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예의 땅, 분단의 땅, 철새의 땅을 가다

[밀짚모자의 답사여행 이야기] 강원도 철원

등록 2008.01.31 17:22수정 2008.01.31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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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부터 매서운 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수은주가 영하로 한참 떨어져 기온이 낮은데다가 뺨을 때리며 목과 가슴을 파고드는 날카로운 북서풍이 사납습니다. 더군다나 바람이 세게 불어 우리가 몸으로 느끼게 되는 체감온도는 훨씬 더 차갑고 매몰차게 느껴집니다.

나는 아침 일찍 서두르는 조바심으로 자동차에 시동을 걸었습니다. 자동차도 사람도 느닷없이 무리하게 용을 쓰면 고장이 나는 법이라 합니다. 그래서 오늘 하루 우리들을 싣고 편안한 가마도 되어주고, 이동 중에 쉼터도 되어주는 자동차에게 잠깐 동안 준비 운동을 시켰습니다. 먼 길을 나설 때나 꽤 오랜 시간 장거리 운행을 하게 될 때는 꼭 미리미리 자동차의 상태를 살피고 준비하는 부지런함이 필요한 법이기 때문입니다.


나는 여느 때처럼 한 모둠의 꼬마 친구들과 함께 설레는 마음을 품고서 저 궁예의 땅, 분단의 땅, 철새들의 땅이 있는 강원도 철원으로 답사여행을 갑니다.

서울 외곽순환고속도로 위로 자동차를 올려 일산에서 퇴계원 방면으로 방향을 잡았습니다. 직선으로 시작하여 곡선으로 변하고, 다시 직선으로 또다시 곡선으로 연결되는 직선과 곡선의 반복과 흐름은 시원스럽기도 하거니와 지루하지 않은 질주를 허락하는 듯합니다. 펼쳐진 고속의 도로 위를 나와 아이들과 자동차는 한 몸뚱아리가 되어 거침없이 자유롭게 질주합니다.

달리는 자동차의 창밖으로 저 만치 동쪽의 하늘이 안개에 싸여 흐릿하게 보입니다. 그 하늘 아래 ‘오봉산’이 말 그대로 다섯 봉우리를 세워 숙연하게 이른 아침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오봉산 뒤편에서 붉은 빛이 엷지만 강하고 선명하게 서서히 솟아오르고 있습니다. 나는 오늘 빠르게 달리는 고속도로에서 새해 들어 처음으로 찬란한 서광을 알현하는 행운을 잡았습니다.

부챗살처럼 주위 사방으로 퍼지는 오봉산의 일출, 오봉산의 서광은 내 눈의 조리개를 열고, 내 홍체와 수정체를 자극하더니 급기야는 결국 내 마음까지도 활짝 열어 젖히고야 말았습니다. 우리는 아름다운 동녘의 하늘을 바라보며 지금 떠나고 있습니다.

의정부 나들목에서 빠져나와 포천 방향으로 향하는 국도를 따라 약 1시간 반 정도를 달려 왔습니다. 눈앞에 철원이라는 이정표가 뚜렷히 보입니다. 그리고 “궁예의 고장, 철새의 고장 철원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는 표지판이 큼지막하게 좌우에 서서 우리들 일행을 맞이해 주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어느새 술렁이기 시작합니다.


“밀짚모자, 여기가 철원이예요?  철원에 다 온 거예요?”
“그래, 이제 곧 우리의 목적지에 도착할 테니 다들 옷 따뜻이 잘 챙겨 입거라.”
“앗싸~ 아, 와~ 철원이다.”

아이들이 소리를 지르며 좋아라 하지만 사실 아이들 앞에선 슬쩍 가리워진 내 마음도 몹시 흥분되고 그랬습니다. 괜히 근엄한 척, 무덤덤한 척 할 필요가 전혀 없는데도 말입니다. 하여튼 우리는 드디어 철원에 도착하고야 말았습니다.


