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치 하이킹영아의 무릎 통증 때문에 얻어 타게 된 덤프트럭.
김성국
무작정 한국에 안부전화 하라는 택시기사 아저씨담간! 도시의 규모는 결코 작지 않았다. 우리는 이런 중소 도시의 호텔 가격을 전혀 이해할 수가 없다. 이스파한(Esfahan)이나 시라즈(Shiraz), 테헤란(Tehran) 같은 큰 도시들의 호텔보다 3~5배씩 더 비싼 건 보통이다. 아마 부르는 게 값인 것 같다. 우리로서는 몹시 지친 게 사실이었지만 5일치 방 값을 하룻밤 몇 시간 잠만 자는 데 날려버릴 수가 없기에, 또 다시 모스크(이슬람 사원)를 찾기 시작했다.
첫번째 찾은 모스크는 실패였다. 두번째 찾은 아주 화려한 모스크는 지금까지 우리가 보아왔던 초라한 시골의 모스크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근사한 곳이었다. 우리는 또 다시 주문을 외쳤다. "두드려라 열릴 것이다."
영어는 통하지 않겠지만, 우리가 달려온 루트가 표시되어 있는 지도 한 장을 들고 안으로 들어갔다. 순간 우리 자신의 모습이 이들에게 어떻게 비춰질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전거를 타고 나타난 두 명의 이방인! 몸에서는 쾌쾌한 땀 냄새가 나는, 흙먼지로 범벅된 더러운 동양인 아닌가. 게다가 손에 들고 있는 건 말이 지도지, 이 또한 사막 여행을 시작하기 전 A4 용지에 휴대용 프린터로 임시로 뽑아 사용한 것이라 이미 시커먼 손때가 잔뜩 묻고 너덜너덜해진 걸레나 다름없었다.
에잇, 모르겠다. 그래도 마음만은 경건하게. 조심조심 안으로 들어선 나는 몇 사람을 거쳐 이 모스크의 책임자인 듯한 사람의 방으로 안내되었다.
"이스파한, 구파에, 나인, 아나락, 추파난, 잔닥. 카비르 사막, 넘어왔어요. 호텔 비싸요. 여기. 재워주세요. 내일, 아침. 떠나요. 일찍. 페르시아어는 잘 못해요. 영어나 중국어는 할 수 있어요. 오케이?"
나는 손짓발짓해가며 애절한 표정을 지었다. 이들의 한 마디에 따라 길바닥으로 나앉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는 잠시 중국말을 할 줄 아는 사람을 찾는 것 같더니만, 얼마 후 어깨를 으쓱거리며 허공으로 빈 손만 들어 올렸다. 그러더니 어느 순간, 마음의 결정을 내렸는지 모스크 아래에 있는 영아까지 불러와 차와 먹을 것들을 대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융숭한 대접. 그는 아무래도 우리를 손님으로 받아들인 것 같았다.
벌써 이란에 들어온 지 1달 반이 지났다. 처음엔 그다지 친절한 줄 모르겠지만 일단 이란 사람들은 자신의 손님이라 인정하는 순간, 그 결정만 내려지면 정말 최선을 다해 정성껏 손님 대접을 한다.
갑자기 사무실에 있던 남자 한 명이 한국의 주소와 전화번호를 알려달라고 하기에, 처음엔 신원 확인을 위해 그러는 줄 알았다. 그런데 갑자기 전화기를 가져다주며 한국에 안부 전화를 하라는 것이다.
"한국. 전화, 비싸요. 돈 많이 나와요."
"괜찮아. 괜찮아. 부모님이 걱정해, 한국에 안부전화해요."
괜찮다고 몇 번이나 거절을 하는데도 막무가내로 호의를 베푸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우리는 한국에 전화를 걸었다. '에고 지금 한국은 12시도 넘었을 시간인데!' 하지만 전화는 불통이었다. 이유는 잘 모르겠다.
전화가 안 되자 그는 이번엔 인터넷 이메일, 인터넷 이메일을 물어보면서 마구 다그치는 것이다. 이메일이 뭔지를 아는 건지. 모르는 건지? 그는 이 곳 모스크의 이 메일을 적어주며, 이 이메일 주소를 이용해서 집에다 이메일을 보내라는 것이다. 이곳 이메일을 이용해 집에다 이메일을 보내라니 도대체 무슨 말인지?
우리에게 전화기를 내밀던 아저씨는 우리가 이메일을 안다는 말에, 모스크 근처의 페르시아 카펫으로 고급스럽게 장식되어 있는 회계사 사무실로 우릴 데리고 갔다. 아저씨 친구의 사무실이라고 했다. 나중에 알았는데, 우릴 데리고 다니는 이 아저씨는 이 곳의 택시기사이고, 이 지역의 마당발이었다.
컴퓨터는 최신형인데, 모뎀접속이 안 돼서 시간이 많이 걸렸다. 참고로 선진국을 제외한 여러 나라를 여행하다 보면 의외로 아직 모뎀을 사용해 인터넷을 접속하는 곳이 적지 않다는 걸 알게 된다.(2004년 4월) 어쨌든 특이한 것은 이곳은 마우스 패드도 페르시아 카펫이라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