된다'는 찬사를 받던 대시인과 '친일 부역자'라는 두 개 가치는 함께 있기 어려운 단어였다.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할 수 없다"는 사람도 있었고, "죄와 사람을 어떻게 떼어놓느냐"며 목소리를 높이는 이도 있었다.
그렇게 시간은 흘렀다. 미당은 부인이 세상을 떠난 지 74일 뒤인 2000년 12월 24일 85세를 끝으로 눈을 감았다. 시인이 떠났지만 그가 남긴 '대시인'과 '친일'이란 발자취는 여전히 그를 따라다녔다.
서울시는 2001년 미당이 31년 동안 살았던 봉산산방(蓬蒜山房)을 미당 기념관으로 조성해 보존하겠다고 발표했다. 곧이어 반대여론이 거세게 일었다. 서울시는 은근슬쩍 입을 다물었다. 집은 방치된 상태로 점차 흉물이 돼 갔다.
2003년 11월 집은 한 건설업자에게 매각됐다. 집은 헐리고 그 자리엔 다세대주택이 들어설 것이라고 알려졌다. 2004년 1월 서울시는 건축업자로부터 집을 사들였다. 당시 이명박 시장의 의지였다. 철거는 면했지만 집은 아무도 돌보는 이 없는 상태로 방치돼 있다.
미당이 세상을 떠나기 전 31년 동안 살았던 동네가 관악구 남현동. 사당역에서 서남쪽으로 나오면 바로 남현동이다.
술 마시기 좋은 유흥가와 빌라촌으로 잘 알려져 있는 남현동엔 의외로 문화유적지가 많다. 1905년에 지어진 당시 벨기에 영사관이 있고, 서울에서 유일한 백제 가마터가 있다.
그 뿐인가. 지금껏 널리 사랑을 받고 있는 '오빠생각'의 작사자 최순애가 줄곧 살았던 동네기도 하다. 최순애의 남편이 '고향의 봄'을 쓴 이원수다. 조선시대 임금 정조가 아버지 묘에 가기 위해 넘었던 남태령이 곧 남현이니, 정조의 자취가 배어있는 동네기도 하다.
'지옥철'로 유명, 곳곳이 문화유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