어떤 녀석이 대뜸 창문을 열고 고개를 내밀며 “여기 오니까 정말로 공기가 다른 것 같아요” 하고 얼굴에 바람을 맞으며 마치 CF 광고에 나오는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할 때처럼 표정을 지어 보였습니다. 나는 그 아이의 아주 오랜만일 것 같은 짧은 자유로움을 존중해 주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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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석정 장군바위(꺽정바위) 차가운 겨울을 홀로 굳세게 이겨내고 있는 장군바위 ⓒ 이성한



나는 철원군 동송읍에 있는 ‘철의 삼각전적관리소’에 가서 적어도 내게는 아직 그 이름에서조차 냉전시대의 느낌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이른바 ‘안보견학’ 신청을 했습니다. 그리고는 건물의 1층 ‘통일관’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들어섰습니다. 그곳에는 북한에서 사용하는 여러 가지 물건과 소모품, 화폐, 신분증 등이 순서대로 진열되어 있었습니다.

나는 아이들과 전시물들을 천천히 살펴보며 하나하나 꼼꼼히 설명도 해주면서 시냇물이 졸졸졸 흐르듯이 걸어나갔습니다. 아이들은 매서운 찬 바람에 긴장이 덜 풀려서 그런지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내가 떠들어대는 ‘제멋대로’ 현장 강의를 경청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몇 몇 녀석들이 제법 설명이 쉽지 않아 보이는 질문들을 하나, 둘 내게 던져오기 시작했습니다.

“북한의 학용품이나 물건들은 왜 저렇게 질이 안 좋은가요?”
“북한 사람들이 김정일이나 김일성의 생일을 최고의 명절로 친다는데 왜 그런가요? 잘 이해가 안 돼요.”

아이들은 그 밖에도 통일관 내부를 둘러보며 궁금한 점이나 자신들이 이해할 수 없는 점에 대해 조목조목 질문을 던져 왔습니다. 나는 아이들의 질문을 주의 깊게 들으며 그들이 알아듣기 쉽도록 최대한 또박또박 말을 풀어가며 설명해 주었습니다.

“북한은 남한보다 경제사정이 매우 좋지 않단다. 물자 사정이나 기술수준도 마찬가지로 매우 좋지 않지. 때문에 북한에서 생산되는 물건이나 제품의 질이 많이 떨어지는 것이란다. 북한 사람들은 북한이라는 나라를 세우고, 북한 사람들을 이끌어온 지도자들인 김일성과 김정일의 생일을 명절로 생각하는 것이지. 그런 것이 남한 사람들의 생각과는 많이 다른 차이점이라 할 수 있단다.”

아이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이해를 할 수 있겠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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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꺽정 아저씨와 함께 철의 삼각전적관리소 옆 마당에 있는 임꺽정 아저씨 동상에서... ⓒ 이성한


나는 아이들과 이것저것 궁금한 점에 대해 질문과 답변을 주고받았습니다. 그리고 ‘통일관’을 나와 임꺽정 동상이 있는 마당으로 향했습니다. 아이들은 두더지 어미의 꼬리를 물고 줄을 지어 따라오는 새끼들처럼 예쁘게 따라왔습니다.

우리는 그곳에서 우람한 체격과 부리부리한 눈빛으로 서 있는 ‘임꺽정’을 만났습니다. 나는 조선의 3대 의적이 누구누구고, 왜 그들을 ‘의적’이라고 부르게 되었는지 약간의 과장을 섞어가며 까닭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아이들은 임꺽정과 홍길동, 장길산으로 이어지는 조선의 3대 의적 이야기를 똘망한 눈과 종긋한 귀로 흥미진진하게 들어주었습니다.

나는 임꺽정 동상을 지나서 저만치 가까운 발치에 보이는 ‘고석정’ 정자로 아이들을 데리고 갔습니다. 그리고 정자 위에서 아래로 보이는 한탄강의 매혹적인 풍경을 마음껏 감상하도록 그들의 눈과 가슴을 해방시켜 주었습니다.

나는 아이들의 옆에 서서 좁은 계곡을 끼고 얼음으로 얼어 동면(冬眠)의 흐름을 유지하고 있는 ‘큰 여울’을 만났습니다. 아니 민족분단의 한과 동족상잔의 탄식이 어린 한탄강을 말없는 침묵으로 가슴 저리게 만났습니다. 아~ 역사의 강, 분단의 강을 바라보고 있노라니 울컥한 감정이 나도 몰래 솟구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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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면하고 있는 한탄강 고석정 정자 위에서 얼어붙은 한탄강을 바라보다. ⓒ 이성한



구멍이 숭숭 뚫린 현무암 계단을 따라 장군바위가 보이는 고석정 아래 한탄강변으로 내려갔습니다.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와서 만나고 간 장군바위(꺽정바위)는 여전히 고고한 자태로 차가운 철원의 겨울을 굳세게 혼자 이겨내고 있습니다.

장군바위 정상 머리 부분에는 소나무가 몇 그루 서 있는데 군데군데 하얀 눈발이 날려 쌓여 희끗희끗 새치처럼 보입니다. 장군바위 아래로 내려가니 얼음이 두텁게 언 강 위에 목화솜처럼 하얀 눈이 내려 착한 모습으로 우리를 기다려 주고 있었습니다.

“반갑다! 착한 눈아! 너희가 기꺼이 우리를 반겨주고 기다려주는구나!”

눈이 쌓인 강 위에 발을 옮겨 놓자마자 아이들은 흥분의 도가니 속으로 빠져들었습니다. 아이들은 너나할 것 없이 눈 위로 달음질을 쳤습니다. 나는 얼음의 두께를 확인하고서 그들을 야생의 눈 위로, 청정한 강의 얼음 위로 방목하듯 소리치며 몰이 했습니다. 녀석들은 참았던, 억제하고, 짓누르던 내 안의 자유로움과 살아있음을 한탄강 계곡 속에 온전히 발산하고 뿌리며 놀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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돗자리 얼음썰매 아이들은 얼어붙은 한탄강 눈얼음 위에서 돗자리 썰매를 타며 놀았다. ⓒ 이성한



나는 가져간 돗자리로 아이들과 돗자리 얼음썰매 대회를 열었습니다. 두 팀으로 나누어 끌어주고 당겨주어 결승점을 통과하는 5판 3승제 놀이를 했습니다.

'시~작!'이라는 신호와 함께 거침없이 얼음 위를 질주하는 아이들의 얼굴에 예쁜 꽃이 피었습니다. 양쪽 볼에 발그랗게 두 송이의 꽃을 피운 채 멈출 수 없는 웃음소리로 돗자리 얼음 썰매를 질주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너무나 좋아 보입니다. 우리는 한참동안이나 얼음과 눈에 눕고, 미끄러지고, 뒹굴고, 껴안으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았습니다.

나는 이긴 팀과 진 팀의 아이들에게 모두 시베리안 허스키가 되어주었습니다. 충직하게 눈썰매를 끄는 시베리아산 개가 되어 아이들에게 사랑을 주고 추억을 주었습니다. 한창동안의 놀이에 지친 아이들의 머리에서 김이 모락모락 솟아나고 있습니다. 녀석들은 눈 위에 엎어지고 드러누워 한숨을 돌리느라 숨을 몰아쉬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과 잠깐 동안 휴식을 취하고 있는 중에 외계인 복장을 한 언니 오빠들이 갑자기 나타났습니다. 그들은 오늘 화보촬영을 위해 ‘코스프레’ 아르바이트 모델로 나온 대학생들이었는데 우리들의 추억 만들기 제안에 별 싫은 내색 없이 사진 속 모델이 되어주었습니다. 아이들은 좋아라 신이 나서 마냥 즐거운 표정을 지었습니다.

우리는 임꺽정이 관군에게 몰려 쫒기다가 피할 곳이 없자 '꺽지'라는 물고기로 변해서 장군바위 밑으로 숨었다는 재미나는 전설을 고소하게 나누며 아쉽게도 한탄강의 고석정과 이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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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프레 모델들과 함께 운이 좋게도 코스프레 모델 아르바이트를 나온 대학생 언니 오빠들을 만나 재미난 추억을 남겼다. ⓒ 이성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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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얼음 위에서의 달콤한 휴식 돗자리 얼음썰매를 타다 지친 아이들이 눈을 이불삼아, 베게삼아 뒹굴고, 눕고, 껴 안는다. ⓒ 이성한


‘안보견학’을 안내하는 선도차를 따라 우리는 제2땅굴로 향했습니다. 나는 그곳으로 향하면서 이런저런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이 분단의 땅 철원에서 아이들에게 냉전시대의 유물인 땅굴을 보여주는 것이 오히려 ‘북한을 더욱 멀게 느끼게 하고, 적대적으로 생각하게 하는 계기가 되면 어쩌나’하는 걱정도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느끼게 하고 싶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들 스스로 분단에 대해, 우리 민족의 상처에 대해, 그리고 통일에 대해 토론하고 생각할 수 있도록 하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그들의 생각이 극단이 아닌 균형감을 가질 수 있도록 바로 세워진다면 그것만큼 소중한 수확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청아한 하늘아래 펼쳐진 눈 덮인 철원평야를 달리고 있습니다. 가는 도중에 쌍으로 서서 들판의 먹이를 주워 먹고 있는 두루미들을 보았습니다. 놀라웠습니다. 신기했습니다. 참으로 아름다웠습니다. 아이들과 나는 누구랄 것 없이 해괴한 감탄사를 연발했습니다.

“이~히~! 캬~~~아!”
“으억!  와~~아!”

늘씬하고 균형잡힌 몸매로 철원의 들녘을 유유히 거닐며 먹이를 먹고, 사랑을 나누고, 하늘을 나는 천연기념물 두루미와의 조우는 감동 그 자체였습니다.

‘안보견학’을 안내하는 선도차를 따라 눈 덮인 철원평야를 얼마동안 달렸습니다. 자동차 창밖 먼 하늘에 정제된 날갯짓으로 주위 사방을 제압하고 있는 독수리의 비행이 눈에 들어 왔습니다. 휴전선 근처 맑디맑은 민통선 고요한 하늘 위를 소리 없이 날며, 동그란 원형의 비행으로 주변을 샅샅이 지배하는 독수리의 위엄 있는 카리스마를 보았습니다. 나는 그런 독수리의 비행을 바라보며 새삼스럽게 ‘숭고하다’라는 냉수처럼 차갑고 강렬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제2땅굴에 도착해서 계단을 따라 아래로 내려갔습니다. 내려가는 도중 습한 기운으로 인해 안경에 뿌옇게 김이 서렸습니다. 군데군데 전등을 달아 놓아 그리 어둡지는 않았지만 음습한 공기에다 천장에서 가끔씩 똑! 똑! 떨어지는 물방울 소리까지 들리니 여러모로 불편했었습니다. 아이들도 뒤를 돌아볼 겨를 없이 앞 사람의 뒤통수만 따라 마냥 아래로, 앞으로만 나아가는 땅굴에서의 전진이 별로 특별할 게 없는 느낌이었던 모양이었습니다. 아이들의 입에서 한 마디씩 불평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에~잇! 이럴 줄 알았으면 땅굴에 안 들어올 걸 그랬어요!”
“앞으로 얼마나 더 들어가야 돼요? 지겨워 죽겠네.”

나는 아이들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 할 만 했지만 기왕 들어온 김에 갈 데까지 들어갔다 나오기로 했습니다. 땅굴 속에서 아이들은 과연 무슨 생각을 할 것인가? 나는 곰곰이 혼자 생각해 보았습니다.

아이들은 결국 땅굴의 막다른 곳까지 가서 그곳을 지키고 있던 우리 국군 초병 아저씨와 쑥스럽게 인사하고 악수하는 것으로 땅굴의 추억을 마감했습니다. 밖으로 나오면서 나는 아이들에게 땅굴에서의 소감을 물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아이들이 오히려 내게 더 궁금한 것을 물어왔습니다.

“북한은 왜 이런 땅굴을 팠나요?”
“북한은 아직도 또 다른 땅굴을 파고 있을까요?”

솔직히 나는 아이들의 질문에 명확한 답을 할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말할 수는 있었습니다.

“과거에 남북한은 미워하고 증오하며, 싸워야 할 적으로 지내왔단다. 그랬기에 서로를 공격하려고 했고, 이기려고 했지. 그런데 이제는 서로가 사과하고, 도와가며 함께 살아가야 할 상대로 존중하려고 노력하고 있어. 그러니까 이런 땅굴은 다시는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단다.”

나는 그쯤에서 아이들의 제2땅굴 방문을 아쉬운 데로 정리할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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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원 평화전망대 평화전망대에 올라 비무장지대 안에 있는 궁예의 땅(궁예도성)을 보고 갈라진 분단을 보았다. ⓒ 이성한



선도차를 따라 자동차는 다시 이동을 했고, ‘평화 전망대’라는 곳에 도착했습니다. 새로 지은 건물로 깨끗한 외관을 하고 있는 전망대로 우리는 모노레일을 타고 올라갔습니다. 아이들에게 색다른 체험이 된 모노레일은 편하기도 했지만 짧은 코스에다 너무 요금이 비쌌습니다.

나는 전망대에 올라 북쪽에 펼쳐진 비무장지대를 바라보며 군사분계선, 남방한계선, 북방한계선, 비무장지대에 대하여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모형으로 만들어진 지형을 가리키며 저 멀리 서북쪽 평원에 세워져 오래 전 궁예의 태봉국 시절을 증거하고 있는 지금은 갈 수 없는 ‘궁예도성’ 터를 일러 주었습니다. 우거진 숲과 잡초로 뒤덮인 비무장지대 안 저 궁예의 성은 수많은 지뢰로 포위되어 있었고, 전쟁과 분단의 악몽에 끔찍하게 갖혀 있었습니다.

나는 아이들과 함께 저 멀리 궁예도성을 바라보며 후고구려와 왕건에 대해, 궁예의 삶에 대해 역사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우리 역사가 엄연히 살아있는 저곳에 이 땅의 주인인 우리가 갈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인지 아이들과 나는 잠시 생각하며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묻지 않았는데 아이들의 입에서 그들의 생각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어서 빨리 통일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남북이 싸우지 않고 친하게 지내면서 우리 문화재도 발굴하고, 유적지 답사도 함께 하고 그랬으면 좋겠어요!”
“철조망으로 갈라진 휴전선을 보니까 너무 가슴이 아프고 속이 상해요.”

아이들은 스스로의 눈으로 조국이 분단되어 있는 현실을 보았고, 그것으로 인해 통일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스스로의 생각을 정리해 가고 있는 모습들이었습니다. 나는 그들의 순수하고 솔직한 마음과 생각이 참 깨끗하고 소중해 보였습니다.

나는 아이들과 철조망 너머 저 비무장지대를 조용히 바라보며 언젠가 우리가 아무런 제약 없이 들어가서 궁예가 펼치려 했던 나라의 도성도 살펴보고, 그 곳에서 살고 있는 고라니와 토끼, 멧돼지도 만나며, 북쪽에 살고 있는 동포들과도 반갑게 만나 인사하는 날이 어서 빨리 오기를 기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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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당사2 낡고 무너질 듯한 노동당사 창을 통해 파아란 하늘을 보았다. ⓒ 이성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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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당사1 총탄의흔적과 전재의 상처로 무너질 듯 앙상하게 서 있는 노동당사 ⓒ 이성한



평화전망대를 내려와 우리는 이름이 참 예쁜 ‘달우물 마을’(월정리)의 월정리 역을 지났습니다. 월정리 역에는 심하게 녹이 슬고 부서져 고철 덩어리가 되어 북녘을 향하고 있는 기차가 있었습니다.

기차선로 위에 “철마는 달리고 싶다”는 글귀가 선명하게 눈에 보입니다. 나는 아이들과 남쪽에서 북으로 향하는 경원선 기차역의 마지막 종착점인 월정리역을 스치듯 지나쳐 갔습니다. 우리는 아름다운 철원의 들녘을 기억 속에 새기며 V자 형태로 하늘을 날아 어딘가로 떠나는 기러기 떼의 비행이 무사하기를 소망했습니다. 자동차는 어느새 달려 노동당사 앞에 이르렀습니다.

1948년 해방 직후 세워진 ‘조선노동당 철원군 당사’의 모습은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조차도 지나간 시절의 역사와 상처를 짐작케 하는 외관을 하고 있습니다. 내부는 거의 부서지고, 무너져 내린 채 처참한 골조만이 언제 쓰러질지 모르게 가까스로 버티고 서 있는 모습이 참담합니다.

외벽 곳곳에 패인 총탄의 자국과 허물어져 내린 계단과 창문 등을 보니 마음이 심난했습니다. 하지만 60년이나 된 건물의 양식을 자세히 보면 서양식 건축물의 구조를 가지고 있음을 또 알게 되니 느낌이 새롭기도 합니다. 마치 그리이스 파르테논 신전의 기둥양식을 모방한 듯한 정면 출입구 원기둥과 지붕, 그 위에 균형과 비례를 맞춰 아아치 형태로 만들어 놓은 기다란 창문 등은 오래 전 건물이지만 건축 미학적으로도 상당한 수준임을 가늠케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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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피안사 고즈넉한 곳에 차분한 모습으로 도피안사가 우리를 기다려주고 있었다. ⓒ 이성한



나는 노동당사를 그곳에 남긴 채 오늘의 마지막 방문지인 ‘도피안사’로 아이들을 인도하여 갔습니다. ‘피안’은 저편 기슭이라는 뜻이라는데, 천년 고찰 도피안사는 작지만 아담한 자태로 ‘속세를 넘어 이상 세계로 도달하는 절집’의 차분한 모습으로 저물어 가는 저녁놀을 바라보며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일주문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절 안으로 들어가는 두 번째 문인 천왕문(금강문)을 들어서 계단을 올라 해탈문(불이문)을 지났습니다. 마당에 오르니 전면에 삼층석탑이 보이고, 그 뒤편에 부처님을 모신 ‘대적광전’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마당의 왼쪽에는 범종각이 있고, 그 옆에는 요사채가 단청으로 화장하지 않고 겸손한 빛깔로 수수하게 있었습니다.

나는 아이들과 함께 삼층 석탑 둘레에 동그랗게 모여 섰습니다. 전체적인 형태는 단순하지만, 기단부가 연화문으로 특이하게 조각되어 있어서 불상의 기단양식처럼 느껴지는 이색적인 탑임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리고는 범종각에 걸려 있는 종을 살펴보고, 부처님을 모신 대적광전 안으로 아이들을 들어가자 하였습니다. 그런데 몇 몇 아이들이 쭈뼛쭈뼛 거리며 망설이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교회에 다니기 때문에 절 안으로는 안 들어갈래요.”
“엄마가 절에는 가지 말라고 했어요.”

나는 그야말로 어이상실 했습니다. 어른들의 종교에 대한 편견과 잘못된 독선적 사고방식이 고스란히 아이들에게 주입되고 각인되어 나타나는 놀라운 반응은 나를 침울하게 했습니다. 나는 마음을 진정하여 아이들에게 말했습니다.

“우리 문화유산을 살펴보는 것은 종교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이란다. 그러니까, 자신이 어떤 종교를 믿든지 간에 우리 역사와 얼이 담긴 문화유산을 둘러보고 공부하는 것은 전혀 잘못된 것이 아닌 것이지. 하지만 누구라도 자신이 원하지 않는다면 안 들어와도 괜찮단다.”

나는 서너 명의 아이들만을 데리고 대적광전 안으로 들어가서 자비로운 표정으로 정좌하고 계신 국보 제63호 철조 비로자나불상을 만나 뵈었습니다. 그리고 좌우에 조그맣게 만들어진 금빛 불상들이 층층으로 앉아있는 모습을 눈으로만 조용히 바라보았습니다. 불상의 뒤편과 양옆에 걸린 탱화도 찬찬히 감상했습니다.

무신론자인 나는 뭔지 모르지만 마음이 평화로워 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걸어 나오면서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아이들 얼굴표정을 보았습니다. 그러면서 한 줄기 바람처럼 짧은 생각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습니다. 인간의 삶을 평화롭게 가꾸고, 사랑으로 나누도록 인도해야 할 숭고한 종교의 본질이 그 몹쓸 놈의 인간들에 의해 더럽게 변질되어 가고 있으니 통탄스러웠습니다.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서로를 차별하고, 적대시하고, 비하하는 세상이 되었으니 이를 어찌해야 하는지 마음이 답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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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조 비로자나불 대적광전 안에 정좌하고 계신 국보 제63호 철조 비로자나불상 ⓒ 이성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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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자승 귀여운 동자스님 모습 앞에 사람들이 소원을 빌며 동전을 던져 놓았다. ⓒ 이성한



나는 도피안사의 동쪽 낮은 언덕으로 올라가서 멀찌감치 앞에 보이는 ‘학 저수지’를 침묵으로 관조했습니다. 물이 얼어 먹이를 구할 수 없으니 한 마리의 새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차가운 바람이 시원하게 얼굴을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서쪽 하늘에 저녁놀이 다소곳이 가라앉고 있습니다. 나는 오늘의 답사여행을 하나하나 되짚어보며 이제 돌아갈 길을 채비했습니다.

덧붙이는 글 | 지난 1월26일 철원지역에 답사 다녀와서 쓴 글입니다.


덧붙이는 글 지난 1월26일 철원지역에 답사 다녀와서 쓴 글입니다.
#철원 #철원답사 #고석정 #노동당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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